'11년 묵은 재건축 갈등' 구청이 중재

지역내일 2013-09-04 (수정 2013-09-04 오후 2:20:12)

서초구 지역고민 난상토론으로 해법 찾아
평직원부터 구청장 전문가까지 머리 맞대

서울 서초구 반포동 신반포1차 아파트. 2002년 개발기본계획변경이 고시된 이후 11년을 끌어온 주택재건축정비사업 방향이 지난달 말 최종 확정됐다. 무상으로 받을 수 있는 지분비율을 놓고 대립하던 주민들이 6만8753㎡ 구역에 1620세대를 짓기로 최종 합의했기 때문이다.

서초구난상토론

<사진 : 서울 서초구가 주민들 고민과 불편을 난상토론으로 풀어내는 현안회의를 도입, 톡톡히 성과를 내고 있다. 사진은 재개발을 둘러싸고 갈등하던 반포동 신반포1차 아파트 주민들 합의를 최종 확인한 현안회의다. 사진 서초구 제공>


21개동 가운데 19개동과 2개동으로 나뉘어 대립하던 주민들이 목표를 통일할 수 있었던 배경은 서초구 중재다. 각종 지역문제를 상정해 난상토론으로 해법을 찾는 현안회의 덕이다.

현안회의는 주민들이 고민하는 내용을 공무원과 외부 전문가 등이 함께 고민하는 열린 토론의 장. 민원이 접수되면 해당 부서 혹은 관련 간부들만 고민하던 기존 틀에서 벗어나 말단 직원부터 구청장까지 구 관계자는 물론 주민과 전문가가 함께 참여해 토론을 통해 문제점을 보완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회의다. 주민들이 갈등을 겪고 있는 문제나 불합리한 제도 등 회의 주제는 다양하다.

신반포1차 주택재건축정비사업을 주제로 한 현안회의는 이웃간 갈등을 구에서 풀어낸 사례다. 19개동과 이들을 대표하는 조합, 그리고 나머지 2개동 주민들이 오랜 기간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대치하게 되자 구에서 현안회의 안건으로 상정했다. 지난 6월 첫 회의를 연 뒤 두차례에 걸친 구청장 면담과 건축민원조정위원회, 부구청장 주재 관련 부서 회의, 재건축 관계자 회의 등을 거쳐 양측이 동의하는 합의문을 이끌어냈다.

합의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합의문 공증을 한 뒤 8월 말 열린 최종 검토회의에서도 2개동 주민대표들은 "합의내용을 문자 그대로 이행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문구변경을 요청했다. 진익철 구청장이 나서 "양측이 한발씩 양보, 어렵게 합의한 내용이라 벌써 법률적 검토까지 끝냈다"며 설득에 나섰고 주민들은 "조합에 할 얘기를 구청장에 한 것"이라며 받아들였다. 조합측도 "수백억대 손해가 있지만 구에서 설득했기에 합의에 응했다"고 돌아섰다.

구는 민선 5기 출범 이후 시작한 현안회의가 구 누리집 '구청장에 바란다'만큼 주민들 요구에 대해 즉각 반응, 신속하게 처리하는 효과가 있다고 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신반포1차 갈등 중재까지 총 313회에 걸쳐 진행되는 동안 주민과 외부 관계자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지역 고민거리 886건을 처리했다. 주민 생활과 밀접한 도시계획·교통·주차분야 158건, 건축·주택분야 122건 등이었다.

열린 토론과정에서 지방행정을 선도하는 정책이 나오기도 했다. 2010년 말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진다는 한 엄마의 하소연에 귀를 기울였던 현안회의가 대표적이다. '보육시설 1층은 건물 80% 이상이 지상에 나와있어야 한다'는 영유아보육법 시행규칙이 바뀌어 지역내에서만 27개 보육시설이 문을 닫게 됐다는 이유였다. 영유아 474명이 당장 갈 곳을 잃게 될 상황이었다.

구는 현안회의에 이 고민을 상정, 해법을 강구했다. 건축법에는 '50% 이상만 지상으로 노출되면 1층으로 인정한다'는 규정을 찾아내 보건복지부 등에 보육시설 설치기준이 불합리하다는 건의를 했다. 결국 5개월만에 해당 법령을 개정, 부모들 고민을 덜 수 있었다.

하루 유동인구가 100만명에 이르는 강남대로와 어린이집·유치원 인근 금연거리 지정도 현안회의 결실이다. 영유아시설 주변 흡연으로 미래세대가 건강에 위협을 받는다는 호소를 받아들여 회의를 열었다. 대부분 어린이집이 실내는 금연구역으로 지정돼있지만 상가밀집지역에 위치해있어 행인들 흡연에 피해를 입는다는 점을 알게 됐고 구에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어린이집과 유치원 등 201곳 주변 10m를 금연구역으로 지정·고시했다.

이밖에 강남대로 신분당선 공사와 연계해 양재역과 강남역 매헌역 주변 보도블록을 시공사에서 교체하도록 하고 원어민 영어보조교사 운영방법을 개선하는 등 현안회의를 통해 예산을 아낀 사례도 많다. 구는 세입을 늘리고 예산을 절감한 효과만 약 530여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진익철 구청장은 "현안회의는 주민 불편을 더는 토론의 장이자 신규 직원들과의 교육·소통의 공간이기도 하다"며 "신입 직원들은 행정의 한 단면이 아닌 전체를 보면서 업무역량과 공직감각을 키우고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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