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의 금융교실] ‘재무주치의’ 만들기

지역내일 2013-08-29
박철 국민은행 인재개발원 팀장

한국영화 반칙왕(2000년)과 미국영화 쇼생크 탈출(1994년)은 모두 은행원을 소재로 한 영화다. 하지만 두 영화에 나오는 은행원의 이미지는 아주 대조적이다.

반칙왕의 주인공 달호는 단조로운 업무와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은행원이다. 지각대장에다 영업실적까지 형편없는 그야말로 무능하고 게으른 은행원의 전형이다. 은행에서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반칙을 일삼는 프로레슬러로 변신하면서 삶의 돌파구를 찾는다.

한편 쇼생크 탈출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은행원 앤디의 얘기다. 하지만 앤디는 달호와는 차원이 다른 은행원이다. 그는 우연히 한 교도관이 상속세 문제로 고민하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일을 말끔히 해결해 준다. 이 일로 앤디의 실력이 알려지면서 그는 교도소장의 재무상담을 해주고 나중에는 아예 자산관리를 도맡아 한다. 한 마디로 앤디가 주변 사람들에게는 온갖 재무문제를 믿고 상의할 수 있는 재무주치의였던 셈이다.

결국 앤디는 재무주치의로 교도소장의 신임을 얻은 덕분에 생지옥 쇼생크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흔히 영화를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한다. 실제 반칙왕이 개봉됐던 당시 우리나라 은행원들의 업무는 단순하고 정형화된 일들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우리 주변에서도 앤디와 같은 은행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바로 프라이빗 뱅커(Private Banker) 즉 PB다. PB는 쉽게 말해 은행에서 고객의 재무상황을 파악한 뒤 금융상품 선택에서 세무·노후설계 등 자산관리 전반에 걸쳐 상담과 조언을 제공해주는 전문가다.

"결혼은 웨딩플레너에게, 자산관리는 PB에게" 귀에 익은 CF의 한 대목이다. 예전에는 개념조차 낯설었던 PB가 이제는 광고에 등장할 정도로 친숙해졌다. 그만큼 자산관리상담서비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국민 63%, 재무상담 경험 전무

왜 그럴까? 지금 같은 금융상품과 서비스, 정보의 홍수시대에 전문가의 도움 없이 알아서 체계적인 자산관리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사람들은 재무적인 문제들에 대해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전문가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재무상황을 분석해 상담과 조언을 해준다. 장기나 바둑판에서 옆에서 훈수하는 사람이 더 판세를 잘 읽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보다 효과적으로 자산관리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미국 등 금융선진국에서는 전문가로부터 재무적인 문제들에 대한 상담과 조언을 받는 일이 일상화되어 있다. 몸이 아프면 의사, 법률자문이 필요할 때 변호사에게 의지하듯이 재무적인 문제들에 있어서도 항상 곁에서 조언을 해주는 듬직한 재무주치의를 찾는 것이다.

실제 최근 한 연구소가 발표한 '대한민국 부유층의 자산관리'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부자들은 금융정보를 주로 금융기관 상담을 통해 얻고 특히 PB를 가장 중요한 조언자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서민들은 PB를 만나기도 힘들만큼 문턱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은행마다 차이는 있지만 보통 최소 수억원의 금융자산을 보유한 부자고객만이 PB들의 자산관리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의 62.7%가 "재무상담을 받은 경험이 없다"는 조사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요즘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자산관리서비스의 대중화 추세에 따라 은행들이 PB서비스 문턱을 대폭 낮추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KB국민은행은 PB센터가 아니라 일반지점의 '스타테이블' 창구를 찾아도 투자조언을 해주고 포트폴리오도 짜준다. 누구나 손색없는 PB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지난 5월에는 셀프(Self) 재무진단 프로그램 '행복 청진기'를 출시해서 자산관리서비스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이름 그대로 병원에서 건강상태를 진단하듯 개인의 재무상태를 언제, 어디서든 편리하게 진단할 수 있다. 또 개인별 진단결과에 따른 맞춤형 가이드를 통해 효율적인 금융 솔루션까지 제시해 준다.

문턱 낮아지는 자산관리서비스

그런데 재무주치의는 굳이 PB가 아니더라도 은행 등 주거래 금융기관 직원 중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금융기관 직원들도 친하고 자주 만나는 고객들에게 아무래도 더 많은 관심과 정보를 제공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우리의 관심과 노력이다. 흔히들 병원을 찾아보라는 얘기를 들으면 "내 몸은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혹시 아픈 곳은 없는지를 살펴주고 이상이 발견되면 즉시 치료해주는 주치의가 있다면 그것보다 더 건강관리에 마음 든든한 일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재무주치의를 만드는 것이야 말로 재무적인 안정성을 확보하는 첫걸음이다. 모르는 길을 갈 때 혼자서 헤매기 보다는 잘 아는 사람에게 길을 물어 가는 것이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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