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의 금융교실] 푸어(poor) 전성시대

지역내일 2013-09-26
박철 국민은행 인재개발원 팀장

요즘 주변에 '푸어(Poor)'가 넘쳐난다. 푸어(Poor)는 '가난한, 빈곤한'이라는 뜻의 영어단어로 빈곤층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부동산경기 침체의 후유증으로 등장한 하우스 푸어에 이어 베이비 푸어, 에듀 푸어, 럭셔리 푸어까지 이런저런 푸어들이 온통 신문과 방송을 장식하고 있다.

우선 베이비 푸어(Baby Poor)란 아이 낳고 키우느라 빚을 내고는 대출이자에 쫓겨 사는 젊은 부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에듀 푸어(Edu Poor)는 과다한 교육비 지출로 가난하게 사는 교육 빈곤층을 말한다. 여기에 명품 열풍이 몰아치면서 무리하게 명품을 사들이느라 빚의 늪에 빠진 럭셔리 푸어(Luxury Poor)도 있다. 한마디로 지금 대한민국은 '푸어 공화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푸어가 늘어난 데는 남과 비교하는 왜곡된 소비문화도 큰 몫을 한 듯싶다. 예컨대, 남의 눈을 의식해서 육아와 자녀교육에 무리해서 지출하다 보면 베이비 푸어 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치솟는 물가 탓에 아이 낳고 키우는데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지만 빚까지 지는 현실은 "내 아이만큼은 결코 남부럽지 않게 키우겠다"는 부모의 과시욕도 한 원인이다. 졸업·입학시즌이면 '등골 백팩(부모의 등이 휠 정도로 비싼 책가방)'이란 말이 나올 만큼 비싼 책가방이나 학용품이 재고가 없을 정도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심지어 유아용품 시장에서도 명품 열풍이 몰아친다.

중산층 가구 절반 이상이 적자
그래서 요즘 아이의 겉모습만으로는 부모의 경제수준을 가늠할 수 없다고 한다. 부모들이 가정형편에는 아랑곳없이 아이에게 들이는 돈만큼은 아끼지 않기 때문이다.

자녀교육도 예외가 없다. 다른 집과 비교하면서 혹시라도 경쟁에서 뒤처질까 봐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다 자녀교육에 투자한다.

그러다 보니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교육비를 지출하기 일쑤다. 실제 부모 10명 중 8명이 "소득에 비해 (현재 지출하는) 교육비가 부담스럽다"고 생각한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가정형편은 따지지 않고 자녀교육에 '다걸기'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빚을 내서까지 자녀교육에 매달리다가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만다. 소위 에듀 푸어(Edu Poor)다. 초등학생 학부모 절반 이상이 자신을 에듀 푸어라고 생각한다는 조사결과가 있을 정도다.

명품을 사들이느라 카드 빚의 늪에 빠진 럭셔리 푸어는 더더욱 남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요즘 대한민국은 '명품 앓이' 중이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70% 가까이가 명품구매 경험이 있다고 한다.

문제는 소위 전시효과처럼 자존심이나 남에게 보이기 위해 명품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듀렌베리는 개인의 소비가 주위사람들의 소비에 의해 영향을 받는 다고 설명하면서 이를 전시효과라고 불렀다. 한편에서는 명품소비로 자신을 뽐내려 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기죽지 않으려고 덩달아 명품구매에 나선다. 심지어 빚을 내서까지 명품에 대한 갈증을 채우려 한다. 대한상공회의소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2012년) 명품을 구매한 사람들 10명 중 3명꼴(29.8%)로 명품을 카드할부로 산 뒤 할부금을 갚느라 허덕인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 의식하는 소비문화 벗어나야
가계부채 1000조 시대, "빚만 없어도 부자"라는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마저 등장할 정도다. 푸어들의 공통점도 바로 빚이다. 빚에서 탈출하지 못하면 결코 푸어 신세를 벗어날 수 없다는 얘기다. 빚을 진다는 것은 바꿔 말해 소득에 비해 과도한 지출을 한다는 것이다. 빚을 줄이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 소비의 거품을 빼야만 한다. 돈 씀씀이가 늘어나는 것은 하루아침이지만 한 번 늘어난 씀씀이는 어지간해서는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빚에 기대서 살수 밖에 없게 된다. 빚을 내서 남보란 듯 생활하기 보다는 빚이 없는 소박한 삶을 지향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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