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와 '게임'. 이 둘을 그대로 붙여 만든 '아파트 게임'이라는 말이 쉽게 이해되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을 터.
저자는 한국 사회에서 중산층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몇 차례의 버블과 정부 주도로 만들어진 대규모 아파트 단지 건설 덕을 봤다고 바라본다. 제2차 경제개발계획이 궤도에 오른 1960년대 후반, 제2차 유류 파동이 왔던 1970년대 중후반, 3저 호황의 1980년대 중반,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돌파한 1990년대 중반, 바이 코리아 열풍에 이어 카드 대란, 아파트 버블로 이어지던 2000년대 초중반.
1970년대 이후 세 번의 버블은 각각 강남의 아파트, 과천 목동 상계 중계의 아파트, 수도권의 5개 신도시 아파트와 짝을 이룬다. 이 버블들에 어떻게 대처했느냐, 발 빠르게 대도시의 아파트에 입주했느냐 그렇지 않았느냐로 중산층이 되었느냐, 아니냐가 갈린다.
저자는 책에서 "고도성장의 열매가 성과급의 형태로 예비 중산층의 계좌로 흘러들었다가 아파트 분양 대금으로 용도를 변경한 뒤, 부동산 시장의 가파른 상승세와 보조를 맞춰 몸집을 불려 다시 아파트 보유자의 호주머니로 되돌아온다"고 지적하고 있다.
저자의 지적대로 '세대론으로 살펴보는 아파트'라는 주제는 대체로 맞아떨어진다. 1970년대 중후반 청년기에 4.19 혁명과 5.16 군사 쿠데타를 겪은 1940년대생 4.19세대는 강남 지역에 솟아오르던 아파트 단지들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전월세를 전전하던 대기업 임원의 아내와 중동 파견 건설 노동자의 부인들은 18평짜리 계단식 아파트에 이사하며 중산층에 진입한다.
1950년대생 '유신 세대'들에게도 기회는 왔다. 1980년대 중후반 3년 연속 경상수지 흑자로 쌓인 시중의 유동자금은 아파트로 흘러들어와 전국의 집값은 두배 가까이 뛰었다. 재빨리 아파트를 구입했던 이들은 무사히 중산층이 됐다.
1960년대생인 386세대는 1993년 신도시 아파트의 대규모 분양 당시, 중산층에 진입할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이후 아파트 가격은 이전만큼 상승하지 못한다. 10년 주기의 아파트 폭등세 대신, 이들은 한반도를 급습한 외환 위기를 맞이한다.
외환 위기 이후 2000년대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같은 재테크 책들이 유행했다. 저금리 시대 부동산 열기는 이상하리만큼 계속됐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에야 부동산 열기는 한풀 꺾인다. '아파트로 인해 허덕이는 하우스 푸어' '은퇴를 앞둔 베이비 부머'가 사회적으로 표면화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저자는 지적한다. '정치'가 '저성장' 시대에 걸맞게 새로운 게임의 규칙을 고안해내지 못하고 중산층이 욕망의 구조조정을 단행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악화일로를 겪게 될 것이라고. 저자가 인용한 소설가 박민규의 표현을 빌린다면, 아파트에 대한 '새로운 산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휴머니스트
박해천 지음
1만8000원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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