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 칼럼] 하얀 거짓말, 빨간 거짓말

지역내일 2013-09-27 (수정 2013-09-27 오후 3:58:52)
한울교회 목사 구미 YMCA 이사장

옛날에 애꾸눈 임금이 자신의 모습을 후대에서 남기고 싶어서 전국의 유명 화가들을 불러 모았다. 모인 화가들 가운데는 아부를 잘하는 이들이 있었고 고지식한 이들이 있었다. 아부형 화가들은 임금의 두 눈을 성하게 그렸다. 반면에 고지식한 화가들은 애꾸 그대로 그렸다. 전자는 보기는 좋지만 가짜라 마음에 안 들었다. 고지식한 화가들의 그림은 진짜였지만 애꾸눈이 보기 싫어 역시 퇴짜를 놓았다.

그때 초라한 한 남자가 앞으로 나와서 자신이 한번 그려보겠다고 했다. 임금이 허락했다. 한참 뒤에 그가 그린 초상화를 보던 임금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화가는 성한 눈이 있는 옆모습을 그렸던 것이다. 거짓도 불호령도 모두 피할 수 있었다.

사람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작품들을 가리켜서 '예술'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실 예술이란 '드러냄'의 작업일 뿐만이 아니라 '감춤'의 작업이기도 하다. 둘 다 사람에게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영화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장면들을 보면 똑 같은 장소지만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보는 것보다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 사진도 그렇다. 실제로 우리가 늘 다니는 곳의 풍경을 찍었음에도 실제보다 아름답게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잘 감춘 결과다. 사진을 찍을 때 흔히 쓰는 방법이 '아웃포커스'인데, 이건 목표물만 선명하게 부각시키고 나머지는 흐릿하게 처리하는 기법이다. 엄밀하게 일종의 거짓일 수 있다.

그러나 거짓이라고 해서 다 나쁜 것은 아니다. 하얀 거짓말도 있고 빨간 거짓말도 있다. 탈무드에 보면 '이런 경우에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사실왜곡 교과서 검정 통과는 거짓 공인
이미 누군가가 사버린 물건에 대하여 의견을 물어왔을 때는 비록 그것이 나쁘다고 해도 "훌륭한 것입니다!"라고 거짓말을 하라는 것이고, 친구가 결혼했을 때는 반드시 "미인을 얻으셨군요. 행복하게 사십시오!"라고 거짓말을 하라는 것이다. 하얀 거짓말은 남을 위한 괜찮은 거짓말이고, 빨간 거짓말은 자신이 이득을 보려고 저지르는 나쁜 거짓말이다.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에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다 표현하지 않고 추한 부분을 숨기는 것을 두고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다. 설령 누가 시비를 걸더라도 책임질 일은 없다. 그러나 학문의 세계와 언론의 영역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의도적으로 뭔가를 감춘다든지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 나아가 하얀 거짓말에 속하는 것조차도 멀리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계와 언론계에서는 아예 새빨간 거짓말이 횡행한다. 이런 일이 계속 용납되는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나라의 망조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때 묻지 않은 어린 학생들이 보고 공부할 교과서에, 학자라는 사람들이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글을 쓰는 것도 모자라, 명백한 사실관계까지 왜곡하는 내용을 실었는데도 대한민국의 교육을 책임지는 부서의 검정을 통과했으니, 정부가 빨간 거짓말을 공인한 셈이 되었다.

교학사의 국사 교과서가 말썽이 되자, 그걸 반격한답시고 어느 노 기자는 다른 교과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박정희 정권 시절의 혼식 장려를 '혼식 강제'라고 과장했다는 것이다. 과연 그게 강제였는지 장려였는지는 그 당시 중고등학교에 다녔던 사람 두셋만 붙들고 물어보면 금방 답이 나오는데도 빨간 거짓말을 멈추지 않는다.

'혼식장려'였나 '혼식 강제'였나
세칭 '메이저 언론'이라고 불리는 일부 언론사들이 요즘 보이는 행태를 보면 빨간 거짓말에 대한 그들의 가책 시스템이 아예 붕괴되어 있는 것 같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4대강 사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논조를 견지하던 게 불과 몇년 전인데, 감사원이 그 사업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그게 검찰 조사로 이어지고 국민여론이 '대국민 사기극'이었다는 쪽으로 기울자 그새 논조를 바꿔버렸다. 거짓말의 색깔이 빨갛다가 못해 검붉은 색이 되어버렸다.

이른바 경제대통령을 자임하고 나섰던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5년의 경제성적표가 거의 모든 객관적 지표에서 노무현 시절에 비해 떨어지는데도 아직 그를 두둔하는 사람들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기초노령연금 공약을 취임 1년도 안되어 납득할 만한 이유도 못 대며 파기해버렸는데도, 여전히 박 대통령의 정책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낸 노인들도 있다. 거짓말을 거짓말로 인식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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