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논설고
한국의 민간 정원 중에서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전남 담양 소쇄원 제월당 마루에 걸터앉으면 소쇄원 안 공간뿐 아니라 저 건너 서석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자리를 조금 뒤로 옮겨 앉으면 하늘은 반쪽으로 나뉘고 서석산 자락만 눈에 들어 온다.
좀더 뒤로 물러나 마루 복판에 앉아 보면 하늘과 산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처마 끝만 눈썹 끝에 걸린다. 더 뒤로 옮겨 기둥에 기댈라치면 뜰악만 눈에 잡히고 애월단을 병풍처럼 둘러리 선 황토담이 코끝에 닿을 듯 하다. 소쇄원에서 잠시 탐관하게 되는 '제월당의 4경'이다.
추석이 한참 지났는데도 정치권은 추석민심 타령으로 시끄럽다. 추석민심은 그대로 그자리에 있는데 보는 위치에 따라 읽는 민심은 제 각각이다. 언제라고 그러지 않았던 적이 없지만 이번 추석민심 읽기도 정부와 여야 할 것 없이 제 입맛대로다.
담양의 소쇄원을 둘러싼 하늘과 산은 언제나 그대로 그 자리에 있는데도 보는 사람에 따라, 각도에 따라 4경을 연출하듯, 정부와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의 추석민심 읽기는 제멋대로, 제 편리한대로다. 그래서 제 눈의 민심을 등에 업고 '정치전쟁'에 들어갔다. 진짜 민심과는 사뭇 동떨어진 오독으로 국민 분노와 정부 불신을 부르는 정쟁을 벌이고 있다.
이번 추석 상차림은 어느 해보다 풍성했다. 국정원 댓글사건에 이은 국정원 개혁, 이석기 의원 사건,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 아들 스캔들과 청와대의 사표수리 거부, 대통령의 불통문제, 민주당의 장외투쟁 등등 논쟁과 화제거리로 듬뿍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추석상의 변두리를 채우기에는 좋은 재료로 손색이 없었다. 안주 감으로도 모자람이 없었다. 허나 주 제물로는 다소 함량미달이었다.
그렇다면 진짜 민심의 주제는 무엇이었을까. 아무리 오독을 해도 오독으로 끝낼 수 없는 민심의 핵심은 먹고 사는 문제, 곧 경제였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구호가 선거 때에만 유효한 노래가 아니라 늘 민심의 중심에 자리하는 이슈이다.
일자리·경기·전월세 등 경제문제에 관심
그만큼 경제가 어렵다는 반증이다. 서민들의 삶의 무게가 더욱 무거워졌다는 의미다. 추석 직후에 실시한 여론조사마다 민심의 중심은 경제문제였음이 확인됐다. 그 중에서도 일자리와 경기활성화가 첫 손에 꼽혔다. 자식 대학 등록금은 또 어떻게 마련할까, 졸업을 한들 취직이 안되니 어쩌지, 자식 결혼을 서둘러야 할 터인데 집장만은 어쩌지, 장사는 이제 좀 풀리려나, 빚이 늘어나는 판에 이자까지 오르지 않으려나, 노령의 부모 병원비와 약값부담을 어찌 감당하지 등 생계문제가 주류를 이뤘다.
전월세난은 백약이 무효다. 이 정부들어 벌써 세 차례나 대책을 내놓았으나 조금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창조경제를 국정철학으로 내세운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전혀 창조적이지 못하다. 과거 정권에서도 써먹었던 카드를 배끼거나 약간 손질한 처방으로는 뿌리 깊은 고질병을 고칠 수 없다.
경기는 갈수록 나빠지고 일자리도 늘어날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는 마당에 정부는세제개편을 한답시고 서민 중산층에 증세폭탄이나 안기려 한다. 증세를 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증세는 이뤄지고 있다. 증세는 이런 수준에서 멈출 것 같지 않다. 거위의 깃털을 뽑는 수준에서 거위의 살점을 뜯어내는 수준의 증세로 가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증세 없는 복지를 약속했던 이 정부가 끝내 증세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내비쳤다.
증세만큼 인기 없는 정책도 없다. 국민동의 없이 증세를 몰아붙이다가는 조세저항에 부딪혀 정권이 흔들리기 십상이다. 그래서 정부는 대안으로 세출구조조정과 지하경제 양성화를 들고 나왔다.
오판은 실패의 원인, 민심 제대로 읽어야
그러나 이 방안은 한계를 드러냈다. 부자감세 철회와 지하경제양성화는 손을 든 상태다. 현실적으로 이제 남은 방법은 복지를 줄이는 길밖에 없다. 공짜 복지는 없다는 논쟁은 복지축소 명분쌓기였던 셈이다. 결국 복지공약 파기 수순으로 가고 있다. 국민에게 증세보다 더한 실망감을 안겨 줄 뿐이다. 선거공약은 애초부터 믿을 게 못 된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꼴이다.
긴 추석연휴기간에 관심권 밖으로 밀릴뻔한 사건이 있었다. 미국의 양적완화 출구전략이다. 공교롭게도 추석연휴 때 공개시장위원회가 열렸다. 결론은 의외로 현상유지였다. 양적완화 유지로 당장의 급한 불은 껐지만 위기가 가신 것은 아니다. 위기의 연장일 뿐이다. 다시 불확실성의 미궁으로 빠져든 꼴이다. 양적완화의 달콤함에 오래 빠져 있을수록 쓴맛도 짙고 길어질 수 있다. 대비책이 있는지 궁금하다.
민심의 오독은 오판을 낳는다. 오판은 실패를 낳는다. 민심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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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민간 정원 중에서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전남 담양 소쇄원 제월당 마루에 걸터앉으면 소쇄원 안 공간뿐 아니라 저 건너 서석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자리를 조금 뒤로 옮겨 앉으면 하늘은 반쪽으로 나뉘고 서석산 자락만 눈에 들어 온다.
좀더 뒤로 물러나 마루 복판에 앉아 보면 하늘과 산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처마 끝만 눈썹 끝에 걸린다. 더 뒤로 옮겨 기둥에 기댈라치면 뜰악만 눈에 잡히고 애월단을 병풍처럼 둘러리 선 황토담이 코끝에 닿을 듯 하다. 소쇄원에서 잠시 탐관하게 되는 '제월당의 4경'이다.
추석이 한참 지났는데도 정치권은 추석민심 타령으로 시끄럽다. 추석민심은 그대로 그자리에 있는데 보는 위치에 따라 읽는 민심은 제 각각이다. 언제라고 그러지 않았던 적이 없지만 이번 추석민심 읽기도 정부와 여야 할 것 없이 제 입맛대로다.
담양의 소쇄원을 둘러싼 하늘과 산은 언제나 그대로 그 자리에 있는데도 보는 사람에 따라, 각도에 따라 4경을 연출하듯, 정부와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의 추석민심 읽기는 제멋대로, 제 편리한대로다. 그래서 제 눈의 민심을 등에 업고 '정치전쟁'에 들어갔다. 진짜 민심과는 사뭇 동떨어진 오독으로 국민 분노와 정부 불신을 부르는 정쟁을 벌이고 있다.
이번 추석 상차림은 어느 해보다 풍성했다. 국정원 댓글사건에 이은 국정원 개혁, 이석기 의원 사건,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 아들 스캔들과 청와대의 사표수리 거부, 대통령의 불통문제, 민주당의 장외투쟁 등등 논쟁과 화제거리로 듬뿍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추석상의 변두리를 채우기에는 좋은 재료로 손색이 없었다. 안주 감으로도 모자람이 없었다. 허나 주 제물로는 다소 함량미달이었다.
그렇다면 진짜 민심의 주제는 무엇이었을까. 아무리 오독을 해도 오독으로 끝낼 수 없는 민심의 핵심은 먹고 사는 문제, 곧 경제였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구호가 선거 때에만 유효한 노래가 아니라 늘 민심의 중심에 자리하는 이슈이다.
일자리·경기·전월세 등 경제문제에 관심
그만큼 경제가 어렵다는 반증이다. 서민들의 삶의 무게가 더욱 무거워졌다는 의미다. 추석 직후에 실시한 여론조사마다 민심의 중심은 경제문제였음이 확인됐다. 그 중에서도 일자리와 경기활성화가 첫 손에 꼽혔다. 자식 대학 등록금은 또 어떻게 마련할까, 졸업을 한들 취직이 안되니 어쩌지, 자식 결혼을 서둘러야 할 터인데 집장만은 어쩌지, 장사는 이제 좀 풀리려나, 빚이 늘어나는 판에 이자까지 오르지 않으려나, 노령의 부모 병원비와 약값부담을 어찌 감당하지 등 생계문제가 주류를 이뤘다.
전월세난은 백약이 무효다. 이 정부들어 벌써 세 차례나 대책을 내놓았으나 조금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창조경제를 국정철학으로 내세운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전혀 창조적이지 못하다. 과거 정권에서도 써먹었던 카드를 배끼거나 약간 손질한 처방으로는 뿌리 깊은 고질병을 고칠 수 없다.
경기는 갈수록 나빠지고 일자리도 늘어날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는 마당에 정부는세제개편을 한답시고 서민 중산층에 증세폭탄이나 안기려 한다. 증세를 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증세는 이뤄지고 있다. 증세는 이런 수준에서 멈출 것 같지 않다. 거위의 깃털을 뽑는 수준에서 거위의 살점을 뜯어내는 수준의 증세로 가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증세 없는 복지를 약속했던 이 정부가 끝내 증세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내비쳤다.
증세만큼 인기 없는 정책도 없다. 국민동의 없이 증세를 몰아붙이다가는 조세저항에 부딪혀 정권이 흔들리기 십상이다. 그래서 정부는 대안으로 세출구조조정과 지하경제 양성화를 들고 나왔다.
오판은 실패의 원인, 민심 제대로 읽어야
그러나 이 방안은 한계를 드러냈다. 부자감세 철회와 지하경제양성화는 손을 든 상태다. 현실적으로 이제 남은 방법은 복지를 줄이는 길밖에 없다. 공짜 복지는 없다는 논쟁은 복지축소 명분쌓기였던 셈이다. 결국 복지공약 파기 수순으로 가고 있다. 국민에게 증세보다 더한 실망감을 안겨 줄 뿐이다. 선거공약은 애초부터 믿을 게 못 된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꼴이다.
긴 추석연휴기간에 관심권 밖으로 밀릴뻔한 사건이 있었다. 미국의 양적완화 출구전략이다. 공교롭게도 추석연휴 때 공개시장위원회가 열렸다. 결론은 의외로 현상유지였다. 양적완화 유지로 당장의 급한 불은 껐지만 위기가 가신 것은 아니다. 위기의 연장일 뿐이다. 다시 불확실성의 미궁으로 빠져든 꼴이다. 양적완화의 달콤함에 오래 빠져 있을수록 쓴맛도 짙고 길어질 수 있다. 대비책이 있는지 궁금하다.
민심의 오독은 오판을 낳는다. 오판은 실패를 낳는다. 민심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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