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령을 넘어 양양을 물들이다

강원도에서 느끼는 가을 정취

지역내일 2013-09-02

라디오에서 양희은의 ‘한계령’을 듣다가 불현듯 그곳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랫말처럼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돌아다녀보리라. 순전히 그런 마음으로 시작한 여행이었다. 해발 900미터에서 만난 한계령의 가을하늘과 길에서 만난 사람들. 그것만으로도 이번 여정은 꽤 성공적이었다. 

한계령

한계령 _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먼저 찾아간 곳은 해발 900미터에 위치한 양양군 오색리 한계령휴게소다. 시원한 바람과 굽이굽이 내려다보이는 산 능선, 드높은 가을하늘의 눈 시린 파란색이 설악의 녹음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귀여운 다람쥐의 몸놀림에 눈을 떼지 못할 즈음 한 노부부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 휴게소…… 누가 지은 줄 알아요?”
당연히 몰랐고 전혀 예상할 수도 없는 질문이었다. 한국 현대건축사에 큰 획을 그은 故 김수근 선생의 작품 중 ‘자연과 가장 어우러진 건축물’로 평가받으며 1982년 한국건축가협회 대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얘기를 듣고 나서 휴게소 식당 안 테라스로 향하니 설악산의 장엄한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테라스를 길게 설계한 이유도 이 때문이란다.  
노부부에게 가벼운 눈인사로 고마움을 대신하며 휴게소 밖을 빠져나오니 이번에는 자전거동호회 회원들이 한계령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평균 나이 70대인 굴렁쇠 회원들이다. ‘이 나이에 두려울 게 없다’며 한계령 자전거투어를 감행하는 꽃할배, 꽃할매들을 보니 절로 존경심이 생겨났다. 이들의 자전거 행렬을 이끄는 리더는 5단자전거 기네스보유자 어전귀 회원. 카메라를 향해 손짓하고는 힘차게 페달을 밟는 자전거 행렬을 바라보며 이 산 저 산 누비고 다닐 그들의 아름다운 여정에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떡마을

오색 & 송천리 _ 오색약수터와 송천 떡마을의 정취
 
한계령휴게소를 떠나 약 8킬로미터 떨어진 오색약수터를 찾았다. 오색약수는 오색석사에 있던 한 스님이 계곡 암반 사이에서 솟아나는 물을 발견해 약수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홍천 삼봉약수, 인제 개인약수와 함께 국가지정문화재인 천연기념물 제529호로 지정된 귀한 물이다. 당뇨 등에 효과가 있고 구충 효과가 있어 병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직접 찾아가본 오색약수터의 외관은 그냥 평범한 웅덩이처럼 볼품이 없다. 물맛도 쇳물처럼 시큼 쌉싸래하지만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쓴 법. 그 약수를 맛보기 위해 전국에서 찾아든 행렬이 어느새 긴 줄을 이뤘다. 긴 기다림 끝에 약수 한 바가지를 벌컥 들이켠 뒤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송천 떡마을로 향했다.
입구에는 허름하지만 정겨운 떡집 하나가 자리하고 있고 마을로 들어서는 길목에는 어느새 농익은 빨간 고추와 늙은 오이가 시골의 정취를 물씬 풍겼다. 이곳에서 만든 송천떡은 직접 손으로 빚은 전통 재래떡으로 영동지방에서는 입소문이 자자하다. 쑥버무리, 취미지떡, 현미찰뭉생이떡 등은 투박하지만 할머니 손맛이 그대로 느껴진다. 평일에는 다소 한적하지만 주말에는 미리 예약하면 떡 만들기 체험도 가능하다. 9월 10일까지는 마을 홈페이지에서 떡 주문이 가능하다고 하니 모처럼 전통 재래떡으로 명절 분위기를 만끽해보자.

낙산사

낙산사 _ 소망 기원하는 천혜의 해상 사찰

양양에 가면 반드시 들러야 한다는 낙산사. 강화도 보문사와 금산 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해상 사찰인 이곳은 동해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풍광과 부처님 전신사리가 출현한 공중사리탑(보물 제1723호), 건칠관음보살좌상(보물 제1362호), 칠층서탑(보물 제499호), 해수관음상, 천수관음상, 칠관음상 등 모든 관음상이 봉안된 보타전, 그리고 의상대사의 유물이 봉안된 의상기념관 등이 있는 관음 성지이다. 안타깝게도 지난 2005년 양양군 사교리 일대 야산에서 불이나 낙산사가 소실되면서 중요한 문화재들이 불에 탄 쓰라린 기억이 있지만, 2009년 화마를 딛고 4년 만에 복원돼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주차장을 지나 낙산사로 향하다보면 ‘꿈이 이루어지는 길’이라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천천히 걸으며 소망을 염원하는 곳. 엄마의 완쾌를 기원하는 딸의 소망도, 아들의 수능 합격을 염원하는 엄마의 소망도 길 위의 작은 돌탑 위에 차곡차곡 쌓아져 있다.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사람들의 소망이 이뤄지길 바라며 입구에 있는 ‘마음을 씻는 물’로 손을 씻은 뒤 경건한 마음으로 낙산사에 들어섰다.
바다 절벽 꼭대기에 세워져있는 해수관음상은 파란 하늘 아래 온화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 아래에 있는 두꺼비상을 만지며 소원 2가지를 빌면 이뤄진다 하여 하염없이 쓰다듬고 있는 사람도 보였다. 해안 절벽에 자리한 법당인 홍련암 등 느리게 거닐며 낙산사 곳곳에서 소망을 염원한 뒤 양양 5일장으로 향했다. 

양양

양양 5일장 _ 왁자지껄 사람 냄새 가득한 곳 
매월 4일 9일, 14일, 19일, 24일 29일에 열리는 양양 5일장은 영동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시장 입구에 들어서니 여기저기 흥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즉석에서 쪄낸 찰옥수수를 파는 아저씨, 작은 바구니에 사탕과 과자를 담으며 행복한 고민에 빠진 아이들, 그리고 자식 키우듯 애지중지 키운 채소들을 팔기 위해 장에 나온 할머니도 보였다. 세월의 무게만큼 등은 굽었지만 물건을 팔 때마다 입에는 한 가득 미소를 머금고 있는 모습이었다. 
가마솥부터 낫, 절구통, 망치, 쥐덫 등 갖가지 농기구를 파는 곳도 눈에 띄었다. 새 제품도 있지만 잔뜩 녹슬어 버려야할 것만 같은 중고 농기구까지 즐비하다. 서울 촌놈에겐 그마저도 이색적인 풍광인지라 호기심을 보이니 “왜, 낫 줄까?”라며 아주머니께서 농을 건네셨다. 동시에 터진 웃음에 민망해하던 차에 어디선가 색소폰 소리가 들려왔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 밴드지만 연주 소리만큼은 나이를 초월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슬슬 배꼽시계가 요동쳤다. 시장의 먹을거리는 보는 것만큼이나 즐거운 일이 아닌가. 꽈배기와 어묵으로 허기를 달래고 시골을 맛보라는 아주머니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대낮부터 막걸리와 감자전을 먹어치웠다. 어느새 발그레 빨갛게 물든 얼굴에 절로 배시시 웃음이 났다. 
“어때 맛나지? 그게 바로 양양의 맛이여!”  

피옥희 리포터 piokh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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