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세계화는 가능한가
임현진 서울대학교 교수 사회학 현 듀크대학교 초빙교수
작년 9·11 테러이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시작된 대테러전쟁을 위해 불과 다섯 달 사이에 200억 달러라는 엄청난 전비를 사용하였다. 우리나라 1년 국가예산의 절반가량 되는 막대한 금액이다. 만약 이중 일부를 팔레스타인 난민촌 재건을 위해 썼다면, 중동이 지금과 같은 테러와 전쟁의 수렁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물론 이는 부질없는 가정이다.
지금 세계는 엄청난 부익부빈익빈 현상을 겪고 있다. 세계 20%의 인구가 무려 80%의 부를 가지고 있다면, 세계 80%의 인구는 고작 20%밖에 지니고 있지 못하다. 한달 생계를 8만원으로 꾸려가는 사람들이 지구위에 30억명이나 된다. 지난 3월 중순 멕시코 몬테레이에서 열린 개발재원 마련을 위한 유엔정상회의는 빈곤의 지구적 심화에 대해 선후진국이 공동의 우려를 표명했다.
부익부빈익빈으로 가는 세계화
몬테레이 합의는 선진국들이 후진국들에 대한 원조를 배가하는 대신 정치적 자유화와 경제적 안정화를 조건으로 달았다. 그 동안 개발원조가 빈곤퇴치와 무관하게 남용되었다는 점에서 사후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원조가 경제적 목적 보다 정치적 동기에 의해 주어지다 보니 부정부패와 인권유린으로 물든 독재국가들이 상당수 혜택을 받았던 것이 지난날 관행이다. 개발원조가 냉전체제아래에서 우방국가를 만들기 위한 포석에서 추진되었기 때문이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유럽이 개도국들에 준 총 1조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액수의 원조가 상당 부분 물거품이 된 배경이다.
이번 회의의 성과는 선후진국간의 점증하는 빈부격차를 확인한 데 의의가 있다. 세계화가 부의 증진을 가져오지만 나라들 사이의 소득격차는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는 데 문제의식을 같이 한 것이다. 그러나 선진국들이 강조한 경제적 안정화는 다소 자가당착적이다. 국내시장의 개방, 무역장벽의 완화, 민간투자의 확대는 본질적으로 세계화의 논리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개도국은 산업과 금융에 대한 개방에 앞서 체질개선이 중요하다. 우리의 지난 경제위기가 웅변하여주듯, 섣부른 자유화와 탈규제는 개도국의 성장기반을 더욱 대외종속적으로 만들 뿐이다.
오늘의 빈곤문제는 원조만으로 해결될 성질이 아니다. 개발을 위해 외자유치를 적극적으로 시도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지역의 나라들을 보라. 그들의 대외채무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후진국은 경제체질을 바꿔줄 나름대로의 발전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그리고 선진국은 교역과 투자에서 위계적인 세계경제의 구조를 개선해 주어야 한다.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의 관계가 동등해지지 않는 한 빈곤탈피는 쉽지 않다.
멕시코의 초청으로 이번 유엔정상회의에 이례적으로 참석한 쿠바의 카스트로 대통령은 빈곤의 책임을 ‘잔인한 세계화’를 강요한 선진국들에 돌렸다. 새로운 제국주의로서 세계화를 고발한 것이다. 개발원조란 미끼로 인해 미국과 유럽의 눈치보기 바쁜 후진국들의 대변인을 자처한 셈이다. 미국의 압력으로 결국 그는 폐막식까지 참석치 못하고 부시 대통령이 도착하기 전에 자의반타의반 귀국길에 오르는 신세가 돼버렸다. 제아무리 멕시코와 쿠바 사이의 관계가 우호적이라 하더라도 대미의존적인 멕시코의 외교 입지를 잘 보여준다.
세계화는 선진국들에게 지배의 영역이지만 후진국들에겐 저항의 담론이다. 그럼에도 후진국들의 지역적·문화적 다양성, 민주화·산업화 수준의 차이는 공통의 저항 전선을 허락치 않고 있다. 초국적 자본에 의해 움직이는 위로부터의 세계화에 숨겨진 약육강식의 논리가 갖는 위험성에 공감할 뿐 연대는 찾기 어렵다.
위로부터의 세계화에 대한 대안들
무기력한 유엔을 대체하려고 출범한 ‘지구연방’(Federation of Earth)은 이름만 있지 실체가 없다. 그것은 범세계적 입법 행정 사법 기구를 만드는데 실패했다. 교역량에 따라 선진국들에게 일정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지구복지기금’을 만들자는 주장도 수그러든 지 오래다. 후진국들의 주장에 대해 선진국들이 따라줄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국제비정부조직들(INGOs)에 의해 주도된 시애틀, 다보스, 제노바, 뉴욕 등지에서의 반세계화 저항운동이 그나마 눈에 띤다. 환경 인권 평화 빈곤에서 세계화가 지닌 어두운 면을 고취시키는 데 일단 성공적이었다. 이를 모태로 선진국 주도의 ‘세계경제회의’에 대항하는 ‘세계사회회의’가 등장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는 말이 쉽지 구체화가 어렵다. 위로부터의 세계화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그 기본은 풀뿌리 수준에서 시민의 역량강화에 있다. 시민에 대한 부단한 교육과 계몽을 통한 참여와 자조의 사회가 우선은 해답이다. 세계화는 대세이지만 그것을 견제할 수 있는 밑으로부터의 힘이 필요한 것이다.
임현진 서울대학교 교수 사회학 현 듀크대학교 초빙교수
임현진 서울대학교 교수 사회학 현 듀크대학교 초빙교수
작년 9·11 테러이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시작된 대테러전쟁을 위해 불과 다섯 달 사이에 200억 달러라는 엄청난 전비를 사용하였다. 우리나라 1년 국가예산의 절반가량 되는 막대한 금액이다. 만약 이중 일부를 팔레스타인 난민촌 재건을 위해 썼다면, 중동이 지금과 같은 테러와 전쟁의 수렁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물론 이는 부질없는 가정이다.
지금 세계는 엄청난 부익부빈익빈 현상을 겪고 있다. 세계 20%의 인구가 무려 80%의 부를 가지고 있다면, 세계 80%의 인구는 고작 20%밖에 지니고 있지 못하다. 한달 생계를 8만원으로 꾸려가는 사람들이 지구위에 30억명이나 된다. 지난 3월 중순 멕시코 몬테레이에서 열린 개발재원 마련을 위한 유엔정상회의는 빈곤의 지구적 심화에 대해 선후진국이 공동의 우려를 표명했다.
부익부빈익빈으로 가는 세계화
몬테레이 합의는 선진국들이 후진국들에 대한 원조를 배가하는 대신 정치적 자유화와 경제적 안정화를 조건으로 달았다. 그 동안 개발원조가 빈곤퇴치와 무관하게 남용되었다는 점에서 사후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원조가 경제적 목적 보다 정치적 동기에 의해 주어지다 보니 부정부패와 인권유린으로 물든 독재국가들이 상당수 혜택을 받았던 것이 지난날 관행이다. 개발원조가 냉전체제아래에서 우방국가를 만들기 위한 포석에서 추진되었기 때문이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유럽이 개도국들에 준 총 1조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액수의 원조가 상당 부분 물거품이 된 배경이다.
이번 회의의 성과는 선후진국간의 점증하는 빈부격차를 확인한 데 의의가 있다. 세계화가 부의 증진을 가져오지만 나라들 사이의 소득격차는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는 데 문제의식을 같이 한 것이다. 그러나 선진국들이 강조한 경제적 안정화는 다소 자가당착적이다. 국내시장의 개방, 무역장벽의 완화, 민간투자의 확대는 본질적으로 세계화의 논리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개도국은 산업과 금융에 대한 개방에 앞서 체질개선이 중요하다. 우리의 지난 경제위기가 웅변하여주듯, 섣부른 자유화와 탈규제는 개도국의 성장기반을 더욱 대외종속적으로 만들 뿐이다.
오늘의 빈곤문제는 원조만으로 해결될 성질이 아니다. 개발을 위해 외자유치를 적극적으로 시도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지역의 나라들을 보라. 그들의 대외채무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후진국은 경제체질을 바꿔줄 나름대로의 발전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그리고 선진국은 교역과 투자에서 위계적인 세계경제의 구조를 개선해 주어야 한다.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의 관계가 동등해지지 않는 한 빈곤탈피는 쉽지 않다.
멕시코의 초청으로 이번 유엔정상회의에 이례적으로 참석한 쿠바의 카스트로 대통령은 빈곤의 책임을 ‘잔인한 세계화’를 강요한 선진국들에 돌렸다. 새로운 제국주의로서 세계화를 고발한 것이다. 개발원조란 미끼로 인해 미국과 유럽의 눈치보기 바쁜 후진국들의 대변인을 자처한 셈이다. 미국의 압력으로 결국 그는 폐막식까지 참석치 못하고 부시 대통령이 도착하기 전에 자의반타의반 귀국길에 오르는 신세가 돼버렸다. 제아무리 멕시코와 쿠바 사이의 관계가 우호적이라 하더라도 대미의존적인 멕시코의 외교 입지를 잘 보여준다.
세계화는 선진국들에게 지배의 영역이지만 후진국들에겐 저항의 담론이다. 그럼에도 후진국들의 지역적·문화적 다양성, 민주화·산업화 수준의 차이는 공통의 저항 전선을 허락치 않고 있다. 초국적 자본에 의해 움직이는 위로부터의 세계화에 숨겨진 약육강식의 논리가 갖는 위험성에 공감할 뿐 연대는 찾기 어렵다.
위로부터의 세계화에 대한 대안들
무기력한 유엔을 대체하려고 출범한 ‘지구연방’(Federation of Earth)은 이름만 있지 실체가 없다. 그것은 범세계적 입법 행정 사법 기구를 만드는데 실패했다. 교역량에 따라 선진국들에게 일정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지구복지기금’을 만들자는 주장도 수그러든 지 오래다. 후진국들의 주장에 대해 선진국들이 따라줄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국제비정부조직들(INGOs)에 의해 주도된 시애틀, 다보스, 제노바, 뉴욕 등지에서의 반세계화 저항운동이 그나마 눈에 띤다. 환경 인권 평화 빈곤에서 세계화가 지닌 어두운 면을 고취시키는 데 일단 성공적이었다. 이를 모태로 선진국 주도의 ‘세계경제회의’에 대항하는 ‘세계사회회의’가 등장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는 말이 쉽지 구체화가 어렵다. 위로부터의 세계화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그 기본은 풀뿌리 수준에서 시민의 역량강화에 있다. 시민에 대한 부단한 교육과 계몽을 통한 참여와 자조의 사회가 우선은 해답이다. 세계화는 대세이지만 그것을 견제할 수 있는 밑으로부터의 힘이 필요한 것이다.
임현진 서울대학교 교수 사회학 현 듀크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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