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모(54)씨는 2005년 마흔여섯의 나이에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재력가 김 모씨를 소개받았다. 김씨는 부인과 사별한 후 재혼처를 구하던 중이었다. 호텔커피숍에 마주앉은 정씨는 "나는 이화여대 의대를 나와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전공의를 마쳤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전혀 사실무근이었지만 정씨는 당시 의사 명의를 빌려 성형외과를 운영하며 원장행세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김씨가 깜빡 속아 넘어갔다.
정씨는 곧장 병원운영자금을 빌려달라고 했다. "성형외과 수익이 10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성수기에는 1~2억씩 나오니 1년안에 다 갚겠다"고 말했다. 이 역시 거짓말이었다. 정씨는 이전 동거남에게 연대보증을 잘못 서서 신용불량 상태였다. 이런 사실을 모른 채 결혼할 단꿈에 취한 김씨는 모두 1억7000만원을 빌려주었다. 정씨는 이 돈으로 의료집기 등을 사들여 강남구 논현동에 새로이 성형외과를 개업했다. 월급 1000만원에 의사 자격소유자를 고용해 원장으로 앉혔다.
3년이 채 안돼 두사람의 관계가 파탄에 이르렀다. 정씨 곁에는 또다른 사업가가 돈을 대고 있었다. 김씨는 배우자로서 동거의무를 다하지 않는다며 의료집기도구를 반환하라고 요구하러 갔다가 오히려 봉변을 당했다. 병원원장실에서 제3의 사업가에게 폭행을 당해 도망치는 그를 정씨가 복도까지 쫓아나와 손을 물어뜯은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1단독 황승태 판사는 의사 자격없이 병원을 개업한 정씨에게 보건범죄단속특별법 위반과 김씨 공동폭행을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6월과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고 9일 밝혔다. 다만 김씨에게 1억7000만원을 편취한 사기혐의에 대해서는 "돈이 혼인신고한 당일 지급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배우자간에 사기죄는 면제대상"이라며 무죄로 판단했다.
진병기 기자 j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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