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반장의 변신 … 행정도우미에서 주민대변자로

지역내일 2013-07-08
용산구청장 반장 만나 지역문제 듣고
동대문구 통장은 주민불편 해소 나서

"재건축이 중단된 건물이 있는데 동물 사체 때문에 악취가 진동해요. 청소라도 했으면 합니다." "삼각지고가도로가 오토바이 폭주족으로 몸살을 앓습니다. 소음단속을 부탁합니다." "도로변 헌옷수거함이 쓰레기 투기장이 됐어요. 수거함을 골목 안으로 옮기고 경고문을 붙이면 어떨까요?" "올해 방역이 줄었어요. 노인들은 집안까지 소독되라고 창문도 열어두는데 방역이 안된다고 불만이 많아요."

대통령 지시사항부터 동주민센터 안내까지 주민들에게 전하는 행정도우미 통장 반장. 업무전산화 등으로 행정기관과 주민의 직접 대면이 줄어들면서 역할이 상당부분 적어진 가운데 서울 동대문구와 용산구 통·반장이 주민 대변자로 거듭나고 있다. 지역주민들이 공통으로 안고 있지만 구나 동에서 미처 챙기지 못한 부분을 발굴해 전달한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지난 5월부터 후암동을 시작으로 통·반장을 직접 만나 주민들 골칫거리를 듣고 있다. '가가호호 행정서비스 - 반장에게 듣는다'라는 제목까지 붙여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를 할애, 하루 1개동씩 방문한다. 23일 보광동까지 방문하면 통·반장 2539명 대부분을 만나게 된다. 성장현 구청장은 "행정조직 실핏줄인데 전에 비해 정체돼있다"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어려움이나 구에 바라는 바는 없는지 듣고 싶다"고 설명했다.

구청장 면담요청에 반장들 반응은 뜨겁다. 박창순 자치행정과 주무관은 "동마다 전체 대상자 가운데 90% 이상은 참석한다"며 "기대 이상으로 참석률이 높아 당초 기대했던 반장조직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반장들은 일반 주민들처럼 자신의 재산권이나 이익이 얽힌 민원보다는 동네주민들이 공통적으로 고민하는 내용들을 털어놨다. 구를 대신해 '가가호호' 방문, 주민들 입장을 사전에 취합, 전달하도록 당부하기도 했다. 청소년 우범지대로 변한 공원, 생활편의를 벗어난 지나친 주차단속, 이사한지 오래된 주민들에 수년간 반복되는 세금청구, 가로등 설치 남발로 인한 빛공해 등이다.

반장을 통한 주민의견은 각 부서로 통보하고 부서에서는 결과를 공문으로 통지하고 구청장에도 보고한다. 백서로 엮어 기록물로 남길 계획도 있다.

성 구청장은 "주민과의 대화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내용도 있었다"며 "동이나 부서에서 얘기할 경우 우선 순위에서 밀릴 수 있지만 구청장이 직접 들으니 해결책 제시도 빠르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동대문구 전농1동 통장들은 5월 말부터 '주민불편 디자이너'로 위촉돼 활동 중이다. 이웃들이 생활 속에서 불편을 느낄 만한 점을 먼저 찾아내는 일이 우선. 교통 도로 건축 사회복지 환경 등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상시 살피고 그 내용을 동주민센터에 알린다. 자체 해결 가능한 사안은 즉시 처리하고 동 인력으로 해결이 불가능한 경우 해당 부서에 도움을 요청한다.

매월 두번째 수요일은 통장이 중심이 돼 '마을 청소의 날'을 운영한다. 지역을 9개 권역으로 나눠 매달 1개 권역씩 합동 청소를 한다. 주민들이 집 앞 주변 골목길을 스스로 청소할 수 있도록 이면도로를 분양, 청소를 하도록 돕는 일도 통장 몫. 디자이너들은 1290명에 달하는 지역 내 홀몸노인을 정기적으로 방문, 폭염 한파 등에 건강문제는 없는지 살피는 '홀몸노인 지킴이'이기도 하다.

매달 한차례 통장회의를 할 때면 구와 동 주요 전달사항과 함께 디자이너 활동내용을 논의한다. 활동 한달여만에 벌써 놀이시설물 보수, 버스정류장 금연구역 표시 등 간단한 요청부터 쪽방촌 도배·장판, 빗물받이 준설, 불합리한 반 행정구역 조정 등 구나 동에서 미처 살피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지적이 여럿 나왔다. 이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활동이지만 통장들은 더 책임이 무거워졌다고 입을 모은다. 한인순 18통장은 "운동 삼아서 하루 1~2시간 주민들 찾아다니며 인사 겸 얘기를 듣는다"며 "디자이너 위촉 후 특히 청소하는 주민들이 많아져 동네가 깨끗해졌다"고 평했다.

전농1동은 대장을 만들어 요청내용과 처리결과를 기록하는 한편 이후 통장 추천·선정을 할 때 위원회에서 참고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허성일 동장은 "디자이너 위촉 전후 통장들 하는 일은 비슷하지만 좀 더 관심을 갖고 지켜봐달라는 의미"라며 "통 주민을 대표한 통장이 중심이 돼 쾌적한 마을을 만들고 주민들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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