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재구성│말레이시아인 신용카드 위조사건] “한국은 국제 신용카드 위조단 범죄 천국”

지역내일 2013-08-02
위조카드 수백장 들고 입국 … 명품매장 돌며 쇼핑후 출국
인터넷 통해 전세계인 개인정보 사들여 마그네틱 카드 복사

지난 7월 15일 명동지하상가 홍삼매장. 오후 2시쯤 관광객으로 보이는 30대 동남아시아인 2명이 매장을 찾았다.

이들은 서툰 영어로 점주에게 가족들에게 선물할 거라며 6년근 최고급 홍삼을 주문했다. 200g 홍삼농축액 20통 가격은 600만원. 최근 손님이 뜸했던 점주는 손이 큰 동남아 관광객을 만났다며 정상가보다 5%를 할인해 줬다. 이들은 계산대에서 자연스럽게 신용카드를 내 밀었다. 점주는 아무런 의심없이 이들이 제시한 카드로 결제를 했고 카드는 승인이 떨어졌다.

이들은 홍삼매장을 나와 인근 한 골프용품매장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자신들이 이용할 거라며 300만원 상당의 고급 골프채 2세트를 구매했다. 이곳 매장에서도 같은 카드를 내밀었지만 한도초과 메시지가 떴다. 이들은 태연스럽게 다른 카드로 결제를 하고 함박웃음을 지며 골프백을 메고 매장을 나섰다.

같은 시간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에는 위조카드로 의심되는 카드사용이 명동에서 떴다는 신호가 울렸다. 수개월째 명동일대에서 위조카드가 사용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경찰은 카드사와 공동으로 위조카드 사용범을 잡기 위해 안테나를 세우고 있었다. 위조카드가 사용됐다는 골프매장에 급파된 사복경찰은 골프백을 메고 나오는 동남아시아인을 발견하고 이들을 미행했다. 택시를 타고 이들이 도착한 곳은 강남의 한 호텔. 경찰을 이곳을 덮쳐 위조카드 구매총책인 말레이시아인 K(36)씨를 검거했다. 이들 숙소에서는 홍삼 명품가방 골프채 고가시계 노트북 카메라 스마트폰 등 각종 고가의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경찰은 지난달 24일 서울 명동 등 홍삼 전문점과 아울렛에서 위조된 카드로 640여차례 총 4억4000여만원을 결제한 말레이시아인 K(36)씨 등 2명을 구속하고 Z씨 등 2명을 쫓고 있다고 밝혔다.

구매 총책인 K 씨 등 2명은 말레이시아 현지에서 위조된 신용카드 110장을 들여와 비교적 신분확인이 소홀한 소규모 가맹점들을 대상으로 범행 장소를 물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범행에 익숙한 고참 구매책이 신참과 짝을 지어 범행을 실습하는 등 인수인계하고 신참의 단독 범행이 가능해지면 선임자가 호텔에 보관하던 물품을 가지고 출국하거나 국제특송으로 물건을 보내는 방법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마그네틱카드 사용 보안허술 = 해외에서 신용카드를 위조해 국내 백화점이나 면세점에서 명품을 사들여 되파는 위조 신용카드 사기사건이 계속되고 있다. 중국 동남아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국적의 국제 사기단은 쇼핑할 때 보안인 취약한 대한민국을 최적의 범행장소로 보고 있다. 마그네틱 스트라이프카드(MS·마그네틱카드) 사용률이 높은 국내 신용카드 시장의 허점을 파고든 것이다. 금융당국이 2004년부터 보안이 취약한 마그네틱카드 대신 중앙처리장치(CPU)와 메모리가 들어간 IC카드로 전환을 서두르고 있지만 기계교체 비용 등의 문제로 IC카드로 교체시점이 늦어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오는 2014년 말까기 기존 마그네틱(MS)카드 단말기를 IC단말기(MS 겸용)로 전면 교체한 뒤 2015년부터는 MS카드 사용을 전면 중단키로 했다. 하지만 문제는 IC카드로 바꾼다고 해도 정작 신용카드를 긁는 가맹점의 IC카드 단말기 교체율이 낮아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신용카드 업계 관계자는 "대당 15만원이 투입되는 전국의 단말기를 바꾸려면 수천억원이 들 것"이라고 우려했다.또한 해외 신용카드는 2015년 이후에도 여전히 마그네틱 방식으로 결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해외에서 위조된 신용카드가 버젓이 유통될 위험을 안고 있는 셈이다. 결국 4000억원 가량이 소요되는 IC카드 단말기 교체 비용을 누가 얼마만큼, 그리고 합리적으로 부담할지 여부가 결정돼야 이 같은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외국인이 건네는 마그네틱 카드를 매장에서 거부하기 힘들것으로 보인다.

위조카드 만들기 간단 = 신용카드 위조 범죄단은 크게 총책, 모집책, 사용책으로 구성된다. 총책은 신용카드 위조사기단의 핵심이다. 외국에서 위조카드를 만들어 국내로 전달하는 등 사기행각 전반을 지휘한다. 위조카드를 사용할 나라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 총책은 우선 위조 신용카드를 만들 때 사용할 개인정보를 사들인다. 인터넷에서 암거래되는 전세계인의 신용정보는 개당 6000원에서 10만원에 거래된다. 개인의 신용정보를 입수하면 스키머(skimmer)라는 기계를 통해 마그네틱 카드에 정보를 입력하고 카드번호와 사용자 이름을 새기는 엠보싱기를 이용해 위조카드 수백장을 만든다. 위조카드에 들어가는 이름은 매장에서 의심을 피하기 위해 사용책들의 실제 이름을 쓴다.

사용책들은 위조된 신용카드를 들고 한국에 들어와 쇼핑을 시작한다. 최근에는 백화점이나 고급호텔의 경우 위조신용카드에 대한 대비책들을 마련해 놓고 있어 변두리 외지나 한적한 매장을 찾아 쇼핑을 한다.

쇼핑이 끝나면 다음날 국제택배를 이용해 중국이나 동남아시아로 보낸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제품이기 때문에 암거래시장에서 70~90%의 가격으로 팔 수 있다. 구매책들은 수익금의 20%를 받는다.

때로는 구매책들이 국내에 들어오지 않고 인천공항을 경유하는 비행기편을 마련해 면세점에서 쇼핑만 하고 사라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개인신용정보 빼내 쌍둥이 카드 만들어 = 신용카드 위조 범죄는 신용카드 뒷면에 붙은 마그네틱선를 통해 이뤄진다. 물리적인 방식으로 복제하기 때문에 특별한 보안 방법이 없다.

마그네틱카드는 CPU와 메모리가 들어간 IC칩과는 달리 자성을 이용해 정보를 기록하기 때문에 복제가 쉽다. 스키머에 카드를 긁으면 5초에서 20초 안에 복제가 끝난다. 또 스키머는 생긴모양이 신용카드 결제 단말기와 비슷해 자신의 카드가 복제되는지 눈치채지 못한다.

국제 신용카드 위조단은 많은 신용정보를 빼내려고 신용정보가 저장된 서버를 해킹하도 한다. 자신의 신용정보를 도난당한 사람은 미국 유럽 브라질 등 전 세계에 퍼져 있다.

정용희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2대 수사1팀장은 "마그네틱 카드는 스키머 같은 리더기로 읽으면 정보가 그대로 읽혀 다른 카드에 입힐 수 있다"며 "신용카드 위조 범죄 100건 중 카드 실소유주가 피해 사실을 알고 신고하는 경우는 한 건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 팀장은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결제가 IC카드로 이뤄지기 때문에 마그네틱카드 사용이 가능한 한국으로 범죄가 몰리고 있는 것"이라며 "마그네틱카드를 사용할 때 비밀번호를 요구하거나 사용 범위를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석용 기자 sy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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