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력은 확실히 독특하다. 그런 사람이 하는 이야기나 펴낸 책은 귀담아 들을 만한 내용이 많거나 재미있는 경우가 많다. 그가 '다윈의 식탁'이라는 책을 냈을 때만 해도 나는 책을 읽어보지 않고 지레짐작으로 학부나 대학원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생물학자려니 여겼다. 그가 새로 펴낸 '인간에 대하여 과학이 말해준 것들'이라는 책을 읽으며 그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과학 글쓰기 분야에서 이미 스타 반열에 올라 있는 최재천 교수나 정재승 교수 말고도 장대익이라는 새로운 과학 글쓰기 스타가 탄생했음을 이 책에서 볼 수 있었다.
그는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다.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에서 공감과 소통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진화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이다. 나는 과학적 인문학자 또는 인문학적 과학자란 호칭을 그에게 보태고 싶다. 과학고를 조기 졸업한 뒤 한국과학기술원 기계공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학부시절 공부에 흥미를 잃고 방황했다. 그 방황은 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 들어가면서 끝났다. 이 때 진화생물학에 매료됐다. 기계공학도가 생물전공자가 된 것이다. 그의 관심은 인간본성과 진화심리학, 인문학과 과학의 융합 등에 있다.
이 책에는 그의 이런 관심사가 오롯이 배어 있다. 세계 곳곳에서 이루어진 인간에 대한 과학 연구와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에서 일어났던 여러 일들을 성찰하고 이를 잘 버무려 내놓은 과학 에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카이스트 학생들의 잇단 자살과 한국 이공계의 위기에서부터 '강남스타일'의 세계적 성공과 진화하는 포르노, 팟캐스트방송 유행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나꼼수', 그리고 로봇 태권브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독자들과 소통하려 한다.
인간 성장의 시작, 호기심
그의 최대 관심은 인간이다. 인간에 대해 가장 잘 말해줄 수 있는 도구로 과학을 꼽는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온 힘이 과학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과학이 밝혀낸 사실을 토대로 과학이 자신에게 인간에 대하여 가르쳐준 다섯 가지 를 함께 나누려고 한다. 우리는 탐구하는 존재이고 따라 하는 존재이며, 공감하는 존재이고, 신앙하는 존재이며 융합하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그는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정치, 스포츠, 영화, 과학, 종교, 교육, 가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벌어진 사건이나 활동한 인물들을 때론 질타를, 때론 존경을 보낸다.
먼저 탐구하는 인간 편에서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 중에서 무언가를 탐구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인간뿐이라고 단언한다. 인간은 남들로부터 배울 뿐만 아니라 자기 스스로 탐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존재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과학은 인간의 탐구 행위 중에서도 신빙성이 가장 높은 경험적 활동이라고 강조한다.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탐구해서 인류의 문명을 한 단계 도약시켰던 인물들은 하나 같이 호기심과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이었다고 말한다. 영재란 칭호는 주어진 문제를 빨리 푸는 어린이가 아니라 "일생 동안 호기심과 열정을 발전시켜 결국 꽃을 피우는 사람들, 다윈이나 뉴턴과 같은 이들에게 붙여야 한다."며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영재관을 꼬집는다.
혁신을 전파하는 인간의 능력
따라 하는 인간 편에서는 요즘은 뜸하지만 그래도 가끔 사람들과 언론의 입길에 오르내리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관한 흥미로운 분석으로 시작한다. "우리나라와 아시아를 넘어 미국과 유럽, 남미까지 '말춤'의 도가니에 빠트린 '강남스타일'에는 어떤 요소가 숨어있기에 글로벌 스타일로 진화해 간 것일까"하는 것이 그의 화두였다. 그의 진단은 이렇다. "막춤은 추기는 쉽지만 따라 하기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말춤은 누구나가 아는 단순한 규칙을 가진 춤이다. 그래서 따라 하기 쉬운 이 춤은 전 세계로 빠르게 복제되며 진화할 수 있었다." 그는 침팬지와 같은 동물들은 결코 '강남스타일'을 따라 하고 널리 퍼트릴 수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동물의 세계에도 혁신은 생겨날 수 있지만 그것을 보전하고 전파하기에는 모방능력과 가르치는 능력이 모자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공감과 배려로 독보적 존재로 성장
세 번째는 우리가 공감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thicus)는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의 책 '공감의 시대'에서 따왔다. 리프킨은 이 책에서 인간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것은 자연계의 구성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공감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장 교수는 2002년 월드컵 경기 때 우리들이 응원전을 펼치면서 사실상 선수가 된 것처럼 행동한 것이나 최근 유행하고 있는 서바이벌 가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베테랑 가수들의 열창에 눈물을 흘리는 따위의 공감이 이제는 호모 사피엔스에만 머무르지 않고 개와 같은 반려동물에게까지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우리가 지구의 생명 역사에서 가장 독특한 종으로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분노와 응징 능력 때문이 아니라 공감과 배려 덕분이었다고 말한다. 분노를 넘어 공감에까지 이르지 못한다면 누구도 역사의 승자가 될 수 없을 것이라는 말에 정치에 뜻을 둔 사람들이라면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네 번째 신앙하는 인간에서는 내세를 가르치는 종교가 인류에게 끼치고 있는 해악, 즉 9·11테러에 깔린 무슬림 신앙과 기독교, 그리고 교과서에서 진화론을 없애고 창조론을 가르치려는 한국의 기독교인들을 '우리는 과학 선진국에서 살고 있는가?'라며 적나라하게 비판한다.
하지만 그는 인류의 역사에서 초자연적인 존재를 믿는 심리 메커니즘이 생겨나 고착되었고 그것이 오늘날에도 변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종교가 본능일 수 있다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융합하는 인간의 장에서는 다양한 표현으로 융합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저자는 "진짜 융합은 역설적으로 다양성과 이질성으로부터 시작한다. 급변하는 환경에서 생각의 다양성은 지식 생태계를 강건하게 만들어줄 것이다."라고 믿는 그의 융합 예찬론은 아무리 곱씹어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이 책을 곱씹으며 읽어도 질리지 않는 것처럼.
바다출판사
장대익 지음
1만3800원
안종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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