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통상임금과 창조경제

지역내일 2013-06-04
곽태원 (사)한국노동경제연구원 원장

"엔저와 통상임금 문제만 풀리면 한국에 80억 달러를 투자할 수 있다."

윤창중 청와대대변인이 대사관 인턴을 성추행해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놓았던 5월 8일, 함께 방미 중이던 박근혜 대통령에게 GM회장이 던진 말이다. 대통령은 "한국경제 전체가 안고 있는 문제"라며 "합리적 해법을 찾아보겠다"고 화답했다.

근로기준법상 통상임금은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지급하기로 정한 금액'이다. 통상임금이 높으면 법정수당의 액수도 커진다. 통상임금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1988년에 발표한 노동부의 행정지침과 대법원 판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당시 노동부는 기본급만 통상임금에 포함시킨 반면 대법원은 법문 그대로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금액은 적극적으로 통상임금으로 인정해 왔다.

육아수당, 식비, 명절휴가비, 정기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으로 본다는 것이 그동안 누적된 대법원 판결이었다. 그러니 노동부의 지침에 따르고 싶은 기업측과 판례에 따를 것을 요구하는 노동자들 간에는 끊임없는 갈등이 있었다.

한국GM은 미지급 통상임금 8140억원 소송 1심과 2심에서 패소한 상태에서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GM회장의 발언은 자기 기업의 이익을 위해 타국의 대통령을 대상으로 펼친 일종의 로비활동이었다.

GM 회장의 발언은 업계 '로비'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를 한국경제 전체의 문제라고 맞장구치고 해법을 찾겠다고 약속을 한 것이다.

윤창중 소동 때문에 제대로 평가되지 않은 이 이야기는 현정부의 노동정책을 가늠해볼 수 있는 사실상 첫 번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간 박근혜정부에는 '고용'만 있고 '노동'은 없다는 것이 한결같은 지적이었다. 고용노동부장관을 비롯해 청와대에 고용전문가들이 주류다. 대통령 취임사에 '창조'라는 단어는 무려 10번이 나온 반면 노동, 비정규직, 민주주의 등의 단어는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귀국한 직후 통상임금 산정기준을 노사정합의로 정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아가고 있다. 5월 30일 노사정위원회가 '고용률 70%달성을 위한 노사정 일자리협약'을 체결하는 자리에서도 노동부장관은 통상임금 제도개선방안을 노사정의 차후과제라고 말했다.

대통령을 비롯한 당정청의 이런 즉각적인 행동은 노동부의 행정지침이 대법원의 판결보다 우선할 수 있다는 발상을 근저에 깔고 있다. 노사정합의를 동원하려는 꼼수는 덤이다. 경총은 대법원 판결에 따라 통상임금을 모두 지급한다면 추가 지급금액이 38조원에 달하고, 이는 국내 전체 임금근로자 연간 임금의 10%에 달하는 막대한 비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법원 판례대로 따라야
그러나 이는 그간 기업들이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할 38조원의 거액을 부당하게 주지 않았음을 반증할 뿐이다. 지난 3년간의 미지급금 액수가 그 정도라면, 그 동안 근로자들이 부당하게 받지 못한 돈은 천문학적인 규모일 것이다.

노사정합의로 미지급금을 아예 지급하지 않거나 판결을 뒤집을 방법은 없다. 이제라도 정부는 대법원 판결을 반영해 행정지침부터 수정해야 한다. 아울러 행정지침에 의한 유사한 권리침해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감독을 강화해야한다. 창조경제는 그 다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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