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잘 짜여진 기획서처럼 관리된다?
가족에 어울리는 수식어는 '사랑, 배려, 따뜻함, 푸근함' 등이 일반적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우리 시대의 맞벌이 가정이 여성들의 "기획"을 거쳐서 유지되고 있다고 말한다.
최근 맞벌이 여성의 일상은 사무전문직 남성의 일 중심적인 '바쁨'과는 다른 시간경험으로 구성되는데, 그녀들이 시간을 사용하는 방식을 저자는 "압축적 시간경험"이라고 표현한다.
원더우먼이 되어야 하는 여성들
책은 프롤로그, Ⅰ장 쫓기는 여자, Ⅱ장 매트릭스 속의 여자, Ⅲ장 기획하는 여자, 그리고 에필로그로 구성된다. 책을 펼치면, 현재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으로 근무하는 저자의 무진장 바빴던 과거 이야기가 프롤로그에 펼쳐진다.
어린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고, 공부를 하며, 틈틈이 돈도 벌어야 했던 그녀의 '원더우먼' 시절 이야기는 읽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녀가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 지 구미가 당기게 한다.
여성들이 과로사할지도 모른다
누구도 대놓고 그렇게 살라고 하지 않지만, 현대는 화장실에서조차 시간을 분초 단위로 재면서 바쁘게 살아가는 사회다.
저자는 주 참여자 20명, 보조 참여자 11명과의 조금은 수다스런 면담을 통해 이 시대 맞벌이 여성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학문적인 분석을 곁들인다. 그들이 가족의 평온한 일상을 위해서 어떻게 시간을 쪼개고, 자신을 관리하며, 노력하는지 말이다.
저자는 대표적인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으로 가족친화기업, 산전후휴가와 육아휴직, 보육지원 등을 꼽는다. 이 중 육아휴직을 제외하고는 남성들 삶에 변화를 가져올만한 제도가 없어서 자칫 이 정책이 여성들의 과로사(!)를 부추기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하고 있다.
또, 맞벌이 가구 남편과 비맞벌이 가구 남편의 가사노동 시간이 단 5분밖에 차이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왜 그렇게 맞벌이 부부 간의 갈등이 쉽게 해결되지 않는지 말해주는 듯하다.
한 박자 늦어도 좋다
이 책은 맞벌이 화이트칼라 여성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치고 있어서, 어쩌면 모두가 공감하는 가족의 이야기는 아닐 수도 있겠다.
그러나 컨베이어벨트 같은 요즘 생활에서 내려서고 싶은 욕망을 누구나 한 번쯤은 품었을 것이기에, 책 속 '기획녀'들과의 진솔한 대화가 나를 돌아보며 나아가 가족을 보듬을 수 있는 기회로 다가올 것이라 생각한다. 남보다 한 발짝이라도 앞서가는 게 아니라, 한 박자 느긋하게 동질감을 느끼며 말이다.
"집단적 우울증에 빠져 있는 듯한 대한민국 여성들을 행복하게 하고 싶다."는 저자의 에필로그에 깊은 공감을 보낸다.
이진경 국회도서관 사서
서해문집 / 조주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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