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중독이란 질환은 매우 흔한 질환이다. 그렇지만 단주를 위해 정신과에 입원하거나 외래를 다니며 진료를 받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려 하지 않고 부정하므로 자발적으로 진료 받으려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는 가족을 포함하여 친구나 직장 동료들 나아가서는 알코올의 신체적 후유증을 진료하는 의사들조차도 알코올중독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과음을 자주 하나, “건강에 큰 문제도 없고 일도 잘 하는데...” 바꿔 말하면 제 역할 다하고 제대로 기능하는데 무슨 알코올중독이냐 라는 것이다.
몸에 탈 없고 직업이 탄탄하여 돈 잘 버는 한, 삶의 다른 영역에 아무리 문제를 일으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가족들을 끝없이 괴롭혀도, 실수로 이런 저런 사고를 수없이 저질러도, 음주 운전이나 취중 시비로 법적 제제를 당해도, 알코올중독 때문이라고 인식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번번이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도, 주위 사람이 참아주고 나아가서는 대신 나서서 챙겨주고 해결해주기도 한다. 취중에 벌어진 일이라면 꽤 심각한 범법 행동을 해도 처벌을 감경해주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 아닌가!
우리의 사회문화의 이러한 경향도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기 더 어렵게 한다. 독립성과 자기 책임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서구에 비해, 우리는 상호간의 조화와 화합을 무엇보다도 큰 가치로 여긴다. 그래서 혈연, 학연, 지연 따위를 찾아 무엇으로든 질서와 계급을 만들어 쓸데없는 갈등이나 대립이 생기지 않게 하는데 애를 쓴다. 여기에 정이라는 요소가 작용하고, 이를 ‘정이 많다’ 거나, ‘인정이 넘친다’ 고 하여 퍽 긍정적으로 여긴다. 이러한 터에 과음으로 인한 실수나 사고를 저질러도 너그럽게 받아들여주고 이를 미덕으로 생각한다. 상호의존적인 이러한 온정주의적 태도는 상태가 최악에 이르기 전까지 결코 드러나지 않게 할 뿐이다.
알코올중독의 후유증이 상당해도, 주위 사람들이 웬만한 역할을 대신 해주기에 알코올중독으로 인한 기능 장애를 알아차리기 어렵다. 특히 직장이 있고 돈을 버는 한, 본인은 물론 그 가족들이나 주위 사람들이 그가 알코올 중독일 수 있다는 가능성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는다.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오는 한, 아무리 주정이 심하고 가족들에게 상처를 많이 주어도, 그가 알코올중독이고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상상도 못한다. 단지 가부장적 사회만 탓할 뿐인 터에 그를 치료의 장으로 인도하기란 매우 어려운 노릇이다.
돈만 벌면 무어든 해결된다는 자본주의적 세태에,직장이 있고 돈을 버는 한 알코올중독은 생각조차 못하는 수가 흔하다. 그러는 동안 본인은 점점 더 파괴되어 황폐화되고 주위 사람들 또한 상처받고 병들어 간다. 다른 문제가 심한 데 일만 나갈 수 있다고 해서 제대로 기능하는 것은 아니다. 소위 기능적 알코올중독자라 할 수 있는 안정적 직업인들의 알코올 문제의 치료가 더 소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원알코올상담센터 신정호 소장(연세대 원주의과대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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