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싸이에 후하고, 조용필에 박한 정치권

지역내일 2013-04-24 (수정 2013-04-24 오후 1:24:41)

2005년 8월 23일 저녁 평양 유경 정주영체육관을 가득 메운 7천여 관객들 사이에는 다소 어색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역력했다. 일부에선 '공연을 망치는 것 아닐까'하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기우였다. 진심을 담은 노래는 마음을 움직였다. '태양의 눈' '단발머리' '못찾겠다 꾀꼬리' '친구여' '돌아와요 부산항에' 등 혼신을 담은 노래가 이어지면서 객석도 함께 감동했다. 공연이 끝날 때는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조용필 공연이었다. 조용필이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였다. "음악에는 남과 북이 없다는 생각으로 노래했다"며 그도 감격스러워했다.

시간이 흘러 23일 가왕(歌王) 조용필이 돌아왔다. 정규 앨범은 10년 만이다. 타이틀곡 '헬로'와 사전에 음원이 공개된 수록곡 '바운스' 등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모든 음원차트를 석권하고 있다. 음반판매량도 놀라운 수준이다. 국민가수의 저력이다. 이날 새벽부터 새 음반을 사기 위해 영풍문고 종로점 앞에 길게 늘어선 수백 명의 팬들 속에는 젊은이들도 상당했다. 세대와 계층을 뛰어넘는 사랑이다. 45년차 아이돌 가수라 불릴 만하다.

며칠 전 싸이도 '젠틀맨'을 들고 다시 복귀했다. 유튜브 2억뷰 등 등장하자마자 신기록 행진이다. 월드스타라는 이름에 어울릴 만큼 연타석 홈런이다. 대선배인 조용필도 싸이의 쾌거를 진심으로 축하했다. "싸이가 이룩하고 있는 업적이 정말 자랑스럽다. 싸이는 우리의 자랑이다."라고. 그런데 팬들은 국민가수의 귀환을 싸이 못지않게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여전히 그의 노래가 가진 진정성과 힘을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을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선이 다소 달라 보인다. 지난해부터 싸이는 정치권에서도 최대 관심 인사였다. 총선과 대선 때는 각종 패러디가 유행했고, 대통령 취임식에도 초청가수로 노래했다. 강남스타일에 이어 젠틀맨이 또다시 대박을 터뜨리자 박근혜 대통령까지 회의석상에서 이를 언급했고, 제1야당의 대변인은 공식논평으로 축하했다.

KBS가 싸이 뮤직비디오의 일부 내용을 문제 삼아 방송부적격 판정을 내리자 '고루하다'는 논평을 내기까지 했다. 그랬던 정치권이 조용필의 복귀에 대해서는 그 어떤 반응도 내놓지 않고 있다. 더구나 이남기 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2005년 SBS 기획본부장으로 조용필의 평양공연을 성사시킨 주역 중 한 명이었다.

뿐만이 아니다. 조용필씨는 1986년 모 레코드사와 계약상 실수(?)로 31곡의 저작권을 빼앗겼다. 그 결과 자신의 히트곡을 부를 때 마다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네티즌들은 자발적으로 '빼앗긴 저작권을 되찾자'는 청원운동을 전개 중이다. 싸이가 전 세계를 춤추게 만들었다면, 조용필은 남녀노소, 남과 북 모두가 눈물 흘리고, 미소 짓게 만들었다. 싸이는 국제가수, 조용필은 국민가수다.

정치권의 무심함에 대해 못내 섭섭한 것이 비단 기자 개인만의 생각일까.

정치팀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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