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학교 선생님 _ 경기고등학교 하정호 교사

“학생들은 믿음 주는 교사를 필요로 합니다”

지역내일 2013-03-19

표현이 서툰 남학생들이 교무실로 찾아와 쭈뼛대며 선생님 주변을 맴돈다. 어떤 용무로 찾아왔느냐는 눈길을 보내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선생님, 파이팅”하고 부리나케 외치고는 이내 사라진다. 재미난 풍경이다. 경기고등학교 하정호 교사의 주변이 늘 학생들로 북적거리는 이유, 그 속엔 ‘믿음’이라는 단어가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다.  


믿음, 24년 교직생활의 참다운 깨달음
그를 만나기 전 우연히 경기고 학생들을 먼저 만났다. 하정호 선생님에 대해 물으니 무뚝뚝했던 남학생들이 “참 좋은 선생님”이란다. 좋다는 기준이 무엇이냐고 되물으니 “믿을 수 있는 선생님”이라고 되받아친다. 마지막으로 믿음의 의미에 대해 물으니 “우리를 믿어주고 이해해주는 인간적인 선생님”이라고 쐐기를 박는다.
학생들에게 얘기를 듣고 나니 궁금증이 더욱 증폭됐다. 그 길로 곧장 교무실을 찾아가니 ‘홍보기획부장 하정호’라는 명패 너머로 웃으며 먼저 인사를 건네는 하정호 교사를 만났다.
1988년부터 지금까지 교직에 몸담으며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낸 그는 아직도 찾아오는 제자들이 여럿 있고, 심지어 아들, 딸 등 아이들까지 대동하고 찾아올 정도다. 24년 교직생활 중 20여 년간 계속해서 담임교사를 맡아 학생들을 이끌어온 그의 남다른 교육철학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중학교 때까지는 놀이문화를 통한 학생들과의 소통이 중요하지만, 고등학교 교사는 입시와 진학이라는 교육현실과 맞물려 있어 특별한 믿음을 주지 못하면 그것이 결정적인 한계로 작용합니다. 학생들과의 소통이 단절될 수밖에 없죠. 담임교사가 학생들에게 다가갈 때, 담임으로서 믿고 따를 만한 총체적 표현이 바로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교육연수원 1급 정교사 자격연수에서 교사들을 대상으로 ‘믿음 주는 담임교사 되기’ 강연을 한 것도 그의 이런 교육철학과 무관하지 않다. 


사랑과 관심, 학생들을 변화시키다
사춘기 남학생들은 유독 표현에 서툴다. 알고 보면 정이 고팠던 것뿐인데 그런 ‘감정의 굶주림’을 알아주는 이가 없어 더 감정이 메말라 보이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남학생들에게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생겼다. 먼저 다가와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제가 특별히 해준 건 없습니다. 그저 가려운 곳을 살짝 긁어줬을 뿐이죠.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가끔 학생들이 농담을 건네면 저 역시 농담으로 받아치며 우스갯소리도 하곤 합니다. 특별하진 않지만 그런 표현마저 굶주렸던 학생들은 놀라울 정도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더군요. 바로 여기서부터 학생들과 진심어린 소통이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2학년 7반 담임을 맡았던 그는 학기가 시작된 지 두 달 만에 학생들에게 ‘논술의 신’이란 글씨가 적힌 축구 유니폼을 선물 받았다. 일반사회 및 논술 교사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선생님을 향한 학생들의 수줍은 애정표현이기도 했다. 올해는 학교발전에 더 매진하기 위해 담임교사를 맡지 않았지만, 지난해 마음의 문을 열었던 학생들은 여전히 그의 자리를 찾아와 재잘재잘 이야기를 꺼낸다. 한껏 밝아진 모습이다. 1년 만에 놀라운 변화를 보여준 학생들이 대견하다며 학기 종강파티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이 사진은 종강파티를 했던 고기 뷔페집 앞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다들 밝고 개구쟁이 같은 모습이죠. 올해는 고3 수험생활로 힘들겠지만 다들 열심히 한 만큼 성과를 거뒀으면 좋겠습니다. 얘들아, 졸업하기 전에 고기 뷔페 한 번 더 가야지?(웃음)”


논술, 학생들의 잠재력 깨우는 열쇠
경기고 방과 후 논술을 지도하며 새로운 교수학습법을 적용하자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반응 역시 뜨거웠다. ‘논술=입시’라는 인식을 극복하고, 논술 자체가 학생들의 사고력과 창의력을 일깨우는 재미난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적어도 고1, 고2 때는 자신의 논리적 사고와 풍부한 표현력을 기르는 측면에서 논술에 접근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의 교수법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더 다양하고 깊이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죠. 논술의 소재는 다양합니다. 우화나 그림, 혹은 광고를 보여주고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습니다. 광고에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광고가 전제하는 것은 무엇인지, 광고를 보는 이의 입장에서 그것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지 등 다양한 학문적 접근이 가능합니다. 논술교사가 수업 내용을 풍부하게 접근하는 것이야말로, 학생들의 잠재력을 깨우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
2011년 그가 경기고에 부임했을 때, 학생들은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명문대 출신 선생님이라고만 생각했다. 공부만 강요하며 매섭게 다그칠 거라 생각했던 학생도 있었단다. 하지만 그를 만났던 학생들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선생님’이라며 자신 있게 말했다.
믿음 주고, 사랑 주고, 관심 주는 선생님, 그리고 상상력을 자극시켜주는 유쾌한 선생님이란 말도 덧붙였다. 교무실을 급습했던 학생들에게 못 다한 얘기를 전해 들으며 새삼 경기고 학생들은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먼저 다가가 믿음의 열쇠를 꺼내는 선생님. 하정호 교사의 남다른 교육철학은 학생들의 밝은 표정 속에 오롯이 담겨 있었다.


피옥희 리포터 piokhee@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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