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희망을 쏜다 2부. 사람이 희망이다 ④경력단절여성] “정당하게 일하면서 정당한 대접 받았으면 좋겠어요”

지역내일 2013-01-21 (수정 2013-01-25 오후 2:26:02)

2013년. 세계와 한국경제에 거는 기대가 그리 높지 않다. 저성장, 장기침체, 고령화, 양극화 등이 뒤섞인 2013년에 또 한번 기적을 바라는 건 과욕이다. 그래도 마음만 열면 도처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 한국인이 되어 코리안드림을 꿈꾸는 다문화 자녀들, 실력만으로 도전할 수 있는 차별없는 한국사회를 꿈꾸는 고졸, 제2의 도전이 힘겹지만은 않은 경력단절여성과 시니어들. 신성장동력은 거창한 구호에 있지 않다. 그들의 희망이 곧 대한민국의 성장동력이자 기적이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30여년에 걸친 이야기를 어떻게 두 시간 안에 풀어놓을까. 지난 11일 경기도여성능력개발센터에서 만난 4명의 여성을 인터뷰하며 든 생각이다. 이날 만난 조인자 박세미 서은숙 유지수씨는 소위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경력단절 여성들이다. 직장생활을 하다가 육아 등의 어려움 때문에 그만 둔 뒤 다시 사회생활을 하려 시도하고 있다. 조인자 유지수 씨는 우여곡절 끝에 제2의 직업 찾기에 성공했지만 서은숙 박세미 씨는 아직 구직활동중이다.

나이도, 배경도, 개인적인 상황도 모두 다르다 보니 처음엔 이야기가 중구난방이었다. 그러나 경력단절 여성으로서 겪은 사회의 높은 문턱, 자신에 대한 실망과 좌절, 가정내에서의 어려움 등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였다. 자연스럽게 여성 4인방의 수다 분위기가 형성됐다. 대한민국에서 경력단절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속깊은 이야기도 나왔다.

조인자
"번듯한 직업 왜 안 가지고 싶겠나. 나를 내려놓고 시험한다는 생각으로 청소 일 시작"

박세미
"IMF 때 감원바람에 밀려 퇴직 … 다시 사회 문 두드리며 내가 작아지는 기분 들어"

서은숙
"아이들 때문에 온전히 시간을 못 내 … 방학 때면 아이 봐줄 사람 없어 그만 두는 일 반복"

유지수
"어린이집에서도 맞벌이 엄마는 소수 … 아이가 초등학교 가면 어찌할지 깜깜"

◆육아·명퇴로 경력단절 = 이들이 사회생활을 그만두게 된 계기는 육아 아니면 명예퇴직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8년간 직장에 나갔던 박세미(47) 씨는 97년 IMF 때 감원바람에 밀려 직장을 떠났다. 조인자(52) 씨 역시 KT에서 20년간 근무하다 명예퇴직하고 나왔다. 서은숙(44) 씨와 유지수(34) 씨는 육아의 어려움 때문에 일을 관뒀었다.

특히 서은숙 씨는 아이들이 고등학교 1학년, 초등학교 6학년으로 어느 정도 컸지만 여전히 도전적으로 일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토피를 앓고 있는 아이들 때문에 주위 도움 없이는 식사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애들이 어느 정도 큰 후에 취업을 해보려고 여기 저기 직업 자격증을 많이 땄어요. 하지만 아이들이 엄마 음식이 아니면 아토피가 올라오는 체질이라, 특히 방학 때는 하루 다섯끼 여섯끼 해줘야 하는데 주위에 친척도 없고 도와줄 사람이 없으니 대안이 없더라고요. 어떻게 직장을 얻어 일을 하다가도 특히 방학 때는 아이들 식사 문제 때문에 주저앉게 되고, 그런 게 반복된 것 같아요."

◆사회에 나가면 몇십만원짜리 인간 취급 = 경력단절 후 다시 사회의 문을 두드리면서 가장 뼈저리게 느낀 점은 사회에서 바라보는 모습과 자기가 생각하는 모습과의 현격한 차이였다. 학교도 대학까지 마쳤고, 그 전에 일하던 직장에서는 어느 정도 인정도 받았었지만 경력단절 후에는 그런 경력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가정 안에 머물기는 했지만 다양한 교육을 받았다는 박세미 씨는 "사람마다 다 차이가 있는 건데 어떤 경력단절 여성이든 뭉뚱그려서 100만원 정도의 사람으로 보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어요"라고 말했다. 최근까지 2개월 계약직으로 일을 하면서 사무치게 느낀 점이다. 

"제 나이가 40대인데 이 정도면 사회에서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그런데 경력단절 여성의 경우 나이는 중견간부급인데 실제로는 신입으로 가야 하니 극복하기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걸 극복하기 위해 꾸준히 자기계발하고 있는 제게 누가 그러더라고요. 배우다가 끝나겠다고. 그 말 들으니 참 마음이…."

4인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조인자 씨도 비슷한 느낌을 수차례 받았다.

"자신이 생각하는 나이하고 사회적인 나이는 정말 달라요. 사회에서 50대 여성이 직업을 가지려고 하면 그냥 청소하고 심부름하고 그런 거라고 생각하니… KT에 있을 때는 컴퓨터로 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그런 일을 찾으려고 했지만 좀 비슷하다 하는 게 결국은 콜센터같은 것밖에 없으니까. 그 다음은 청소일. 유치원 청소일을 소개해 주시는데 내가 과연 청소를 해야 하나 갈등이 많이 됐죠. 그래도 그것도 사회활동이고 내가 즐겁고 나에게 도움이 되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즐겁게 일하고 있어요."

◆마음 놓고 아이 맡길 수 있다면 = 유지수 씨는 인생선배들이 털어놓은 이야기에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유 씨는 전직이 해외출장이 잦은 업무여서 육아에 어려움을 느껴 직장을 관뒀다. 우연찮은 기회에 학원에서 영어 교사로 일하고 있지만 내심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회의하던 중이었다.

"그동안 일하는 고마움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선배님들 이야기를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드네요."

하지만 유 씨의 상황도 편안하지만은 않다. 아이가 어리다 보니 엄마의 손길이 더 필요하고 주위의 도움이 없으면 지금 일도 하지 못했을 거란다. 지금은 어린이집이라도 있지만 초등학교를 보낸 후에는 어떻게 해야할지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처음에 보냈던 가정식 어린이집을 보냈었는데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오후 4시 정도면 다 데리고 가십니다 하더라고요. 원래는 그 시간이 아니더라도 암묵적으로 문 닫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거죠. 그 이상 있으면 괜히 눈치 보이고 아이는 혼자 있어야 하고. 나중에 물어보니 원아생 엄마 중에 일하는 엄마는 하나도 없고 다 주부시고. 일하는 엄마들은 4시에 아이 데려오는 건 생각도 못하잖아요. 저녁 6시까지 봐주는 곳에 맡겼는데 아이도 많이 울고 이건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요. 결국은 친정식구들 도움 없으면 일을 할 수가 없어요. 몸으로 힘들게 일하라면 하겠는데 아이 데려오는 시간과 제가 직장에서 퇴근하는 시간 사이의 그 시간은 어떻게 메울 수가 없는 거죠."

◆언젠가는 상황 나아지기만 바라지만 = 아직 구직중인 서은숙 박세미 씨는 뭔가 사회의 문을 계속 두드리고 하다 보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그 단계를 이미 거친 듯한 조인자 씨는 "상황이 나아질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나이는 계속 들어가고 경력 단절 기간은 늘어나기만 한다. 사회에서 경력단절 여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는 있지만 사회의 차가운 시선이 언제쯤 교정될지는 기약하기 어렵다. 결국은 눈높이를 낮출 수밖에 없다는 게 조 씨의 결론이었다.

"저도 남들이 봤을 때 저런 일을 하는구나 하는 자부심 가질만한 일을 하고 싶었죠. 왜 안 그러겠어요. 직업상담사 같은 자격증 공부도 해봤고. 그런데 결국은 젊은 사람들 선호하더라고요. 좌절도 많이 왔지만 어느 순간 자신을 내려놓고 나니까 편해졌어요."

옆에서 박세미 씨가 "저는 그걸 못 내려놓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조 씨가 다시 한번 이야기한다.

"내려놓는다는 게 포기가 아니에요. 지금도 나를 계발하는 일은 소홀히 하면 안 된다고 생각도 하고요. 다만 그냥 나에게 온 사회적 역할이랄까, 잘 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공부하고 교육받은 것도 일정부분 경력에 넣어줬으면" = 마지막으로 경력단절 여성들을 위해 어떤 도움이 있었으면 좋겠는지를 물었다. 유지수 씨는 "어린이집에서 아이 픽업해오고, 엄마가 퇴근해서 올 때까지 좀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력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세미 씨는 "경력단절 여성이 가는 일자리가 계약직이 대부분인데 계약직으로 사람을 구하는 쪽에서는 경력자를 원한다"면서 "경력단절 기간 동안에 교육을 받은 것에 대해 일정 부분 경력으로 환산해 주는 그런 제도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인자 씨는 "노동에 대해 정당한 대접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50대를 넘어선 경력단절 여성들이 찾을 수 있는 일이 결국은 육체노동 쪽이 많은데 이에 대한 사회적 처우가 너무 박하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우는 애한테만 젖주는 사회잖아요. 그런데 청소하고 그러시는 분들이 단합된 세력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방치한단 말이죠. 정부에서 주는 일이라고 가보면 정말 쓸데 없는 일 하고 있는 느낌 줄 때도 많고. 그런 곳에 돈 쓰지 말고 정말 육체노동같은 것에 정당한 대우 해주고 하면 주부들이 밖으로 나와 일을 할 때에도 좀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해요."

박준규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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