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환 칼럼] 경제정치인의 시대다

지역내일 2013-02-12
경기대 교수 언론학

대한민국엔 '경제정치가'란 말이 없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국무총리를 지낸 남덕우나 노무현 정권 때 경제부총리를 지낸 이헌재 등을 두고 '경제관료'라고 부른다. 민생을 경제정치로 풀어가는 리더가 아니라 '기능인'의 역할이 강했기 때문이다.

선진국엔 어떠한가? 독일에는 '경제정치인'(Wirtschaftspolitiker)라는 용어가 있다. 국민경제에 대한 철학과 소신을 가지고 경제발전을 만들어간 정치인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기민당(CDU) 출신으로 아데나워 정부의 경제부 장관을 지냈고 2대 총리를 지낸 루드비히 에르하르트다.

다른 한 명은 사민당(SPD) 출신으로 브란트 정부시절 재무부 장관을 지냈고 이후 5대 총리를 지낸 헬무트 슈미트다. 이들은 나라 살림살이를 아는 정치인이다.

건국 초기 에르하르트는 미국의 자유방임경제도 아니고 소련의 계획경제도 아닌 '사회적(sozial) 시장경제'라는 새로운 경제모델을 만들었다.

그가 내건 슬로건은 전쟁의 잿더미에서 '모두가 잘 사는 나라' 만들기였다. 시장의 방임이 아닌 성장의 과실을 골고루 나누는 데 국가가 개입하는 경제철학이다.

그의 경제정책의 목표는 고도성장을 통한 '완전고용'과 '복지국가' 건설이었다. 그야말로 국가자원을 총동원하는 모델이다. 그 결과 독일 경제는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연평균 10%라는 고도성장을 이룩했다. 이를 두고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는 기적이라는 단어를 싫어했다. 모든 국민들이 땀 흘려 노력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사민당의 슈미트 총리는 '삶의 질 향상'을 정치목표로 내걸었다. 그가 총리였던 시절 독일은 중산층·서민층의 삶의 질이 가장 향상되고 빈부격차도 가장 줄어들었다. 따라서 아직도 많은 독일국민들은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슈미트를 꼽는다.

계파나 패거리보다 국익을 우선으로

그는 항상 책임정치를 강조한다. "정치인의 책임은 추상적이지 않다. 정치인은 개인, 조직, 정당, 나라의 이익 중 '무엇이 우선인가'를 묻게 되는 시점에서 판단을 요구받는다. 그 상황에서 나는 언제나 로마 잠언을 원칙으로 삼았다. '공공의 선이 최상의 법'이다."

정치인은 계파나 정파를 떠나 국민과 공익이 무엇인지를 항상 먼저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영국에서 경제정치인은 노동당 출신의 토니 블레어 수상 후임인 고든 브라운 수상을 들 수 있다. 그는 경제통으로 재무장관을 지냈고, 영국 경제 재건에 노력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경제정치인은 건국의 아버지들에 속하는 알렉산더 해밀턴이다. 건국 당시 그는 미국 경제의 프레임을 만들어 경제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미국지폐 2달러에 그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그럼 경제정치인의 특징은 무엇일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새로운 경제모델을 만들어간 정치인이다. 건국시기에 많이 나타난다.

또한 경제패러다임 전환 시기에도 필요한 인물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갈 사람이기 때문이다.

둘째, 계파나 패거리 이익보다는 국민과 국익을 우선하는 경제정치를 추구한다. 국가 전체의 살림살이와 미래를 고민하는 리더다. 자신의 계파나 정파를 먼저 챙기는 정치인이 아니다.

다른 정파나 지지자들까지 챙기니 지지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덧셈의 정치를 한다. 또 경제정치가들은 중장기적으로 세상을 보는 능력을 가졌다.

그렇다면 경제정치가와 정치리더는 어떤 차이점을 가졌는가? 경제정치가는 정치리더가 될 수 있으나, 모든 정치리더가 경제정치인이 될 수는 없다.

그들 간 차이는 전문성과 통찰력에서 나타난다. 경제정치인은 포플리즘의 유혹에 쉽게 빠지지 않는다. 경제 권력을 임의로 휘두르지 않고 규율과 룰을 정할 뿐이다. 무엇보다도 국민의 이익을 최우선시 하는 정치가다.

경제민주화·일자리 함께 해결할 인물

이를 위해선 당파나 선악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있다. 경제정치가는 편이 없다. 국민경제를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빈부, 지역,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 경제이해의 최대 공약수를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인사에 대한 하마평이 난무하다. 그런데 경제정치인에 대한 논의는 없다. 문제다. 대한민국 호는 양극화와 저성장이라는 덫에 걸려 있기 때문에 경제정치인이 꼭 필요하다.

박정희식의 양적 팽창 경제패러다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경제민주화, 사회복지, 성장과 일자리를 함께 해결할 새로운 경제정치인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근혜 당선인에게 경제정치인을 찾아 기회를 줄 것을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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