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의 금융교실] 퓨전(Fusion) 금융상품

지역내일 2012-11-16

박철/국민은행 인재개발원 팀장

요즘 계주가 곗돈을 가로채거나 잠적해 버리는 '계(契) 사기 사건'이 심심찮게 벌어지곤 한다. 계는 은행 등 제도권 금융기관이 아직 뿌리내리기 이전인 1960~70년대에 서민들간에 성행했던 일종의 사적 금융이다. 여유자금이 있는 사람들은 돈을 굴리고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은 돈을 융통할 수 있어 서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금융상품이자 재테크 수단이었다. 하지만 이후 1970년대를 지나며 은행으로 상징되는 제도권 금융시대가 막을 올리면서 한동안 사람들의 관심에서 밀려나 있었다.

그런데 펀드·선물 같은 첨단 금융상품이 쏟아지는 요즘 계가 다시 화려한 부활의 날개 짓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예전에는 아줌마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계가 요즘은 결혼과 내 집 마련 등 목돈이 많이 필요한 20~30대 직장인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 계에 가입해서 나중에 곗돈을 타는 사람은 금융기관보다 훨씬 많은 이자를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계는 급전이 필요한 사람이 먼저 곗돈을 타는 대신 이자를 많이 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곗돈을 나중에 받는 대신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구조이다. 게다가 곗돈 이자에는 한 푼의 세금도 붙지 않는다. 요즘 계가 다시 각광을 받고 있는 이유다.

그런데 제도권 금융상품이 아닌 계는 계주가 갑자기 사라지거나 다른 계원이 제대로 곗돈을 내지 않으면 언제든 깨질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대신 원금을 고스란히 날릴 수 있는 위험도 안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계만 그런 것이 아니다. 금융상품은 본래 수익성과 안정성을 겸비하기 어렵다. 금리도 높으면서 안정성까지 받쳐주는 상품을 찾는 것은 마치 동그란 네모를 얘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수익성과 안정성, 양자택일 구조

이렇게 금융상품들은 저마다 장단점이 있다. 각자무치(角者無齒)라는 말처럼 모든 조건을 두루 갖춘 금융상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금융상품을 고를 때 이게 좋으면 저건 포기할 수밖에 없는 양자택일의 구조였다. 예컨대, 높은 변동성 때문에 펀드나 주식투자를 꺼리는 사람들은 금리가 성에 차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예·적금상품에 가입할 수밖에 없었다.

펀드와 예금, 주식과 적금을 합한 새로운 금융상품

그러나 최근에는 부족한 부분을 서로 메워주고 장점은 극대화하는 새로운 금융상품이 쏟아지고 있다. 바로 퓨전(Fusion) 금융상품이다. 퓨전은 쉽게 말해 "합하여 섞는다"는 의미다. 서로 다른 성질의 무엇들을 섞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행위를 퓨전이라고 한다. 퓨전금융상품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KB국민은행이 판매하고 있는 은 펀드와 예금상품의 장점을 섞어 놓은 퓨전금융이다. 목돈예치 후 매월 원리금을 수령하여 펀드에 재투자하거나 요구불예금으로 이체해 생활자금으로도 쓸 수 있도록 안전자산 + α의 수익을 추구한다. 가입자들의 투자성향에 따라 펀드 투자비율을 조절할 수 있다.이자만 펀드로를 선택하면 원금 100%를 만기에 찾고 매일 이자만 펀드로 투자한다. 또 펀드로 10%을 고르면 90%는 만기에 원금과 이자를 찾고 나머지 10%는 균등 분할해 매월 펀드에 투자된다. 그 밖에 펀드투자 비율은 30%, 50% 등으로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

또 기업은행의 은 이름 그대로 주식을 적금처럼 매달 자동으로 적립해준다. 고객이 직접 선택한 개별 주식이나 상장지수펀드(ETF)를 매달 지정한 날짜에 일정 금액만큼 매수해 차곡차곡 쌓아준다. 적립식 펀드와 같이 매달 나눠서 적립되니까 위험부담이 훨씬 줄어든다. 목표수익률이나 목표금액에 도달하면 자동적으로 매수가 정지되도록 설정할 수 있어 안정적인 수익률관리가 가능하다.

퓨전사극, 퓨전요리, 퓨전음악, 퓨전미술 등등 바야흐로 퓨전시대다. 단일한 무언가로는 점점 다양화되는 소비자의 욕구를 따라잡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금융상품의 대세도 퓨전이다. 앞으로 금융상품에 가입할 때는 알아서 금융상품의 장점만을 챙겨주는 퓨전금융상품에도 관심을 가져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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