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종택/고려대 명예교수
대선을 코앞에 두고 여성대통령 논란이 시끄럽다. 여당에서는 그 타당성을 역설했고 야당에서는 그 자격을 부정했다. 여성대통령 대망론이 나오게 된 것은 그 시기의 적절성을 떠나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진 다른 나라의 경우를 감안한다면 지금의 한국의 형편은 다른 어떤 여권신장의 속도에도 뒤지지 않을 것 같다. 비교적 일찌기 참정권을 부여했다는 뉴질랜드나 영국 미국 말고는 대다수 국가들 겨우 2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여성에게 신거권 피선거권을 부여했다.
자유·평등사상의 요람이란 프랑스는 1940년대 후반, 모범적 민주국가인 스위스는 1970년대가 돼서야 여성 참정권을 인정했다. 아직도 여성에게는 참정권을 부여하지 않고 있는 사우디 같은 경우를 생각하면 1948년 제정된 헌법에서 여성참정권을 부여한 한국은 여성참정권에 관한 한 선진국인 셈이다.
이는 과거 주자학의 권위에 거려져 있던 여성의 지위가 왕실에서는 대왕대비의 수렴청정으로, 농가에서는 쌀뒤주 열쇠의 주인공으로 세력이 면면히 이어온 전통이라 할 수 있다.
봉건 질서와 유교적 압력으로 오랜 세월을 시달려 온 우리네 여성들의 인내와 굴종은 마침내 남성중심의 가치관에 스스로를 관습적으로 종속시켜온 일면도 없지 않았지만, 이제는 남성패권, 가부장제라는 단어가 과거의 일로 밀려나고 있으며 한국의 여성이 강인한 것은 이러한 역사적 과정 속에서 축적된 에너지의 산물이기도 할 것이다.
여성이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 이제는 되어야 한다는 생각의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으나 그것은 지금 우리 앞에 현실로 다가와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박근혜가 여자이기 때문에 대통령을 시켜서는 안 된다는 남성우월주의를 흉내를 낼 필요는 없다.
한국은 여성참정권에 관한 한 선진국
또한 그녀가 여자이기 때문에 이제는 대통령으로 추대해야 한다는 생각도 틀렸다. 이것은 마치 경상도에서만 대통령를 5명 배출했으니 이제는 다른 곳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생각과 비슷한 수준의 잘못된 기회균등주의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녀가 독재자의 딸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그녀가 산업화를 이끈 지도자의 딸이기 때문에 대통령으로 뽑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모두 새로운 연좌제요 잘못 응용된 혈통주의에 다름 아니다.
박근혜가 여자이기 때문에 독일의 메르겔이나 영국의 대처처럼 성공할 것이라는 것도 위험천만한 예단이요 아버지나 남편의 후광으로 집권한 파키스탄의 부토나 필릴핀의 아키노를 빗대 박근혜의 실패를 점치는 것도 비논리이다. 박근혜가 결혼 출산 육아의 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들어 그녀의 여성성을 의심하는 것도 매우 소박하고 편협한 성의식이다. 이젠 우리도 여성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할 때가 되었다는 범박한 양성평등론적 주장을 폄하하기보다는 역사적 개인으로서의 그녀가 그동안 참여한 일이 무엇이었는가를 따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녀의 정책을 검증하는 외에 그녀가 그동안 특수하고 예외적인 공간에서 누렸던 호사와 그녀가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현실이 무엇이 있었는가를 물어야 한다. 이는 그녀가 여자이기 때문에서가 아니라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한 개인의 실존적, 시민적 자각의 문제이며 그 의무일 것이다.
역사적 개인으로서 한 일 따져야
선거철에 각 진영에서 펼치는 각종 선거 공약이나 전략들은 콘텐츠가 좋으면 재미가 따르고 그 수준이 높으면 민생과 복지에의 기대로 뜨거워질 것이고, 거기에다 각 캠프가 벌이는 이러한 공방들이 세련미까지 갖추게 된다면 선거가 대립 반목이 아니라 정치발전으로 가는 축제의 마당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곳의 여성대통령 소동은 당위와 실재가 어긋나는 허탈한 이슈에 불과하다. 따라서 여성이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는 말인지 박근혜는 여성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말인지 분명히 밝히라고 몰아세우고 있는 여당의 공세는 여론몰이일 뿐이다.
"여성대통령이야말로 최고의 정치쇄신"이라는 여당의 구호는 여성대통령론의 허구성과 희극성을 잘 드러내 준다. 지금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그녀가 여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대통령후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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