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뉴스의 정확하고 엄중한 이미지다. 하지만 김현욱 아나운서는 방송국에 근무할 때도 그런 딱딱한 이미지가 아니었다. 푸근하고 빈틈 많아 보이고 서글서글한 인상으로 편안하고 정겹게 시청자들에게 다가섰다. 그래서인지 아나운서로 방송을 하는 내내 아주머니들과 남학생 팬들이 많았다.
그가 KBS- TV ‘도전! 골든벨’의 진행자로 뽑힌 이유도 기존의 이미지와 무관하지 않았을 터. 책상 앞에서 정해진 문제를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는 여느 아나운서와 달리 그는 학생들 속을 비집고 다니며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형처럼, 오빠처럼, 아니면 삼촌처럼. 그리고 얼마 전 프리선언을 한 그는 아이들의 곁으로 보다 더 가까이 들어왔다. 가까이에서 본 청소년들의 ‘말하기’가 김현욱 아나운서에게 또 다른 미래의 비전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맛있는 꿈, 맛있는 스피치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 대치동 사무실을 찾았다. 제목이 ‘맛있는 스피치’란다. 아나운서 전문 기획사 겸 스피치 교육 회사다. 대부분의 아나운서들이 프리를 선언한 후 몇 개월 쉬었다가 방송인으로 활발한 활동을 재개하는 것과는 사뭇 행보가 달라보였다. 게다가 교육관련 사업이라니. 왜 편안한 미래를 두고 굳이 험한 도전을 시작했는지 궁금했다.
“KBS에 입사하던 12년 전에 이미 퇴사를 생각했어요. 방송을 좋아하고 천직이라고 생각하는데 관성처럼, 돈벌이로 방송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지금도 저 방송합니다. 하지만 아나운서 때와는 다르죠. 주어진 프로그램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저만의 경쟁력을 가지고 제가 원하는 프로그램, 저를 원하는 프로그램에서 방송을 할 겁니다.”
그렇다면 많은 일 중에서 왜 스피치 회사일까?
“‘도전 골든벨’과 ‘스카우트’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청소년들의 ‘말’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어요. 스카우트는 특성화고 친구들의 취업을 돕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이 친구들이 면접 때 내놓는 답들이 정말 놀라울 때가 많더라고요. 나이도 어린 친구들이 어쩜 저렇게 말을 잘할까. 생각과 화술에 놀랐고 그런 친구들의 공통점은 취업이 확실히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도전 골든벨’도 마찬가지였어요. 골든벨을 울린 학생들의 공통점 역시 말을 잘한다는 거였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진정성을 담아 말한다는 것.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그런데 그걸 잘 하는 아이들이 어디서나 두각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방송 현장에서 깨닫게 된 겁니다”
아이들이 꾸고 있는 맛있는 꿈, 달콤한 꿈을 현실화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자고 만든 사업. 그게 바로 ‘맛있는 스피치’였다.
발로 뛰는 CEO, 직접 강의하는 방송인 CEO
프리로 전향한 후 스피치 학원을 차리는 선례는 이미 있었다. 하지만 운영자를 따로 두고 방송인은 형식적으로 사업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런 사업은 오래 가지 못했다. 오래 전부터 인생의 그림을 그려왔던 김현욱 대표는 이번 사업도 허투루 시작하지 않았다.
전 재산을 쏟아 2대 주주로 합류하면서 교육 현장에도 전면적으로 뛰어들었다. 이미 퇴사 전부터 함께 작업을 해온 사업이라 현장에 뛰어드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한 사람의 스타 방송인에게 연연하는 교육시스템이 아니라 어떤 아나운서든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할 수 있도록 교육의 콘텐츠와 시스템을 구축했다. 수업 내용 또한 노규식 박사(연세 휴 클리닉 원장)와 함께 연구한 ‘뇌력을 깨우는 6단계 스피치 과정’으로 완성했다. 그리고 그 수업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학부모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개수업을 직접 진행한다.
공개수업을 통해 ‘말하기 수업’ ‘말하기 논술’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초대하고, 성적표가 없는 학원에 아이들을 보내 불안해하는 학부모들도 안심시키며 꾸준히 발전시키고 있는 콘텐츠들의 반응을 살펴본다. 발로 뛰는 그의 열정 덕분인지, 꾸준히 업그레이드 시키는 콘텐츠 덕분인지 학생 논술, 수시 면접, 기업 면접, 승진 등 말하기 수업을 기다리는 이들이 늘 줄을 선다.
인성교육, 올바른 말하기 습관부터
인성 교육이 화두다. 공부만 잘하는 학생보다는 인성이 바른 학생을 뽑겠다며 고입, 대입에서도 ‘입학사정관제’가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김현욱 대표는 인성 교육이라고 해서 별도로 정신 교육을 하는 것보다는 평소 ‘말하기 교육’에 힘을 쓰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고 말한다.
“부모님들께 여쭤보고 싶어요. 평소 자녀가 어떤 언어를 쓰는지 알고 계신가 하구요. 그들의 언어에는 그들만의 정서가 담겨 있습니다. 존중이나 경청의 말하기를 할 줄 아는 아이는 이미 인성이 잘 갖추어져있는 거지요. 말을 잘하는 사람은 섣불리 말을 던지지 않습니다. 상황과 필요에 맞는 적절한 말을 합니다. 그런데 이 바른 말하기는 교육을 통해서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습니다”
아나운서들이 말을 잘하는 것은 공채시험을 통과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문법적인 오류가 적고, 정확한 어휘를 구사하니 말이다. 하지만 진정한 방송인은 오히려 말하기의 태도가 바를 때 빛이 난다. 출연자를 불러놓고 진행자가 혼자 말을 많이 하면 그 방송은 결코 좋은 방송이 아니다. 출연자가 마음에 안 든다고 무례하게 구는 태도 또한 방송의 질을 떨어뜨린다. 출연자가 많은 말을 하도록 양질의 질문을 던지고, 인내를 갖고 출연자의 말을 경청하며, 출연자의 생각을 존중해 줄 때 방송의 몰입도는 최고로 높아지고, 시청률이 상승하게 되는 것이다. 김현욱 대표는 ‘맛있는 스피치’를 통해 강남의 청소년들이 자신의 꿈과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올바른 자세를 터득할 수 있었으면 한단다.
우리말, 방송, 교육사업… 그가 외롭지 않은 이유
그는 아나운서로 활동할 때도 방송만 하지는 않았다. 공익방송의 의무감에 사업 전반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어머니의 이름 뒤에서 10여 가지의 사업에 도전을 해보았다. 월급에 아르바이트까지 해서 모은 돈을 계속 투자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처음에는 1년에 1억씩 손해를 봤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수익이 나는 일들이 생겼다.
“수업료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것도 안하고 방송만 하고 있었다면 이렇게 교육 사업에 바로 뛰어들 수는 없었겠죠.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를 해서 이익을 봤다고 해도 바로 사업을 할 수 있었겠어요? 10년의 경험들과 노하우가 축적이 되니 용기도 생기고 열정과 확신도 생긴 겁니다.”
대치동 본사에는 웬만한 생방송도 가능한 미니 스튜디오가 갖추어져 있어 다양한 스피치 훈련이 가능하다. 콘텐츠뿐만 아니라 교육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시설 투자에도 욕심을 내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형 마트 혹은 복지관 문화센터, 세종고를 비롯한 학교 방과 후 수업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그. 과연 이 열정을 감당할 피앙세는 언제 만날 지 궁금해졌다.
“언젠가는 해야죠. 그런데 지금은 아닌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고, 정말 재미있어요. 이렇게 있다간 저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 되겠죠? 하지만 안할 생각은 절대로 없습니다. 다만 지금은 사업을 시작한 때잖아요. 일을 벌였으니 열심히 해야죠. 적어도 ‘올바른 우리말 사용’을 위해 애썼다는 얘기도 듣고 싶고, 스피치 교육의 필요성을 알리는데 열정을 다했다는 기억은 남기고 싶습니다.”
불혹의 나이를 넘어서며 또 한 번 인생의 출사표를 멋지게 던진 김현욱 대표의 모습에서 많은 청소년들이 꿈과 도전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길 기대해본다.
이지혜 리포터 angus70@hanmail.net
■ 김현욱 대표
1972년 전북 출생
고려대 서어서문학과 졸
2000 KBS 26기 공채 입사
2004년 KBS 연예대상 신인상
2012년 아나운서(주) 대표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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