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사람들 - <칠전팔기 내 인생>의 저자 김준형씨

내 인생은 교통사고 이전과 이후로 나눠진다!

지역내일 2012-09-21 (수정 2012-09-21 오후 6:58:52)

“대학 입시에 두 번 실패한 후 삼수를 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말이 삼수생이지 수능시험일이 지난 줄도 모르고 매일 술에 절어 살았을 정도로 자포자기 상태였다. 그러던 와중에 당한 끔찍한 교통사고는 나를 다시 태어나게 했다. 일곱 조각 난 오른 다리가 채 완치되기도 전에 목발을 던져버리고 재활여행을 떠나 50여 개국을 돌았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0’부터 새로 시작하고 싶어 미국 유학에도 도전했다.” 폭풍 같았던 20대의 삶을 발판 삼아 당당하고 멋지게 도약하고 있는 <칠전팔기 내 인생>의 저자 김준형씨(33)의 스토리이다.


재수, 삼수…끝없는 방황이 시작되다!
대청중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전교 최상위권 성적을 올리기도 했던 김준형씨. 하지만 워낙 노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성적은 갈수록 떨어져 휘문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는 반에서 전체 50명 중 40등을 할 정도가 됐다. ‘노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싸움도 많이 했는데 몸집이 작아서 늘 손해를 본다고 생각한 나머지 100킬로그램까지 몸을 불리기도 했다. 키가 180센티미터가 넘었으니 마치 ‘곰’ 같았다고 한다.
노는 것에 있어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중학교 1학년 때 당구를 배우기 시작했고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는 강남역 주변에 있는 클럽이라는 클럽은 다 돌아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놀았다. 그 당시 노는 무리들 중에는 ‘대치동과 압구정, 방배 서초, 여의도, 평창동’ 등 각 지역별로 그룹이 형성돼있었는데 서로 싸우면서 친해지기도 했다.
그런 생활이 계속됐지만 어머니는 그의 성적이나 적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의대에 진학해 의사가 되기를 바라셨다. 그러니 더 심하게 반항하고 부딪칠 수밖에. 당연히 입시에 실패했고 재수를 했지만 기본 실력이 없는 상태에서 마음만 앞서 또 다시 실패하고 말았다. 명목상 삼수 생활이 시작됐지만 그 때부터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루 종일 술에 취해 살다시피 했다.

계속되던 일탈 끝에 맞닥뜨린 교통사고
술에 취해서 잠들고, 잠이 깨면 다시 술부터 찾는 날들이 계속되던 어느 날, 그의 삶을 송두리째 뒤집는 계기가 된 사고가 터졌다. 그날도 선배 형의 생일을 맞아 낮부터 시작된 술자리가 새벽 4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다들 이미 술에 취할 대로 취한 상태에서 4차 술자리로 이동하기 위해 차에 올라탔다. 그가 조수석에 앉아 잠이 든 사이 차는 양재역 사거리에서 급하게 우회전을 하다가 커브 길에 서있던 트럭을 정면으로 들이받고 말았다. 2002년 11월 11일 새벽 4시 28분이었다.
사고 당시 안전벨트도 매지 않아 좌석에서 튕겨져 나갔던 그는 심장의 대동맥이 파열되고 오른쪽 다리뼈가 일곱 조각으로 부서졌다. 병원에서는 심장 수술을 하지 않을 경우 생존율이 평균 25퍼센트밖에 안될 정도로 낮고 수술이 잘 돼도 35퍼센트라고 했다. 게다가 수술을 하면 몸에 끼워 놓은 장치를 평생 가슴에 달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운동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거라고도 했다. 결국 어릴 때부터 운동을 너무나도 좋아했던 그를 위해 가족들은 수술을 받지 않기로 결정하고 만다.
그가 중환자실에서 엄청난 고통과 싸우는 동안 가족들은 기도로 그의 곁을 지켰다. 대학생이던 누나는 휴학을 하고 그를 돌봤다. 그런데 정말 기적처럼 그의 심장이 회복되는 일이 일어났다. 가족들 모두 “우리 집안이 4대째 내려오는 목사 집안인 만큼 누적된 기도의 힘이 기적을 낳았다”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11개월간 50여 개국 돌며 재활여행
심장 상태가 좋아지자 조각조각 부러진 다리뼈를 붙이는 대수술이 시작됐다. 다행스럽게도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 재활치료만 잘 받으면 다시 걸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적인 소식이 들렸다. 그렇게 석 달간의 병원 생활을 마치고 퇴원했지만 아직 열 달 동안의 통원치료가 남아있었다.
재수, 삼수를 하는 동안 아무 의지도, 생각도 없이 무의미한 나날을 보냈던 그였지만 재활치료를 받으러 다녀야 할 시간들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결국 두 발로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스스로 재활치료를 하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염려하는 가족들을 뒤로 한 채 무작정 떠났다. ‘하지기능장애 5급, 심장장애 3급’ 진단을 받은 몸으로.
“막상 장애 판정을 받고 보니 내 몸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다. 하지만 좌절하기보다 다시 살게 해준 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부터 했다. 헛되이 보낸 지난날들을 교통사고가 한 방에 날려주었으니 새로운 나를 찾기 위해서라도 떠나고 싶었다.”
아직 회복되지 않은 다리를 끌고 여행을 다니느라 위험한 순간에 처하기도 했다. 이집트에서 무리하게 걷다가 다리가 퉁퉁 붓고 구부러지지도 않는 등 마치 수술 전 상태로 다시 돌아간 것처럼 아팠다. 1주일간 푹 쉬면서 누워있었더니 조금씩 호전되기는 했지만 너무 놀라서 재활여행에 대한 회의가 들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가며 혼자 힘으로 11개월간 50여 개국을 여행했다.
그는 “하루하루 새로운 곳을 여행하면서 그동안 가졌던 나의 가치관과 기준 등이 모두 무너져 제로 상태가 됐다. 재활여행으로 기존의 틀을 깨고 성장할 수 있었으며 세계 곳곳의 글로벌 문화를 확실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라고 강조했다. 여행을 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다이어트가 된 것도 하나의 덤이었다.

미국 유학 성공적으로 마친 후 삼성전자 입사
여행을 하면서 그는 세상이 이렇게 넓은데 그동안 국내 대학만 바라보며 아등바등 살았던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져 영어권 국가로 유학을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래서 거의 1년 만에 집으로 돌아와서는 곧 다시 미국 보스턴으로 떠났다.
유학 준비가 전혀 돼있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우선 벙커힐 커뮤니티 칼리지(Bunker Hill Community College)에 입학했다. 전공으로 생물학을 선택한 그는 평소 텔레비전 켜 놓기, 미국 친구 룸메이트 삼기, 미국 사람처럼 생각하고 생활하기 등 그만의 방법으로 영어 문제를 해결했고 1년 반 만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 후 애머스트 매사추세츠대학교(University of Massachusetts)에 편입해 또 다시 1년 반 만에 최우등(숨마쿰라우디)으로 졸업하는 성과를 올렸다.
유학생활을 하면서 그는 학기 중에는 철저하게 학교 공부에 올인했다. 하지만 여름방학 때에는 여행이나 운동을 즐기고 과테말라에서 집짓기 봉사활동을 하는 등 체험 위주의 시간을 보냈다. 좋아하는 운동을 계속하면서 현지 친구들과 우정을 다지기도 하고 광고모델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그는 대학생 후배들에게 항상 “학기 중에는 공부에 집중하고 여름방학 때마다 3개월간 1개 대륙씩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 여행 가이드북)’을 들고 걸어서 여행하라. 그렇게 3학년 때까지 3개 대륙을 두루 다녀보면 졸업 무렵에는 분명히 기업이 원하는 글로벌 인재가 돼있을 것이다”라는 조언을 해준다.
졸업 후 하버드 메디컬스쿨 오럴캔서센터 인턴과 삼성전자 입사 기회가 동시에 찾아왔지만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삼성전자를 선택해 현재 미디어솔루션센터(MSC)의 미디어서비스그룹 소속으로 일하고 있다.

잠자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로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해
비록 교통사고가 인생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기는 했지만 헛되이 보낸 지난 시간들을 생각하면 그는 늘 마음이 급하다. 하루하루가 너무 귀하게 여겨져 잠자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다. 요즘에는 아침 6시부터 남산을 한 바퀴 달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만능 스포츠맨인 그가 즐기는 운동만 해도 수영, 사이클, 달리기, 야구, 골프, 배드민턴, 테니스, 스키, 스쿠버다이빙, 승마, 등산 등 모두 11가지나 된다.
지난해 6월에는 처음으로 철인3종경기에 출전하기도 했고 이어서 7월에 참가한 설악 전국 트라이애슬론대회에서는 일반 동호인 핸디캡 그룹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올해 4월에 참가한 동아국제마라톤대회에서는 20킬로미터 정도 달렸을 때 수술한 오른 다리가 구부러지지 않는 바람에 그 상태로 걸어서 6시간 만에 골인하기도 했다.
운동 못지않게 그가 공을 들이는 부분이 바로 인맥관리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그에게 도움을 준 이들을 생각하며 늘 진심으로 도움을 주려고 노력한다. “나는 남에게 쓰임을 받는 삶을 즐기므로 누군가 도움을 요청할 때 행복을 느낀다. 그들이 100을 원하면 120~130 정도를 해주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좋은 인맥이 유지된다. 두 대의 휴대폰으로 매일 문자와 카톡 400~500여건을 주고받고 잠자는 시간 외에는 가능하면 메일 답장도 5분 이내에 보내려고 노력한다”는 것이 현재 페이스북 친구 4,800여명, 휴대폰에 저장된 번호 4,000여개인 그가 밝히는 인맥관리 비법이다.

‘놀아 볼만큼 놀아 본’ 그, 청소년 멘토로 인기 얻어
그는 2년여 동안  iMBC의 ‘창의력 캠프’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지난 경험을 들려주며 멘토 역할도 했다. 또한 더 나아가 상처를 안고 있는 소년원생과 탈북 청소년들을 위한 멘토로 나서기도 했다. 어딜 가나 청소년들은 그를 강사라기보다 형이나 오빠처럼 친근하게 여긴다. 그러니 아이들이 쉽게 마음을 터놓고 고민 상담을 해와 인기가 높은 편이다.
그는 특히 소년원생들을 만나면 자신도 스물두 살 때 당한 교통사고가 없었더라면 그들과 같은 순서를 밟았을 거라는 생각에 더욱 애정을 갖게 된다. 그들이 겪고 있는 방황을 이미 경험해본 선배이다 보니 그 속에서 하루빨리 아이들을 꺼내주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소년원생들 역시 처음에는 경계를 하다가도 그의 ‘놀아 볼만큼 놀아 본’ 포스가 느껴져 결국 마음을 열고 소통한다.
그는 만나는 아이들마다 “청소년기 방황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나는 5년을 했으나 너희는 하더라도 그 기간을 최대한 줄여라.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잠깐만 방황하라”며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사진 박경섭 작가(스튜디오 ZIP)
장은진 리포터
jkumeu@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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