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어 주는 미담 소식만 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요즘 우리는 하루가 멀다고 장기밀매, 아동 성폭행, 묻지마 살인 등 잔인한 소식을 접하게 된다. 잔인한 소식도 자주 접하다 보면 그 심각성을 의식하지 못한 채 무덤덤해지기 쉽다. 지난 8월 29일 개봉한 영화 ‘공모자들’은 현실 속 악마의 세계를 피부로 느끼게 해준다.
장기밀매를 전면에 내세운 범죄 스릴러
2009년 중국을 여행한 신혼부부의 장기밀매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공모자들’은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여객선을 배경으로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한 충격적인 범죄 현장을 공개해 장기밀매의 실태를 리얼하게 보여준다.
중국행 여객선에 오른 상호(최다니엘)와 채희(정지윤) 부부는 손꼽아온 둘만의 여행으로 행복에 젖어있다. 하지만 설렘도 잠시, 채희가 배안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아내를 찾기 위해 집요하게 추적하는 상호와 상호를 돕는 유일한 증인 유리(조윤희)는 장기밀매 공모자들의 조직력 앞에 무너진다.
작업을 지시하는 장기밀매 총책 영규(임창정), 장기를 적출하는 외과의사 경재(오달수), 운반책과 감시조 등 전문가로 구성된 장기밀매단은 목표물 입수, 장기 적출, 운반에 이르는 장기밀매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곳곳의 감시망과 검색대를 뚫기 위한 뇌물 물밑 작업은 필수다.
하지만 빈틈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 영화를 드라마틱하게 만든다. 냉혈한이지만 유리에게만은 인정이 끌리는 영규, 내부 조직원의 배신, 악당 중의 악당 장기밀매 브로커, 그리고 양의 탈을 쓴 악마 등.
주저함 없는 냉혈연기와 반전의 묘미
영화 ‘공모자들’의 주연 배우 임창정과 최다니엘은 이 영화에서 연기파 배우의 면모를 아낌없이 보여준다. 임창정은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기 하나 없는 강렬한 눈빛과 거침없는 사투리로 차가운 연기를 선보인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전의 코믹한 그의 이미지는 온데간데없다. 다정다감한 순애보 캐릭터의 최다니엘은 영화의 막바지에 야비하고 냉혹한 이미지를 만들며 입체적인 캐릭터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출연하는 매 작품마다 살아 숨 쉬는 감초 연기를 선보이며 존재감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배우 오달수는 타락한 변태 외과의사 역을 리얼하게 연기해 소름을 돋게 한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이어지는 반전은 스토리의 개연성을 떨어뜨리기는 하지만 관객들에게 드라마틱한 재미와 차가운 전율을 느끼게 해준다. 물건으로만 생각했던 채희가 이전 동료의 여동생이었음을 알고 달라지는 영규, 반전으로 살아난 채희의 참혹한 최후, 심복인 동료의 배신, 자상한 남편에서 치밀한 악당으로 변하는 상호,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의 장기를 얻기 위해 중국행을 택했지만 오히려 장기를 잃은 아버지의 사체를 마주하게 되는 유리, 거듭되는 반전은 긴장과 속도감을 더해준다.
누구나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공모자들’이 그 어떤 잔인한 영화보다 섬뜩하게 느껴지는 것은 누구나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각인시킨 데 있다. 돈을 위해서 인정을 저버린 냉혈한들이 조직적으로 벌이는 범죄 앞에 힘없고 선량한 개인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하나만 죽어주면 서넛은 살리고도 남아. 사람도 살리고 돈도 벌고”라고 말하는 악마는 악행에 대한 정당성까지 확보하려 한다.
영화관을 나서며 만감이 교차한다. 영화의 잔인한 영상도 어른거리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영화라는 점에서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내 몸값은 얼마인가’, 공모자들이 노리는 희소한 몸이 아니니 다행스럽기까지 하다. 의·과학 기술의 빛과 그림자를 다시 한 번 고민케 한다.
이선이 리포터 sunnyyee@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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