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이 문학으로 사회와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은 얼마나 될까. 수도권 4년제가 아니라서, 나이가 많아서, 특별한 사연이 없어서, 미등단 작가라서, 출판사 방향과 맞지 않아서…. ‘출판의 자유’란 말이 무색하도록 책은 그리 넉넉한, 혹은 녹록한 공간이 아닌 모양이다. 그토록 문학이란 것이 우리에게 아스라이 멀리, 그리고 높이 있는 구름 같은 것이었던가. 누구나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지만, 그것을 세상에 실어 보내는 일은 예상보다 혹독한 것이 오늘의 문단과 출판계다. 그런 모든 제약과 권위를 넘어, 더 넓은 공간에서 세상의 이야기가 풍성해지길바라는 그를, 홍대의 한 만화 카페에서 만났다.
위지영 학생리포터 noeulnaru@naver.com
사진 배승빈 학생리포터
장소 제공 카페 한 잔의 룰루랄라
우리 이야기를 하기엔,
여기 종이는 너무 작다
‘밥먹자’부터 ‘글쓰자’까지
‘학교 안’에서도 여러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작년 2학기쯤 만든 “밥.먹.자(밥은 먹고 다니자)”라는, 공강 때 밥 같이 먹는 모임. 아는 사람도 많이 만들 겸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시작한 건데 현재 80명 정도가 모였네요. 그리고 올해 초에 만든 서사학 소모임. ‘글 쓰고 싶은 사람들끼리 이야기하고 노는’ 모임입니다.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채워주고, 이야기의 집중점도 강화해주고. 국문학과뿐 아니라 타 학과생, 타 학교생, 취업자 등도 모여서 한 15명 정도.
왜 그런 활동을 하시는 건가요?
대학 내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개인은 굉장히 파편화되어 있어요. 제 생각엔, 모임에서 드러나는 사람들 간의 공통된 부분이 외로움인 것 같아요. 그래서 소통을 원하고. 누군가와 이야기 많이 나누고 싶어 하고, 글을 쓰고 싶어 하고.
고졸 편견에 다시 대학에 가다
글쓰기, 문학 공부를 시작한 계기가 있나요?
장르 문학을 많이 읽었어요. 초중학생 땐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문학 커뮤니티를 봤어요요. 이 글 저 글 읽다 보니 ‘이 정도면 나도 쓸 수 있겠는데?’, ‘나도 조금만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싶은 거예요. 그래서 글을 쓰고, ‘어떻게 하면 더 잘 쓸까?’ 하는 욕심에 문학 이론 공부도 시작했죠. 원래는 미술을 하고 싶었는데, 가정형편상 미술을 그만두고 외국어 고교로 진학, 공부에 몰입하게 됐죠. 어떻게든 책상머리에 붙들어놓는 학교의 주입식 공부가 싫어서, 돌파구로 문학 공부를 다시 시작했어요.
근데 학번에 비해 나이가 많은 편이시잖아요. 그 동안의 행보를 들려줄 수 있나요?
고등학교 때 그렇게 문학 공부 하면서 참 놀랐던 건, 내가 문학 이론을 질문하면 학생의 공부를 도와주기는커녕 “쓸 데 없는 공부를 왜 하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는 거예요. 그때 생각했죠. ‘고등학교도 이런데 굳이 대학을 갈 필요가 있나’라고. 그래서 대학진학을 제쳐두고 사회생활을 먼저 시작했어요.
나름 외고 영문과를 졸업했는데도 사회적으로 ‘고졸’이라는 편견이 너무 셌어요. 일자리를 구하는 것부터 힘들었죠. 또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어서, 원인은 아직도 잘 모르지만 난독증과 공황장애 같은 걸로 고생했어요. (지금은 괜찮아요.) 근데 정신병 판정으로 군대를 안 가면, 고졸에 정신병자라는 꼬리표까지 달게 되잖아요. 그러면 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될 거란 생각에, 스무 살에 일단 입대를 했어요. 1년 쯤 후에, 부대장님이 내가 글 쓰는 데에 소질이 있다는 걸 알고 글을 쓰게 도와줬어요. <국방일보>에 꽤 큰 기사도 쓰고요. 컴퓨터를 만지게 되면서 군용 전산망 안의 인문학 사이트를 만나고, 거기에 미친 듯이 글을 썼어요. 소설, 수필, 평론 등 그때 쓴 것만 책 10권 분량은 되겠네요.
그 많은 글들을, 어떻게 했어요?
휴가 나와서 여러 출판사에 글을 냈는데, 그중 몇몇 출판사에서 이런 말이 나왔어요. “이렇다 할 수상 경력도 없고 등단 실적도 없는, 거기에 학력도 없는, 아무런 보장 없는 글쟁이의 글을 출판할 만큼 우리 출판사는 역량이 되지 않는다”고. 글의 주제와, 팔릴만한 글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저자의 영향력이 없다는 거죠. 거기서 충격 받았어요. 와, 글조차도 내가 마음대로 세상에 내 놓을 수 없구나. 그럼 좋다. 그럼 너희가 원하는 학력과 수상경력을 만들어주겠다, 그런 오기가 생겼죠. 대입 방법을 찾다가 입학사정관 제도를 알게 됐어요. 지금까지 쓴 글을 모아서 서류를 만들었고, 면접을 거쳐 2011년에 입학했죠.
이제 2학년인데, 대학교에 와서 드는 생각은?
무엇보다도, 제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내가 속한 세대의 이야기거든요. 제가 10대일 때는 10대의 이야기를, 20대에는 20대의 이야기를 쓰고 싶은데 나는 20대 주류 사회 외곽에서 3~4년을 살았어요. 물론 고졸의 차별을 경험하긴 했지만, ‘보통의 대학생’들이 경험하는 현실에 대해선 아는 게 없기 때문에 대학에 온 것도 있어요. 그래서 작년엔 ‘보통 대학생’처럼 놀고, 공부하고, 모임 만들고 지냈어요.
인디작가리그 결성
그 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뭔가 일을 꾸미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만?
군대 인문학 동아리에서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 ‘권위 없이, 순수하게 독자들끼리 투표해서 작품을 뽑는 문학상(賞)을 만들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거창한 건 아니지만, ‘문학도의 입장에서, 국문과 학생 입장에서, 남들과는 다르게 나를 평가해서 입학사정관제로 선발해준 교수와 학교를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했었어요. 그때 잊고 있었던 ‘그 계획’이 떠올랐죠. 그리고 이걸 다듬고 고쳐서 실행하기 위해 <인디작가리그>를 결성했어요.
<인디작가리그>라, 흥미롭군요!
자본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고, 권위가 없기 때문에 나 같은 학부생이 도전해볼 수 있는 부분이죠. 졸업생 2명, 저까지 합해서 국문과 사람 3명, 총 5명이 모여서 결성. 처음에는 문학상을 만들고 그 수상작을 책으로 엮자는 거였는데, 어플리케이션(앱)으로 글을 내는 걸로 수정하면서 문학 창작집단으로 바뀌었어요.
기존에는 출판사랑 저자가 책으로 발생한 수익과 저작권을 나누는 방식이라면, 우리는 일단 앱으로 글을 출판해요. 그리고 앱으로 발생하는 수익은 최소 운영 비용 5%정도만 두고 리그의 작가들이 공동 분배. 무튼 그런 취지에서 일단 ‘탈저작권’. 또 등단을 해야만, 수상을 해야만 책을 낼 수 있는 시스템에서 벗어나겠다는 ‘탈권위’. 그리고 글 쓰는 지면을 확장하면서, 등한시 되고 있는 하위문화(Subculture)를 끌어와 ‘우리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한다’는 것, ‘다양성’에 초점을 둡니다. 문학상은 리그 내에서 ‘이벤트’로 진행하기로 결정했고요.
<인디작가리그>는 어떻게 활동하나요?
1년에 최소한 2편 이상의 글을 써야 해요. 최소한의 권리를 갖기 위한 의무로. 혹여 수익이나 활동의 불균형이 생기면 양질의 콘텐츠를 창작할 수 있게 유닛으로 리그를 쪼개요. 이렇게 유연하게 운영할 것이기 때문에 ‘리그’라고 명명했죠. 프로그래머도 섭외했고, 인디작가리그 안에 콘텐츠는 이미 많기 때문에 앱 개발이 끝나는 대로 세 편 정도를 내놓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생각이예요. 올 하반기 쯤엔 독자 중심의 문학상(賞)도 진행할거예요.
그럼 아직 계획만 있고 실행되지 않은 상태인데, 어떻게 장담하시는지?
그만큼 계획이 탄탄한 것도 있지만, 일단 잃을 게 없죠. 실패한다고 해서 돈을 크게 잃는 것도 아니고, 내가 다시는 글을 못 쓰게 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전 제가 대학에 갈 수 있을 거란 확신도, 모임을 만들면 사람들이 와줄 거란 확신도 없었어요. 근데 막상 해보니 ‘우와! 대박이다!’까진 아니지만, 내가 생각했을 때 ‘이 정도면 내 노력만큼 뭔가 이루어졌어!’의 정도까진 늘 도달했어요. 맨땅에 헤딩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세상은 좀 더 재미있어진다는 생각을 해요.
속되게 말하자면 ‘돈 안 되는’일인데.
우리가 강조하는 건 다양성이에요. 또, 글 쓰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려는 거예요. 자기만족 같지만, 적어도 ‘넌 뭐 했어?’라는 질문에 ‘난 글 썼어’보다는, ‘나는 글을 썼어. 그리고 나 혼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자기 목소리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게 하려고 이런 것들을 해봤어’라고 말하고 싶어요.
앞으로 <인디작가리그>의 행보를 기대하겠습니다.
글의 미래에 대해 무조건 긍정하진 않지만, 그래도 글의 힘을 믿어요. 정신적으로 힘들었을 때, 도스토옙스키의 『백야』를 읽고 며칠을 운 적이 있어요. 또, 꽤나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감동했다’ 라든가, ‘펑펑 울었다’는 감상을 들려주곤 했어요. 한 어린 아이의 노래에 수만 명이 감동하는 것처럼, 글도 그런 걸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남아있죠. 나도 할 수 있다고 믿고 싶어요. 내가 느낀 걸 돌려줄 수 있다고. 그걸 바탕으로 21살 때부터 계획한 일이니, 적어도 한 10년은 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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