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변수 총점검 ④ 시대정신

지역내일 2012-06-20
변수 총점검 ④ 시대정신

‘부자아빠’ 열풍 2007년 대선 강타, 2012년에는?
국민의 강렬한 욕구, 대선 주자에 투영돼 지지세 형성
대세론 굳히거나 바람을 일으키는 요소도 시대정신


선거의 3대 요소는 구도, 인물, 바람이다. 그러데 대선에서는 이 과정에 한 가지 핵심 요소가 더해진다. 바로 ‘시대정신’이다.

시대정신이란 그 시대 국민이 가장 절실히 원하는 바, 또는 꼭 해결하고 싶은 과제를 의미한다. 5년마다 치르는 전국민 직선투표제인 우리나라 대선은, 이런 시대정신이 강렬하게 드러나는 장(場)이다. 유권자는 본인들이 원하는 바를 가장 중요한 선거인 대선에 투영하고, 이에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인물에 열광한다.

이런 상관성은 베스트셀러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지난 2007년 우리나라 주요 서점가를 휩쓴 책 1위는 ‘20대 재테크에 미쳐라’이다. 또 ‘부자아빠’ 열풍이 전국을 강타했고, ‘여왕재테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국의 남녀노소가 부와 성장을 갈망했다. 이는 17대 대선에 투영될 당시 우리나라 시대정신이 ‘경제 성장과 부’임을 예견하는 대목이다.
실제 이해 대선에서 ‘샐러리맨의 신화’인 이명박 후보는 큰 인기를 끌고 당선됐다. 그가 온갖 도덕적 논란에도 불구 ‘박근혜 대세론’을 누르고, 이후 야권 지지층까지 흡수하면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경제성장과 부에 대한 당시 국민의 욕구’가 투영됐기 때문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앞서 역대 대선도 시대정신의 승리로 볼 수 있다. 미래의 시대정신을 선점한 쪽이, 온갖 변수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거머쥐었다. △1992년 군사정권의 탈피- 김영삼 △1997년 평화적 정권교체 -김대중 △2002년 탈권위주의와 개혁 -노무현 그리고 2007년 경제성장과 부에 대한 열망 -이명박 당선 등이다. 볼테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대정신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5년전과 달라진 국민의 욕구=
그렇다면 2012년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단서를 베스트셀러 키워드에서 찾아보면 5년 전과 확연히 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주요 서점 집계에 따르면 최근 베스트셀러 1위는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혜민스님), 2위는 ‘엄마수업’ (법륜스님)이다. 2002년 ‘20대 재테크’와 ‘부자아빠’ 광풍과는 대조적이다.
또 최근 2년여간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놓치지 않은 책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샐던)다. 즉 우리나라 국민은 이제 부와 성공을 갈망하기보다, 소통과 치유, 공감과 정의에 목말라하고 있다. 그런데 ‘정의’라는 용어를 구체적으로 분석해보면, 질서와 안정을 강조하는 5공화국 시대와는 다른 개념임을 알수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최근 사용하는 ‘정의’란 용어는 경제적 불평등 해소와 연관돼 있고, 이는 제도적 방안으로서 ‘경제민주화’로 쓰이기도 한다.
한편 여론조사와 전문가들 전망에서도, 시대정신 키워드는 복지, 경제민주화(양극화 해소), 정의로 유사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시대정신에 대한 여론 및 견해 조사에서 △복지와 양극화 해소 (2011년 12월 <한겨레>의 전문가 30인이 본 시대정신) △국가의 역할은 사회정의 실현 (2012년 5월 ‘생활정치연구소’ 전국 성인남녀 1000명 여론조사) △차기 대통령이 우전적으로 갖춰야 할 능력 1위 ‘경제정책’ 2위 ‘부정부패척결’ (2012년 6월 SBS 17일∼18일 전국 성인남녀 1000명 여론조사) 등이다.
이외에도 19대 국회 임기가 시작된 지난달 30일 이후 제출된 의원입법의 핵심 단어가 ‘행복’과 ‘정의’라는 점도, 시대정신의 표출과 연관돼 있다. 지역구 민원 해결 성격의 입법이 있지만, 의원들이 의욕적으로 제출한 법의 특징은 사회적 약 보호와 삶의 질 개선으로 요약됐다.

◆대선 주자들도 시대정신 언급 =
대선이 다가오면서, 주자들도 ‘시대정신’을 본격 언급하고 있다. 여야 주자들의 공통 구호는 민생, 복지, 통합, 행복, 정의 등으로 요약된다.
다만 여권의 유력주자인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대위원장과의 인물 비교(여론조사 지지율)에서 뒤지고 있는 야권에서는, 대선 승부를 가를 키워드가 ‘시대정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출마 선언에서 손학규 상임고문은 본인이 각 시기마다 ‘시대정신에 맞게 살아온 사람’이라고 말했고, 문재인 고문도 ‘정권교체와 시대교체의 시대정신을 실현할 사람은 나’라고 강조했다. 김두관 경남지사가 ‘룰라 리더십’을 내세우는 가운데, 그의 지지자인 민병두 의원은 이번 선거의 가장 예리한 전선이 ‘정의라는 시대정신’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일각에서는 시대정신이 올해 대선에는 크게 부각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여야 대선주자들이 너도나도 ‘복지’를 외치고, ‘경제민주화’ 의제까지 겹쳐서 차별화 변수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은 이미 국민행복, 복지, 경제민주화 등을 일찌감치 주장해왔고 총선 전에도 이를 정책으로 밀어부쳤다.
하지만 야권의 대선 후보가 정해지고, 전선이 뚜렷해지면 시대정신이 어떤 식으로는 뚜렷하게 드러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모든 후보가 유사한 ‘구호’를 제시한다고 해도, 유권자들은 어떤 지점에서라도 반드시 차별 점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즉 ‘시대정신을 가장 잘 구현할 능력’을 보든,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삶의 궤적’을 보든, 어떤 식으로든 미래에 시대정신을 반영할 인물이 누구인지 결정한다는 것이다.
지난 2002년 대선 초반, 여론조사 지지율이 5%도 안됐지만 돌풍을 일으키며 결국 대선 후보가 됐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은 그런 점에서 의미 심장한다.
“거대한 흐름이 나를 밀고 나갔다. 나는 다만 그 앞에 있었을 뿐이다.”
전예현 기자 newslov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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