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일원동 어린이 벼룩시장
“어린이 일일 장터로 놀러오세요”
어린이가 팔고, 어린이가 사고, 어린이들이 기증하는 아나바다의 장(場)
해마다 이맘때면 일원동 대모산 부근의 한솔공원에서는 어린이 벼룩시장이 열린다. 올해로 벌써 5년째다. ‘한살림’의 후원으로 일원수서 어린이 벼룩시장봉사단 주최로 열리는 흥겨운 마을 행사다. 강제성을 띄지 않아도 열심히 물건을 판매한 아이들은 반액 혹은 전액을 기부하고 자리를 걷는다. 고급스럽고 비싼 물건은 없지만 깨끗하고 소중한 물건들이 대부분이다. 아이들은 물건을 왜 소중히 써야하는지를 배우고, 함께 사는 친구들과 나누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 것인지 직접 체험한다.
고사리 손으로 파는 아름다운 장사
어린이들은 공원에 오는 순서대로 자리번호표를 배정받고 돗자리를 편다. 대부분 사전 접수했던 아이들이다. 아끼며 깨끗이 간직해온 정든 장난감, 인형, 노트, 도서들이 고사리 손을 통해 가방 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온다. 물건 정리하는 데만 한참이다. 어떤 물건은 아직도 팔지 말지 고민하는 경우도 있다.
“이거 정말 좋은 거예요. 아빠가 제 세 살 생일선물로 사주셨어요. 제가 어릴 때 참 많이 갖고 놀았는데 아기 주시면 좋아할 거예요.” 판매하는 어린 상인들의 사연까지 묻어나와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른 아이가 파는 물건이 궁금해 자신의 돗자리를 비우고 돌아다니는 아이도 있고, 먹을거리에 현혹되어 장사는 일찌감치 접은 아이들도 있다. 아이들의 안전이 걱정되어 뒤따라 나온 엄마들은 멀찍이서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동생들의 장사가 성에 안찬 중학교 언니 오빠들이 두 팔 걷어붙이고 장사에 나서는 집도 있다.
아이 때부터 배우는 기부 문화
어린이 벼룩시장을 마련한 취지는 간단하다. 한살림 생명공동체가 조합원들만의 운동이 아닌 마을 공동체로서의 움직임을 갖도록 하자는 뜻이 있었고, 아이들에게 나누며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알려주자는 뜻도 있었다. 한살림이 그저 똑똑한 고급 소비자에서 소박하고 현명한 알뜰 소비자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장난삼아 돌아다니는 것 같아도 장사가 끝날 때쯤이면 아이들은 저마다 지갑을 탈탈 털어 오늘의 수익금을 헤아려본다. “엄마 난 다 기부할까?” “아이스크림 사 먹을 돈만 남기고 기부해도 될까요?” “만원 밖에 못 벌었는데 얼마를 기부하면 좋을까?” 하며 작은 머리에 쥐가 나도록 고민하는 아이에서부터 흔쾌히 전액기부를 결정하는 아이까지 벼룩시장의 끝은 언제나 아이들의 나눔 결정으로 마무리된다.
부족함 없이 자라는 아이들. 그래서 아이들에겐 배려와 양보가 어렵기만하다. 하지만 봉사와 나눔은 특별한 사람들의 몫이 아니다. 아이들은 어린이 벼룩시장을 통해 잠시나마 나눔의 의미를 배우곤 한다.
어린이 장터 운영을 위한 부모들의 자원봉사
100% 어린들만의 힘으로는 벼룩시장 운영이 불가능하다. 햇살조합원 약 10명, 동네 학부모 10명 정도가 자원봉사자로 투입된다. 조합원은 친환경 먹을거리 제공, 자연물을 이용한 만들기, 재생비누 만들기, 기부접수를 담당하고, 학부모들은 홍보와 기증물품 판매, 어린이장터를 담당한다. 행사에 참여한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에서 이웃 주민들의 격려와 응원 속에 자원봉사자들은 힘을 얻고 보람을 느낀다. 서울 그것도 강남구 내에서 이런 공동체 의식을 가질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2회 기부액 80만 원, 3회 기부액 140만 원, 4회 기부액 150만 원은 전액 문정동 청소년 3명에게 장학금으로 전달되었다. 참여 어린이도 80명에서 111명으로 늘었다. 이번 5회 때는 몇 명의 어린이가 참여하고 얼마의 기부금이 모일지 궁금해진다.
작년 바자회를 마친 후 초등학교 3학년 안성민 어린이는 이런 글을 남겼다.
"나는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집에 가방을 놓고 한솔공원으로 나왔다. 엄마는 접수기부처에서 일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열심히 물건을 사고팔았다. 그래서 오늘 한솔공원은 일종의 공연장 로비처럼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나는 로봇, 아이스크림모양 선풍기, 비눗방울 놀이를 팔고 총 두 자루를 샀다. 자리를 정리하고 남은 돈으로는 기부를 했다. 기부를 하니까 작은 돈이지만 누군가를 도울 수 있어 기뻤다. 그런데 아쉽게도 갑자기 비가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기부금이 적게 모일까봐 걱정이 되었다. 나중에 엄마가 와서 말씀해 주셨는데, 아이들이 우산, 모자, 심지어 돗자리를 뒤집어쓰기도 하면서 줄 서서 기부를 했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들으니 안심도 되고, 그 아이들이 고맙고 대단하고 우리 마을이 자랑스러웠다. 벌써 내년 벼룩시장이 기다려진다."
이지혜 리포터 angus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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