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가족 한울공동체> 아름다운 품앗이 ‘한울공동체’를 아시나요?

지역 화폐 한울을 통한 훈훈한 지역 공동체 생활

지역내일 2012-05-29

강남 가족 한울공동체

아름다운 품앗이 ‘한울공동체’를 아시나요?  

지역 화폐 한울을 통한 훈훈한 지역 공동체 생활


일을 뜻하는 ''품''과 교환한다는 뜻의 ''앗이''가 결합된 말 ‘품앗이’. 품앗이는 우리의 오래된 마을의 공동노동 형태지만 임금노동이 발달하면서 자연스럽게 쇠퇴했다. 옆집에 누가 사는 지 어떤 일이 있어났는지조차 모르고 사는 요즘 ‘품앗이’라는 단어는 사전을 뒤져야 겨우 뜻을 유추할 수 있는 그런 단어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최근 강남구에서 지역화폐 ‘한울’을 기반으로 한 품앗이 공동체가 활성화 되고 있다고 해서 화제다. 개인주의 문화의 대표지역으로 꼽히는 강남에서 들려온 소식이라 더욱 반갑게 느껴지는 ‘한울공동체’. 이 아름다운 운동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알아보았다.


매일 오후 열리는 한울 마켓 

강남구 개포동길 611 강남종합사회복지관 지하에는 한울공동체 사무실이 있다. 이곳에서는 평일 오후 1시에서 6시 사이 한울마켓이 열린다. 코디네이터 2명이 회원들의 구매를 돕고, 팔 사람, 살 사람들이 진열대 여기저기를 들여다본다. 가방, 옷, 모자, 학용품, 신발, 그릇 등 없는 게 없다. 언뜻 보기에는 바자회나 아나바다 장터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기부나 현금거래가 아니다. 물건 하나하나에는 판매자의 이름과 가격이 ‘한울’로 표시되어 있다. 

“좀 깎아주면 안될까요? 난 이 치마 꼭 사고 싶은데…내가 가진 한울이 조금 부족해요.” 한 주민이 치마를 만지작거린 끝에 용기를 냈다. 코디네이터가 대답을 한다. “판매자가 알아서 해달라고는 했지만 그래도 잘 받아달라고 하셨는데, 아이고 알겠어요. 드릴게요.” 

그렇게 한울로 치마 거래가 성사되었다. 물건을 팔 사람이 직접 나와 있어도 좋고, 직장이나 다른 일로 자리를 지키기 어려운 경우는 원하는 금액을 한울로 표시한 후 코디네이터에게 의뢰하면 된다. 

산 사람과 판 사람 모두의 통장에 한울 거래가 기입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역화폐 한울. 하지만 통장 안에서 한울은 쌓였다가 사라지고, 모였다가 소비된다. 현금거래가 없기 때문에 내 가계 수입이나 지출로는 잡히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것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나 모두 한울로 거래 

물건을 사고파는 부분만 보면 지역화폐 ‘한울’의 도입은 오히려 번거로워 보인다. 하지만 한울의 쓰임은 보다 다양하다. 회원들끼리의 약속된 화폐인 ‘한울’은 공동체 안에서 원하는 곳 어디서나 통용가능하다. 

요가, 미술, 꽃꽂이 등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회원들에게 강좌를 열고 수업료를 한울로 받는다. 시간 여유가 있는 사람은 이웃 어르신의 병원 동행이나 방과 후 어린이 돌보미를 신청하고 한울을 받는다. 누구는 등산모임을 주도하고, 누구는 걷기 모임, 누군가는 글쓰기 논술, 어르신 컴퓨터 교실을 오픈한다. 단지 돈만 바라고 하기에는 쉬운 결정이 아니다. 같은 공동체 회원이라는 신뢰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거래다. 

시간 때우기 식으로는 서로의 삶을 살뜰하게 살펴주기 어렵다. 이런저런 활동으로 쌓인 한울은 다시 한울공동체 안에서만 사용 가능하다. A와의 거래에서 고마운 기억을 갖게 된 B는 C와 거래할 때 같은 인상을 주고 싶어 한다. D와 E를 만나도 마찬가지다. 서로의 통장에 같은 기록이 남겨지니 누락실수도 일어나기 힘들다. 그렇게 퍼지는 고마운 마음은 한울공동체를 더욱 단단하고 견고하게 만든다. 그저 한울 식구라는 확인만으로 마음과 눈빛이 넉넉하고 푸근해지는 것이다. 한울은 지역의 화폐 단위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지역 주민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는 끈끈한 울타리가 되어가고 있다.


한울, 바르고 진실된 우리 터전 

강남구의 ‘한울공동체’는 2010년 9월 서울시의 ‘s-머니’사업 공모에 당선되면서 시작됐다. 지역화폐를 도입하여 돈이 없어도 소통이 되는 지역사회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 사업의 취지였다. 한울의 본뜻은 ‘큰 나’, ‘온 세상’을 가리키지만 한울공동체에서는 한울타리, 바르고 진실된 우리 터전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그만큼 서로 함께하는 지역 공동체 생활이 만족스럽다는 얘기다. 

한울공동체 회원은 반드시 강남구에 거주하는 20세 이상의 성인 남녀여야 가능하다. 본인이 알리고 싶은 재능이나 도구, 물건이 있으면 사무실을 통해 회원들에게 알리면 되고, 도움이나 물건 등 뭔가가 필요한 사람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거래자를 찾으면 된다. 

“현금이 없어도 좋은 물건을 만날 수 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죠. 하지만 한울에서는 그저 사고파는 게 아니라 마음을 주고받는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요.” 한울공동체 회원들이 이구동성으로 건네는 이야기다.


늘어가는 한울 가맹점 

복지관 내에 있는 북 카페 ‘소담’에서는 모든 차 값을 100퍼센트 한울로 받는다. 일종의 한울 가맹점인 셈인다. 한울공동체 안에서 요가 강사를 하던 선생님이 공동체의 매력에 푹 빠져 북 카페까지 오픈했다. 강남구 순환 도서가 아닌 경우는 도서 대여도 가능하다. 

다른 개인회원 중에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는 몇 명의 회원들도 가맹점 신청을 해왔다. 별무리 피아노, 선 헤어, 예쁜 실이야기 등 한울 가맹점인 사업장에서는 10-30퍼센트 정도의 비용을 한울로 지불할 수 있다. 회원들의 가계에 큰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공식적인 직업이 없어도 개인의 능력과 자원을 통해 지역화폐 ‘한울’의 거래가 가능하며 고용의 기회가 창출됩니다. ‘한울’을 통해서 물품과 서비스를 교환하게 되는 거죠. 지역 사회 내에서 한울이 순환, 교환됨에 따라 지역 경제가 활성화 되고 주민들은 공동체 연대 의식을 갖게 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상명 복지사의 설명이다. 

아주 작은 재능이라도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 재능은 자긍심의 발로가 될 수 있다. 그 희망은 존재의 이유가 되고, 지역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건강한 사회의 초석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미미한 존재감에 힘들어 하고 있다면, 작고 얇아지는 지갑에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면 한울공동체의 문을 살짝 열어보시길. 신뢰와 믿음을 주고받는 사람들의 훈훈한 사람 냄새는 다른 이의 삶에도 분명 희망찬 울림을 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지혜 리포터 angus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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