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8학원병’과 강남 집값 폭등

지역내일 2002-01-09 (수정 2002-01-10 오후 4:43:19)
대학교 후배인 A는 최근 일산의 40평대 아파트를 2억여원에 팔고 은행예금에 융자까지 합쳐 3억 8천만원에 서울 대치동 32평 짜리 낡은 아파트를 구입했다. ‘맹모삼천지교’에 따른 ‘8학원병’에 큰 빚을 지게 된 것이다.성남 분당에 사는 고교 동창 B도 최근 고민에 싸여 있다. 부인이 고교 1학년인 아들 교육을 위해 강남 대치동이나 도곡동으로 이사하자고 시위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간부인 그는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처지라 살림이 넉넉지는 않은데 부인 말대로 대치동으로 집을 옮기고 거액의 학원비를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돼 결심을 못하고 있다.
서울 강남에 살다 직장이 가까운 강북으로 주거지를 옮긴 대학 동창 C도 다시 강남 아파트로 이사할 생각이다. 집 근처에는 좋은 학원이 없어 명문 대학 진학이 걱정된다며 중학 3학년인 딸이 다시 강남으로 이사가자고 조르기 때문이다.

뒷북치기, 수박겉핥기 처방 비판받는 주택안정대책
물론 서울 강남 서초구는 교육여건이 좋은 소위 8학군지역으로 대한민국 어느 지역보다 집값이 비쌌던 것은 사실이다. 다른 지역 아파트값이 평당 3백-4백만원 할 때 이곳 아파트는 평당 1천만원을 넘은 것이 벌써 수년전이었다.
그러나 이곳 아파트값은 최근 올라도 너무 올랐다. 32평짜리 낡은 아파트값이 4억을 훨씬 넘는 곳이 수두룩하다. 20년 지난 13평 아파트가 4억을 넘는 경우까지 있다. 같은 평수 아파트 3-4채를 살 돈으로 이 지역 아파트 한 채를 겨우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이곳의 집값을 폭등케 한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군이 좋을뿐더러 명문 입시학원이 몰려 있어 너도 나도 강남으로 몰려든다고 입을 모은다. 이곳에서 좋은 중고교를 다니면서 일류 입시학원을 다녀야 명문대학에 갈 확률이 높기에 교육에 극성인 학부모들이 강남으로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강남지역에 일류대학에 진학을 많이 시키는 명문고교가 많아 ‘8학군병’이 생겼으나 최근에는 일류강사가 많은 유명학원이 많아 ‘8학원병’이라는 유행어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수도권 주택 공급과 강남지역 투기조사 등이 포함된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어느 정도 ‘과열진정’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응급조치일 뿐 교육적인 근본대책이 포함되지 않아 근원적인 치유책이 되기는 힘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뒷북만 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겉핥기 처방이라는 비판도 거센 것 같다.
이번 서울 강남지역 등의 집값 폭등은 지난해 대입수능이 어렵게 출제되면서 극성학부모들이 유명학원이 밀집해있는 대치동 등으로 이사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이 원인 중 하나라면 이에 걸맞는 교육대책이 나왔어야 마땅하다.
수도권 그린벨트 해제지역 11곳에 10만가구를 건설해 주택공급을 늘리겠다는 것도 중장기적인 서민 주거안정대책이지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서울 강남 등 아파트 값 폭등 대책이 되지는 못한다. 아파트값 폭등의 근본원인인 저금리나 재건축 아파트 투자, 그리고 강남학군과 학원 선호현상에 대한 치유책이 없는 한 이번 대책이 실효성이 있을지는 극히 의문이다.

공교육 붕괴, 사교육 만능 교육현실 타파 시급하다
결국 이번의 서울 강남지역 아파트값 폭등은 교육에 대한 국민의 잘못된 관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대책이 나오지 않는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에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최고’와 ‘1등’을 선호하며 강남으로 몰리는 일부 학부모들의 잘못된 교육관을 바로잡고 김대중 정부의 교육정책을 바로세우는 것이다. 학교폭력과 교실파괴 등 공교육 붕괴와 사교육만능의 잘못된 교육현실을 바로잡는 대책이 무엇보다 절실한 것이다.
진념 부총리는 부동산대책과 관련해 지방 고교평준화 정책이 강남집값 폭등의 한 원인이 됐음을 의식한 듯 ‘지방 고교평준화 재검토’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교평준화 재검토가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경기도 지역에 다시 고교입시를 부활한다고 강남지역 아파트값이 떨어지겠는가. 오히려 분당과 일산 지역 집값만 올릴 가능성이 크다.
이 보다는 교육부의 관료주의 혁파와 뿌리깊은 일류대 진학열 타파, 그리고 공교육정상화를 위한 획기적 교육투자가 시급한 것이 아닌가. 대한민국 부조리와 비리의 상당부분이 잘못된 교육에서 비롯된 것임을 의식해 차제에 교육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 어디에 살든 부모가 누구이든 자신의 능력이 있으면 이에 상응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혜택이 골고루 돌아가는 교육체제와 제도를 완비하는 것이 시급하다.

/ 정세용 경제담당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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