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랑 베풀어주신 우리 선생님 최고!

스승의 날 기획 - 강남 학부모들이 기억하는 고마운 선생님

지역내일 2012-05-14

 아무리 ‘사교육 1번지’라고 불리는 강남에 살면서 아이들이 서로 경쟁하듯 학원으로 몰리지만 그래도 학교 교육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는 없다. 그중에서도 아이들을 사랑으로 가르치고 이끌어주는 선생님들이야말로 공교육의 가치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한다. 엄마의 마음으로 초등학생 제자의 마음까지 보살피는 선생님, 청소년 제자들과 진심으로 소통하는 선생님…. 이런 선생님을 만날 수 있다는 건 아이나 부모 모두에게 큰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강남 학부모들이 자랑하는 ‘내 아이의 고마운 선생님’에 대해 들어보았다.


사랑으로 아이들을 변화시킨 천사 같은 선생님

고1인 아들이 학기 초부터 학교생활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을 볼 때마다 중3 담임선생님의 은혜를 떠올린다. 아들은 그 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내성적인 성격 탓에 친구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편이었다. 

선생님은 우선 학급신문을 만들자고 제안해 반 전체 아이들 모두가 참여하도록 했다. 사진과 기사 등을 담당할 아이들을 각각 정한 후 시험기간을 제외하고 거의 매달 학급신문을 만들었다. 신문에는 전반적인 학급소식과 더불어 칭찬해줄 친구나 기쁜 일이 있는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일부 학생들이 만드는 형식적인 신문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내용을 구성하고 완성하는 진정한 학급신문이었다. 특히 졸업하기 전 마지막 신문에는 선생님이 전체 학생들을 격려하기 위해 각자의 장점과 앞으로의 비전 등에 대해 적은 글이 실렸다. 물론 이 마지막 신문은 학생과 학부모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학급노트도 아이들을 변화시키는데 단단히 한몫했다. 학급노트에는 전체 아이들이 돌아가며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 친구나 선생님께 하고 싶은 말 등을 자유롭게 적도록 했다. 그러면 다시 선생님이 각 글에 대한 생각을 일일이 적어주셨다. 선생님은 이 학급노트를 통해 사회성이 다소 부족한 아이나 개성이 강한 아이까지 모두 상처 없이 보듬어 주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니 아이들도 따라서 자연스럽게 그런 친구들을 따돌리지 않고 잘 어울리게 됐고 다른 어떤 반보다 강한 결속력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의 역할에 따라 아이들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신 셈이다. 학부모들과 면담을 할 때에도 아이가 1, 2학년 때 어떤 일이 있었든지 편견 없이 대해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들까지 선생님을 좋아했다. 

다소 부족한 부분까지 장점으로 부각시킴으로써 선생님의 인정을 받은 아들은 자신감이 생겨 성격까지 적극적으로 변하는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얼굴도 예쁘고 마음까지 착한 천사 같은 선생님을 만난 건 정말 큰 행운이었다.


유학 후 학교 적응 도와준 선생님

사립초등학교에 다니다가 초등학교 4학년 때 1년간 캐나다에서 어학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딸을 집 근처에 있는 학교로 전학시켰다. 사립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동네 중학교에 배정을 받으면 아는 친구들이 거의 없을 것 같아서다.

하지만 낯선 학교에, 그것도 학년 초도 아닌 2학기에 합류해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너무 걱정스러웠다. 우려했던 대로 5학년 2학기라 이미 끼리끼리 친한 그룹이 형성돼있어서 아이가 쉽게 어울리기 어려웠다. 이전에 다니던 학교에서는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활동에 모두 참여할 정도로 적극적이고 주변에 늘 친구가 많았던 아이였는데.

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담임선생님이 젊고 성격도 좋아 반 전체 분위기가 너무 밝다는 거였다. 선생님은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큰언니나 큰누나처럼 아이들과 진심으로 소통하려고 애쓰셨다. 그러니 지각을 하거나 잘못을 하면 학급 돼지저금통에 100원~500원씩 넣기로 벌금 규칙을 정해 아이들 스스로 지킬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다. 저금통이 꽉 차면 한 번씩 방과 후에 과자 파티를 열기도 했다. 

사실 그동안 딸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정년퇴임을 앞 둔 할머니 선생님으로 시작해 계속 너무 교직 경력이 많은, 완고한 담임선생님만 경험했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언니 같은 담임선생님을 만나 바로 마음을 열게 됐다. 반 배정을 받고 처음 인사를 드린 순간부터 선생님은 환한 미소로 아이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리고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반에서 가장 모범이 되는 친구를 연결시켜주는 배려까지 해주셨다. 이렇게 선생님이 세세하게 신경을 써주니 아이가 금방 낯선 느낌을 털고 새로운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5학년이 끝날 무렵에는 학급문집을 제작해서 나눠주기도 하셨다. 1년간 반 아이들의 활동 자료를 하나하나 모아서 실었고 각 아이들의 특징과 별명, 소소한 학급 소식까지 담아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했다. 5학년 시기의 추억이 담긴 이 소중한 문집은 고등학생이 된 지금도 딸의 책꽂이에 그대로 꽂혀 있다.
유학 후 새로운 환경에서 아무런 문제없이 잘 적응할 수 있게 도와준 선생님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워킹맘 배려하고 아이에게 용기 준 선생님


해마다 이맘때면 딸과 함께 아이의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찾아간다. 우리 모녀가 매년 옛 스승을 찾아가는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올해 중학교 2학년이 된 딸이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늘 소극적이었던 딸이 뜬금없이 임원선거에 나간다며 고집을 부렸다. 친한 친구들이 후보에 나간다는 말을 듣고는 자신도 내심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엄마가 일을 하니까 임원은 절대 안된다”며 딸을 말렸다. 더군다나 일하는 엄마를 둔 아이들의 왕따설을 익히 들어왔었다. “너처럼 소심한 아이는 절대 회장이 될 수 없다”며 다시 한 번 쐐기를 박았다.
회장 선거 하루 전날, 담임선생님께서 후보에 나갈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지만 딸은 고개만 숙인 채 말없이 눈물만 흘렸던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본 선생님께서 자초지종을 들으신 후, 그날 저녁 집으로 전화를 걸어와 되레 나를 꾸짖으셨다. 

“어머니, 지수는 하고자 하는 욕구가 대단히 강한 아이에요. 이런 아이들은 작은 기회를 통해 크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일하는 엄마를 둔 아이는 임원 하지 말란 법 있나요? 저도 워킹맘인 걸요.”

선생님 덕분에 용기를 얻은 딸은 다음날 임원선거에 나가 당당히 회장에 뽑혔다. 임원 엄마들에게 “일하는 엄마를 배려해 달라”며 친히 당부해주신 선생님 덕에 나 역시 부담감을 벗고 딸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줄 수 있었다. 

그날이후 딸은 매 학년 임원을 맡아 리더십 강한 아이로 성장하고 있으며, 열심히 학업에 매진해 반에서도 줄곧 1등을 도맡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선생님께 보여드릴 임명장과 성적표를 챙기는 딸을 보며, 그동안 선생님께 못 다한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선생님, 존경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아픈 아이를 배려해주고 진심으로 함께 해준 고마운 선생님 


요즘 스승은 없고 교사만 있다고 했던가. 교권이 추락한 시대라지만 그래도 우리선생님들 중에는 충분히 존경받을 만한 선생님들이 있다. 큰 아이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정말이지 아이들에게 존경받는 선생님이었다. 나 또한 그 선생님을 떠올리면 이내 가슴이 따뜻해진다.


그날도 햇볕이 뜨거운 날이었다. 아이는 축구를 하다가 인대를 심하게 다쳐 깁스를 한 상태로 학교에 갔다. 혼자 걸을 수 없어서 아침에도 차로 데려다 주고, 하교 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리러 가기 위해 교문을 막 들어섰을 때였다. 아이가 휠체어를 타듯이 선생님의 바퀴 의자에 앉아 나오고 있었고 아이 주변을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아침 등굣길만 해도 아프다고 징징거리던 아이였는데 아이는 어느새 밝게 웃고 있었다. 이 광경에 나는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선생님이 자신을 위해 배려해 준 일들을 풀어놓았다. 선생님은 점심시간에 혼자 밥 먹으면 외롭다고 선생님 바퀴 의자에 태워서 식당까지 데려가셨다고 한다. 가는 도중에 엘리베이터가 마침 고장이라 선생님이 4층에서 1층까지 업고 내려갔고 체육시간에도 혼자 교실에 있으면 심심하다고 또 바퀴 의자에 태우고 나가 친구들이 운동하는 것을 보게 했다고 한다.


아이에게 이 이야기를 듣는 데 울컥해서 눈물이 났다. 내 자식이라도 50kg에 육박하는 아이를 업기가 겁이 나는 데 가냘픈 몸으로 업고 식당까지 데려다주시기까지 하다니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났다. 나중에 선생님께 힘들게 업어주시기까지 했냐고 말씀 드렸더니 “전 재미있었어요.”라고 밝고 태연하게 웃으셨다.


얼마 전에도 아픈 아이 손잡고 학교로 가는 데 아들 이름을 불러서 쳐다보니 바로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었다. 아픈 아이를 가리키며 어서 타라고 말씀하신다.


“아이와 제 가슴 깊이 살아있는 000선생님, 저와 우리 아이는 선생님을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선생님,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제자들을 자식처럼 가슴에 품다

얼마 전 딸아이의 중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이셨던 김 선생님을 우연히 길에서 만났다. 몇 마디 주고받진 않았지만 자신을 거쳐 간 제자에 대한 애정이 3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으로 느껴졌다. 선생님과 헤어진 후에도 하루 종일 3년 전 선생님 모습을 떠올리며 흐뭇함으로 미소 지었다. 

김 선생님은 40대 중반의 미술선생님이다. 아이로부터 담임선생님 담당 과목이 미술이라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우선 비주요 과목이라는 생각에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런데 김 선생님이 담임을 맡고 한 달도 되지 않아 실망은 희망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김 선생님은 강할 때는 강하고 부드러울 때는 한없이 부드러운 분이었다. 주로 반 전체를 대할 때는 강한 카리스마로 학급을 장악했고, 개별적으로 대할 때는 따뜻한 가슴으로 아이들을 품어 주었다. 

중학교 2학년은 사춘기인 아이들이 많아 천방지축이 극에 달한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선생님 말씀을 무시할 수 없었다.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가장 큰 비결은 솔선수범과 일관성이었다. 학교 일로 바쁘셔도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는 매일 학급에 한두 번씩 들러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말을 건넸다. 사소한 갈등에서 시작하는 아이들의 싸움도 방지하고 아이들과 수시로 접하면서 친해지기 위한 것이었다고 나중에 선생님은 설명해주셨다. 

청소시간에는 아주 급한 일이 없으시면 항상 학생들과 함께 청소를 하셨다. 청소시간에 아이들만 시키면 시간이 한없이 길어지고, 장난치다 사고도 나고, 항상 하는 아이들만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처음 몇 달만 학급 분위기 잡으려고 그러시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선생님의 솔선수범은 일 년 내내 이어졌다. 나중에 선생님은 “아이들과 함께 땀 흘리며 청소하고 나면 기분이 상쾌해져요”라고 웃으면서 기분 좋게 말씀하셨다.
선생님에 대한 감동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학급에 지각을 일삼고 학교도 오는 둥 마는 둥 하는 일명 문제 학생이 있었다. 부모는 아이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인지 감당할 수 없어서인지 기본적인 출석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대로 두면 출석일수가 모자라 유급될 학생이었다. 김 선생님은 남은 출석일수를 계산해 매일 출근길에 학생의 집에 들러 그 학생을  데리고 출근하셨다. 처음엔 선생님이 방문해도 일어나지도 않던 아이가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자 선생님의 과잉(?) 친절에 감동해선지 아니면 귀찮아선지 스스로 학교에 나왔다. 아이들이 3학년으로 진급할 때쯤 알려진 이 일화는 학부모들의 가슴을 울렸다. 

“지금도 아이들을 자식처럼 따뜻하게 품고 계실 김 선생님, 선생님 덕분에 아이들은 돈 주고 살 수 없는 값진 가치들을 배웠습니다.”


졸업 후에도 관심의 끈 놓지 않는 인생의 멘토

중학교 국어선생님이신 정 선생님은 학생들 사이에서 무섭기로 유명한 분이었다. 복도에 선생님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은 긴장감 자체였다. 4년 전엔 체벌이 금지되기 전이었고 선생님에 대해 학생들이 갖는 긴장감의 근원은 바로 ‘매’에 있었다. 정 선생님께 한두 번 맞지 않은 학생이 거의 없었고, 맞아 본 아이들은 그 뼈저린 아픔을 잘 알고 있었다. 희한한 것은 그렇게 아픈 매를 맞은 아이들이 기분나빠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매를 맞는 이유가 명확했던가, 매에 감정이 실리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정 선생님에게서 체벌의 기억만 있다면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선생님에게는 특유의 꼼꼼함과 관찰력이 있었다. 본인이 맡은 국어 과목뿐만 아니라 다른 과목에 대해서도 공부 방법을 알려주고 시험 때가 다가오면 잘 하고 있는지 점검도 했다. 스스로 학습방법을 터득하기 힘든 중학생 시기에 가장 효과적인 지도방법이었다고 생각된다. 또한 학생 개개인의 자질과 성향을 잘 파악하셨고 학부모 상담 시간에는 긴 시간을 할애해 자세히 상담해주셨다. 성적표가 나올 때는 학부모에게 장문의 편지를 써서 아이들의 상황을 전하기도 했다. 

아이는 중학교 3년 동안 정 선생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힘은 들었지만 고등학교에서 그리고 사회에 나가서도 필요한 자질의 한 부분을 정 선생님께서 심어주셨다고 생각한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아이들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가끔은 문자도 보내시고 1년에 한두 번은 졸업한 제자들을 불러 점심도 사주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시는 정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인생의 멘토로 기억될 것이다.


껍질을 깨고 나오도록 도와준 선생님


아들은 평소 반 아이들 앞에 나가서 인사도 제대로 못하는 소극적인 아이였다. 하지만 승부욕이 강한 아이였다. 그래서 모범생으로 보이다가도 남에게 지면 바로 공격적인 성향이 나타나곤 했다. 윷놀이나 공기놀이 같은 사소한 일에서도 승부욕을 드러냈다. 심지어는 모임의 점수를 낮추겠다며 일부러 준비물을 챙기지 않는 개구쟁이 친구의 팔을 물어버린 적도 있었다. 공격적인 성향이 나올 때는 친구들도 두려움에 떨었다.

왜 그럴까, 왜 아이가 내 맘처럼 자라주지 않는 걸까 속상해할 무렵 담임선생님은 아이의 마음속을 꿰뚫어 보셨다. 선생님과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아이에게 독이 되어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아이에게 다음 학기 임원으로 나서기를 적극 권했다. 그러면서 리더의 모습이 어떤 경우에 동료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지 끊임없이 설명하셨다. 학급 안에서 작은 일이라도 책임을 주어 아이들을 이끌어 보도록 기회를 주셨다.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며 아이는 무서운 리더보다는 부드러운 리더가 더 많은 동료의 공감을 이끌어 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아이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에 골몰하는 아이로 변했다. 아이를 지도하면서 선생님도 보람을 느끼시는 것 같았다. 거듭 감사의 인사를 드릴 때마다 선생님은 “뭘요, 이제부터 더 많은 기쁜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요”라고 하셨다.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고 밖으로 나타나는 행동만 나무랐다면 아이의 지금 모습은 어떻게 되었을까? 유명한 동네 폭군이 되었거나 왕따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의 마음을 읽고 성숙된 표현방법을 일러주신 덕분에 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릴 줄 알게 되었다. 생명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지만, 생명을 보람되고 온전하게 키우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다름 아닌 스승의 몫이라고 했던가. 내 아이는 참된 스승님 덕분에 적절한 시기에 온전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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