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 포기 ‘가격통제’로 출구 마련

아르헨, ‘인플레 악몽’ 재연 우려 … 벌써부터 사재기 조짐·시위 진정

지역내일 2002-01-06 (수정 2002-01-08 오후 4:27:50)
외환위기를 겪고 있는 아르헨티나에 다시 ‘인플레 악몽’이 재연될 우려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두알데 아르헨티나 새 정부가 경제위기 탈출을 위해 페소화를 평가절하하고 페소화와 달러화의 고정환율제(페그제)를 폐지키로 결정, 초인플레이션이 재연될 우려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고 6일 보도했다.
포스트는 이같은 우려를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경제 D데이(평가절하일)의 낙진에 직면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로 실었다.포스트는 초인플레이션에 대비해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사재기 등 위기를 앞두고 보이는 이상행동을 생생하게 다뤘다.
이 신문은 부에노스 아이레스 주민들이 창고형 슈퍼마켓에서 생필품과 가전제품을 사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을 보도했다. 31세의 한 음악교사는 회계사 남편과 함께 쇼핑카트에 커피와 쇠고기를 가득 실었다. 그는 그후에도 전구와 콜라를 계속 주워 담았다. 사람들은 컴퓨터와 스테레오, TV를 사기 위해 길게 줄지어 섰다.
이런 장면들은 10년전의 아르헨티나 상황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연 5000%의 물가상승률을 기록, 시민들은 황폐했으며 심리적인 안정감을 완전히 잃었다.
당시 외신들은 “시민들이 시장을 보기 위해 페소화를 가방에 넣고 다녀야 했으며, 페소화 가치가 벽지값보다 싸 페소화로 벽을 바르는 진풍경도 벌어졌다”고 초인플레이션의 심각성을 보도했다.
포스트는 이날 아르헨티나에서 전례없는 통화안정의 시대가 종말을 고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인플레이션 악몽이 되살아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반해 외국 전문가들은 페소화 평가절하가 적어도 수입품에서는 높은 가격을 의미하겠지만 여전한 경기침체 때문에 초인플레이션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주민들에게 인플레이션은 세대를 거쳐 내려오는 일종의 살아있는 신화처럼 여겨지고 있기 때문에 시민들이 심리적인 안정감을 잃을 경우 의외로 큰 파장으로 시장이 기능을 상실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까르푸 매장에서 950달러짜리 컴팩 컴퓨터를 사는데 예금을 몽땅 털어 부은 한 대학생은 “아버지께서 일과후에 가격이 어떻게 오를지 모르기 때문에 아침에 야채 사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고 말했다. 이는 벌써부느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민이 인플레 악몽에 빠져들기 시작하는 한 단면을 보여주는 예다.
인플레 악몽은 제조회사가 인플레를 가정해 선가격인상을 하는 바가지 요금 체계도 한몫 하고 있다. 의회 논의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아직 페소화가 평가절하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일부 제과업자들은 밀가루 가격 인상에 대비해 빵 가격을 30% 올려 책정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장기 경기침체로 44%가 극단적인 빈곤층이고, 유례없는 18.3%의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안을 찾아내지 못할 경우 아르헨티나는 다시 혹독한 동토의 세월을 겪을 수밖에 없다. 또 남미의 다른 국가로 그 파장이 번져 점차 세계경제가 상처를 입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아르헨티나 하원과 상원은 6일 잇따라 에두아르도 두알데 대통령에게 페소화 평가절하와 경제재건 등을 위해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는 긴급 경제복원 법안을 압도적으로 승인했다.
21항으로 구성된 이 법안은 두알데 대통령에게 △수십년간 지속돼온 페소화와 달러화 고정환율제(페그제) 폐지 △은행시스템 개혁 △가격 통제 △국내산업 및 고용시장 보호 등을 위한 특별 권한을 부여하는 것으로, 아르헨티나가 기존의 고정 환율제와 자유방임형 시장경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획기적인 경제체제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두알데 정부는 고정환율제 폐지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를 가격통제로 견제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사실상 자유시장 경제체제에서 후퇴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지역을 단일 경제 체체로 묶어내려는 미국의 간섭을 벗어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미국이 IMF(국제통화기금)를 앞세워 시장경제를 상당부분 포기하려는 아르헨티나의 ‘반란’을 견제하려 할 경우 두알데 정부는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예측조차 불가능한 상황으로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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