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어제 실시된 미얀마의 보궐선거는 공석이 된 상하 양원의원 43명과 지방의회 의원 2명, 도합 45명을 뽑는 보궐선거에 지나지 않지만 미얀마는 물론이고 아시아와 전 세계가 지대한 관심을 갖고 지켜 본 '역사적인' 선거였다.
민주주의의 아이콘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아시아의 넬슨 만델라'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제 거리투쟁을 접고 국회에 들어가 민주화를 실현하겠다는 결의로 출마한 상징성이 높은 선거였다. 그의 지지자들은 자정이 가까워 오자 아웅산 수치가 82%의 압도적인 지지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고 선언하며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공식 투표결과는 1주일 뒤에나 알려질 예정이지만 수치가 이끄는 민주국민동맹(NLD) 후보들도 다수 당선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반세기 동안 군사독재 하에서 살아온 미얀마에도 이제 국민이 선거로 국회의 대표를 뽑는 새로운 민주주의 시대가 열렸음을 전 세계에 알리는 선거였다.
수치 여사와 민주국민동맹 몇십명이 국회에 들어간다고 해서 권력의 판도가 달라지거나 미얀마가 당장 완전한 민주국가로 변신하는 것은 아니다. 군부가 만든 헌법에 따라 국회는 군 출신이 1/4을 차지하게 돼 있는 비민주적인 국민대표 기관이다. 수치의 민주국민동맹 후보가 목표 44명을 확보한다 해도 664명 국회의원의 몇분의 1밖에 안 된다.
그러나 오랜 군사독재 아래서 살아온 미얀마 국민이 처음으로 선거를 통해 정부 비판을 약속한 국민의 대표를 국회에 보낼 수 있게 됐다는 것은 수의 다과로 따질 수 없는 '엄숙한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극적인 변화는 2010년 3월 대통령에 취임한 테인세인 장군의 개혁정책이 없었으면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개혁파 장성에 속하는 테인세인 대통령은 취임 후 군사평의회를 폐지하고 언론검열을 완화했다. 정치범을 대거 석방했다. 국제사회가 불량국가로 취급하는 미얀마가 달라지고 있음을 내외에 알리는 신호였다.
민주주의의 아이콘, 투쟁장소를 국회로
미국과 유럽이 그 변화를 평가하기 시작했다. 작년 11월30일에 있었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역사적인' 미얀마 방문은 이것을 입증하는 대표적인 예의 하나였다. 파탄에 직면한 국가경제를 회생시키려면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을 벗어나는 것이 시급했다. 그래야 해외로부터 필요한 경제지원과 투자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테인세인은 이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아웅산 수치의 도움이 필수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특히 미국과 유럽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서 그렇다.
그래서 테인세인은 작년 11월7일 실시된 총선에 아웅산 수치의 민주국민동맹 참가를 제안했다. 그러나 수치 여사는 군부 출신이 권력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여당 연대개발연합당(USDP)이 부정선거를 다반사로 저지르고 있는 점을 지적하고 선거가 눈속임에 불과하다며 선거를 보이콧했다. 사방 국가들도 부정선거로 얼룩진 선거를 권력을 정당화하려는 연극에 불과하다고 비난했었다.
그러나 미얀마 인권 담당 유엔 특사인 토마스 오헤아 킨티나는 '2011년 선거 보이콧은 호기를 놓진 것이다. 미얀마가 더 새롭고 더 개방된 시대로 나아가고 있는 이때에 그런 일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아웅산 수치 진영 안에서도 선거 보이콧에 대한 후회가 전혀 없지는 않은 것 같다. 총선 이후 아웅산 수치와 민주국민동맹은 회의를 거듭한 끝에 앞으로 있을 보궐선거에는 참여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4월1일 선거는 그렇게 해서 참가하게 된 것이다.
방콕에 있는 망명언론매체인 주간 '이라와디'는 선거 전야 발행된 아웅산 수치가 선거에 참가하게 된 배경 설명 기사에서 "양측(정부와 NLD)은 장래의 이익을 위해 게임을 하고 있다. 정권의 의도는 분명하다. 정권은 미국이나 서방국가들이 미얀마에 대한 재제를 중지하고 경제를 활성화해줄 투자를 제공하도록 이들 국가들이 만족할 만큼 아웅산 수치에게 충분한 민주화를 허용하는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또 "향후 사면으로 석방될 수많은 민주화 활동가들이 당의 재건에 기여한다면 2015년 선거에서 본격적인 선거운동을 벌일 수 있게 될 것이고 군부의 지원을 받는 정부에 무시 못할 도전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궁극의 목표는 2015년 총선 승리
그러나 수치 여사와 그의 당이 의회에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군부 지지세력에 위압되거나 흡수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견해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라와디'는 현재의 상황은 아쉬운 쪽이 수치 쪽보다는 정부쪽으로 보고 있으며 따라서 보궐선거에서 테인세인 정부는 수치 쪽이 승리하기를 오히려 바라고 있다고 보았다. 정치적 동기가 무엇이든 아웅산 수치의 민주화 성공으로 미얀마의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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