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여는 책] 1896년, 민영환의 서방 견문록 ‘해천 추범’

지역내일 2012-04-13
허영섭 언론인

책과 함께/민영환 지음/조재곤 편역/1만2800원

민영환의 여정이 시작된 것은 혼란이 절정기에 이르렀던 바로 그 아관파천 직후의 일이다. 난국을 타개하려고 러시아와 비밀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그가 특명전권공사로 파견됐던 것이다. 따라서 민영환에게는 그때의 여행이 하나의 모험이고, 도전이었다.

"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고 기이한 꽃과 풀이 들판에 널렸으며 연못이 언덕을 둘렀는데 못 가운데는 분수대를 설치하였다. 새와 짐승 모양으로 만들어 입속에서 물을 토하는데 높이가 4~5길이나 되고 구슬발처럼 흩어져도 물이 조금도 끊이지 않는다…."

구한말인 1896년 고종의 명을 받들어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장도에 오른 민영환이 도중에 미국에 들러 뉴욕 센트럴파크를 방문하고 쓴 글이다.

그는 이집트에서 옮겨온 오벨리스크의 높이에 4000년 전의 유물이라는 설명을 듣고는 놀라움을 나타낸다.

그때 뉴욕 인구가 300만명이라는 사실에 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당시 그가 여행기로 남긴 '해천추범(海天秋帆)'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이다. 제목 자체가 '돛을 달고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다'라는 뜻이다.

윤치호와 역관 김득련을 대동하고 제물포항을 출발한 그는 상하이와 일본을 거쳐 태평양을 횡단해 밴쿠버에 상륙했다. 거기서 다시 기차로 갈아타고 뉴욕에 도착해 여장을 풀게 됐던 것이다.

중국 문물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만 알았던 그에게는 모든 구경거리가 신기하기만 했다. 그 뒤에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이르기까지 그의 일행은 영국과 네덜란드, 독일, 폴란드 등을 거치게 된다. 러시아 황제 대관식에 참석하고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톡을 거쳐 서울로 돌아왔으니, 200일이 넘는 긴 여정에 둘러본 나라만 해도 11개국에 이르렀다.

방문한 지역이 넓었던 만큼 각국의 문물과 풍토, 기후에 대한 묘사도 흥미롭다. 북유럽의 백야(白夜) 현상이나 끝없이 펼쳐진 미국의 넓은 초원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연해주 일대에서는 조선 이주민이 생활하는 모습도 살펴보게 된다. 기차와 전차, 전등과 같은 문명의 발명품도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러시아에서는 무성영화를 본 소감도 기록되어 있다.

조선이 바깥 세상에 대해 처음으로 빗장을 푼 계기가 1876년의 강화도 조약이었으니, 우리의 해외교류 역사가 막 시작되던 무렵이었다. 그것도 일본의 무력시위에 못이겨 겨우 문을 열었던 것이다. 그 뒤로도 미국, 영국, 독일, 러시아 등과 연이어 통상조약이 체결됐으나 어차피 교류는 제한적이었다.

이미 14세기부터 대양의 파도를 헤치며 해외시장을 개척했던 유럽 각국에 비해서는 해외환경 적응이 늦을 수밖에는 없었다. 이미 서양에서는 '신밧드의 모험'이나 '걸리버 여행기'가 청소년들의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을 때였다. 우리 기업들이 세계 곳곳에 진출해 있고 산악인들이 히말라야 등정 기록을 세우는 요즘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

더욱이 당시 조선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긴박한 상황이었다.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여세를 몰아 조선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고 있었으며, 이에 대해 조선 조정은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을 물리치려는(引俄拒日)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된 끝에 고종이 러시아 영사관으로 피신한 아관파천(俄館播遷)이 일어난 것은 그런 결과였다.

민영환의 여정이 시작된 것은 혼란이 절정기에 이르렀던 바로 그 아관파천 직후의 일이다. 난국을 타개하려고 러시아와 비밀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그가 특명전권공사로 파견됐던 것이다. 따라서 민영환에게는 그때의 여행이 하나의 모험이고, 도전이었다. 상투를 틀고 도포 차림으로 떠난 모험이라는 점에서 눈물겹기까지 하다.

그의 일행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제때에 도착하고도 정작 대관식에는 참석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하나의 역설적인 사례다. 관모를 벗지 않으면 식장에 들어갈 수 없다는 규정 때문이었다. 아직은 세상 물정에 어두워 우리의 제도만을 고집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세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요즘처럼 휴대폰과 신용카드만으로도 세계 어디서나 자고, 먹고, 연락하는 것이 손쉽게 해결되는 시절도 아니었다.

그가 러시아 체류기간 중 러시아를 부흥시킨 피요트르 대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나타냈던 것도 그런 때문이었을 것이다. 군대 제도에서부터 달력에 이르기까지 서유럽식으로 개편하고 나라를 재건한 그에게서 나름대로 조선의 미래를 그려 보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여건이 허락됐다면 러시아의 제도가 상당 부분 도입됐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결국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를 거둠으로써 을사조약(1905)이 맺어지고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되면서 러시아와의 외교관계도 단절되고 말았다. 민영환이 "한번 죽음으로 황은에 보답하고 우리 2000만 동포 형제에게 사죄하려 하노라"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로 순국의 길을 택한 것도 을사조약으로써였다.

그의 세계일주 기록이 비교적 덜 알려진 것도 순국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한 때문일 것이다.

그가 남긴 '해천추범'의 기개와 탐구정신은 지금의 우리들에게 적잖은 교훈이 되고 있다. 그의 해외여정이 그것으로 끝난 것만도 아니다.

그 이듬해에도 영국 빅토리아 여왕 즉위 60년을 축하하기 위해 유럽으로 떠나게 된다. 싱가포르와 인도, 수에즈 운하를 거치는 험난한 바닷길 여정이었다.

최근 국제무대에서 한국계 출신들이 눈부신 활약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그런 도전정신을 물려받은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연임에 성공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이어 다트머스 대학의 김용 총장이 다시 세계은행 총재 후보로 지명된 마당이다. 다트머스 대학의 총장으로 선출됐던 자체가 아이비리그 200년 역사에서 처음이라고 한다. 그 전에도 고(故) 이종욱 박사가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으로 활약한 바 있다.

물론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미 신라시대부터 장보고나 최치원, 혜초 등에서도 비슷한 기개를 엿볼 수가 있다. 아마 민영환이 지금 세상에 태어났더라도 반기문 사무총장이나 김용 총장에 못지 않게 세계무대를 종횡무진으로 누비며 활약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의 애국심을 떠올리면 우리의 정치도 지금처럼 혼탁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문으로 씌어진 이 책의 원본은 현재 독립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같이 전시된 그의 명함은 한글과 'Min Young Hwan'이라고 영어로 함께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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