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부터 시행되었던 강남구 내 학교 도서관 개방화 사업이 2011년 12월 31일자로 종료된다. 따라서 강남구의 28개 초등학교와 1개 중학교로 전달되던 지원금이 대폭 축소되고 운영 시간, 운영 대상, 운영 내용이 바뀌게 된다. 내년부터 달라지는 내용은 무엇이고 정책의 변화에 대한 학부모 및 지역 주민들의 반응은 어떤지 알아보았다.
학교 도서관 상호 대차 작업 중단
도서관 개방화 사업 이후 강남구 내 학교 도서관의 가장 큰 매력은 상호 대차 서비스였다. 인터넷이 되는 곳이면 강남구 내 어느 도서관에서든 책을 고르고 선택할 수 있었고 책 수령지를 인근 초등학교 도서관으로 지정해 대출 받을 수도 있었다. 재학생이나 형제자매, 지역 주민도 강남구 도서 대출증만 발급받으면 원하는 양서들을 마음껏 읽을 수 있었다. 저학년 엄마들의 경우 상태가 좋은 비싼 영어 원서를 아이들에게 마음껏 읽힐 수 있다는 점에서 강남구의 상호 대차 서비스를 무척 만족스러워하고 있었다. 작년까지 상호대차 서비스는 강남구 이동도서관에서도 가능했다. 버스에 사람 대신 책을 가득 싣고 다니는 이동도서관. 하지만 이 버스는 이미 연초에 자취를 감추었다. 강남구의 도서관 지원금이 줄어든 탓이다. 이제 강남구 내 학교 도서관을 통한 상호 대차 서비스는 중단된다. 구립 도서관이나 작은 도서관, 각 동사무소의 문고(이하 동문고) 등을 이용한 상호 대차 서비스만 남아 있게 되었다.
학교 도서관은 재학생만, 공공 도서관은 지역 주민이 이용
운영 시간과 근무하는 사서 인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학교별로 적게는 1,900만 원에서 많게는 6,000만 원까지 지급되던 강남구의 학교 도서관 지원금은 올해부터 일괄 1,500만 원으로 줄어든다. 동문고가 없는 대진초등학교와 영희초등학교 단 두 곳의 예산만 3,000만 원으로 책정되었다. 학교 입장에서는 서울시교육청에서 도서관 운영비를 지원해주지 않을 경우 도서관 운영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예산이 줄어 도서관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운영 시간도 줄어든다. 야간이나 주말은 아예 개방하지 않고, 평일에도 5시까지 운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재학생만 열람과 대출이 가능하다. 지역주민들은 구립 도서관, 시립 도서관, 작은 도서관, 동문고 등을 이용해야 한다.
또, 기존에 이용하던 상호 대차용 도서들은 구립 도서관 소속으로 일괄 정리된다. 주로 성인 책들이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구립 도서관으로 보내지는 실정이다. 일원화되어 있는 도서 대출증도 초등학생 따로, 지역 주민 따로 다시 발급받아야 한다. 도서관 이용자를 분리하여 초등학생들에게 위협이 될 수도 있는 상급학교 선배들과 어른들의 출입을 막는다는 얘기다.
강남구청의 입장
강남구청의 학교 도서관 지원금이 줄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원인은 서울시 재산세 공동과세 징수교부 기준 변경이다. “2009년 6,410억 원이던 일반회계 예산이 2010년 5,760억 원으로 줄고, 2011년에는 4,990억 원으로 감소하였습니다. 내년에도 일반 회계 예산이 금년보다 감소하여 재정난이 더욱 가중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강남구청 담당자의 변이다. 이로 인해 불가피하게 강남구 내 해당 학교장과의 협약 만료 기간인 2011년 12월 31일 자로 학교 도서관 개방화 위탁 협약을 종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강남구 내에 있는 모든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지역 주민의 출입을 불허하는 것은 아닙니다. 해당 학교 도서관 주변의 도서관 환경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습니다. 대진초등학교와 영희초등학교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일원동, 개포동 등 도서관 취약 지역도 파악하고 있습니다. 학교장의 재량에 따라 이용 시간 동안 지역 주민의 열람을 허용하거나 임대 형식으로 상호 대차 도서를 계속 보는 방법도 마련했습니다. 앞으로도 지역 주민 개방화를 위하여 강남교육지원청 및 학교와 지속적으로 협의토록 하겠습니다.” 무조건 지역 주민의 출입을 막는 건 아니라는 강남구청의 변이다.
도서관에 대한 학교장의 열린 마인드 필요
각 학교별로 도서관 이용 내용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아이들만이라도 상호 대차를 허용하자고 신청한 학교도 있고(15곳), 임대 형식으로 상호 대차 도서를 그대로 인수받은 학교도 있다. 오후 3시에서 5시까지 단 두 시간만이라도 지역 주민들의 열람 및 대출을 허용한 학교도 있다. 장서를 빼고 도서관 규모를 축소하는 학교가 있는가 하면, 보다 넉넉해진 공간을 활용해 아이들이 편하게 책을 볼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바꾸는 곳도 있다.
“맞벌이 부부에게 학교 도서관은 정말 든든한 곳이에요. 아이들이 친구들과 어울려 길에서 방황할 수도 있는데 여러 가지 책이 있는 도서관에 가 있으면 필요한 공부도 하고, 원하는 책도 보고, 뜻하지 않게 좋은 책을 만날 기회까지 얻게 되어 참 유용했어요. 학교 도서관이 야간에 열려 있으면 때때로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에 다니는 재미가 있어 정말 좋았는데 너무 아쉬워요.” 초등학교 2학년, 4학년 자녀를 둔 주부 김선화(43) 씨의 말이다.
학부모가 주축이 된 학교 도서관 활성화 모임 추진
도서관 이용 내용 변경 소식이 전해지자 강남 엄마들이 뿔났다. 누구보다 도서관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책 모임, 독서 모임의 엄마들이 주축이 되어 서명운동까지 하고 있다. 바자회를 통한 기금 모금, 어머니회 결성을 통한 도서도우미 모집 등 학교 도서관을 활성화시키려는 갖가지 계획들도 세워지고 있다. 학교장의 마음을 움직여보겠다며 지역주민 1,000여 명의 서명을 받은 어머니 모임도 있었다. ‘학교 지원금 예산 잘 짜기 모임’(가칭)을 추진하는 학부모들도 있다. 하지만 도서관에 대한 학교장의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학교 도서관은 갈수록 폐쇄될 것이 분명하다.
도서관에서 귀가가 늦은 부모를 기다리다 운명을 바꿀 단초를 발견하는 아이도 있을 수 있고, 부모와 함께 다녔던 도서관의 추억 덕분에 심성이 곧은 올바른 리더로 자랄 수 있는 아이도 있을지 모른다. 도서관은 그만큼 소중하다. 이제 아이들과 엄마들은 마음의 양식을 배불리 먹을 수 없게 되었다. 갑자기 운영 방법을 바꾸니 손에 쥐고 있던 것을 빼앗기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 것이다. 단 한 명이라도 원하는 아이가 있다면 문을 열어주는 도서관, 자꾸만 가고 싶어지는 도서관, 그런 학교 도서관을 갖고 싶고, 지키고 싶은 이때 학교장의 열린 마인드가 필요하다.
이지혜 리포터 angus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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