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욱 전 간행물윤리위원장
오늘 아침 '11월' 캘린더를 뜯었다. 2011년 달력은 이제 달랑 한 장이 남았다. 당연히, 가벼워야 할 터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무겁다. 뜯겨나간 11장보다 남은 달력 한 장의 무게가 더 나갈 리는 절대로 없을 것이다. 이 무게는 도대체 무엇일까? 오로지 마음의 탓일까?
사실 올 한해는 정말 버거웠다. 삶의 중압(重壓)이 이처럼 서민어깨를 누른 적이 없었다. 온갖 대란이 시리즈물처럼 연속으로 달려와 사람들 가슴을 후비고 팠다. "20대에 이미 실업자가 돼 돈도 직장도 없으니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이태백' '삼포세대'론부터 젊은이를 울렸다.
돈 없는 가장은 전세난에 몸부림쳤다. 하룻밤 자고나면 전세 값이 오르더니 요즘은 아파트매매가의 60%를 넘겼다. "전세 대신 월세로 바꾸자"는 집주인 강요에 세입자는 눈물을 머금고 '월부 빚두루마기'가 되었다. 그런데도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뒷북치기'거나 현실과 엇나간 '말잔치'뿐이었다.
물가는 고공행진을 계속했다. 전기 가스 교통비 등 공공요금의 대폭 인상도 목전까지 차올랐다. 알량한 된장찌개 하나에 8천원이 넘은지 오래고 밥값 한 푼이나마 아끼려 점심을 거르는 사람도 늘었다. 버는 돈은 쥐꼬리지만 나갈 돈은 황소몸통처럼 불어 가슴이 황량해졌다.
실업대란에 전세대란, 그리고 물가대란까지 첩첩이 겹치며 가계 빚도 가구당 5000만원을 넘어섰다. 2030세대의 부채증가율이 특히 가팔랐다. 주거비 교육비 등 진짜 생계를 위해 빌린 돈이 늘면서 이자에 또 이자가 붙어나가니 이들 세대에게 남은 건 오로지 분노와 좌절뿐이 됐다.
실업대란 전세대란에 물가대란
상황이 이러면 당연히, 정치가 달라졌어야했다. "넘어져 우는 이를 챙기며 아프고 쓰린 데를 보듬고 어루만져줘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위로받고 싶어 하는 국민 기대는 밑동부터 외면당했다.
'소통', '친 서민' 등 말만 그럴싸하게 앞세우던 대통령은 '공정'에 '공생'까지 보기 좋은 단어를 연례행사 치르듯 나열했지만 오히려 더 믿음만 잃었다. 측근 비리는 연이어 터지고 대통령 자신도 사저를 물색하며 "부동산 재테크에 탈세를 한 것 아니냐"라는 의혹에 휩싸였다.
그러면서도 공직인사에 제 사람 챙기기는 여전하고 형과 고향동네 사람들의 뒷바라지 역시 도를 넘어 국민 분노를 자아냈다. 오죽하면 전직 국회의장이 "이렇게 부패한 정권은 처음 봤다.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고 일갈했겠는가.
정당과 국회 역시 국민 바람에 부응하지 못했다. 이른바 보수 정객들은 가난하고 없는 이들의 시름엔 '좌파'라는 꼬리표를 달고 '친북'이니 '종북'이란 색깔 씌우기에 골몰했다. 진보정치인이란 사람들도 서민 삶의 질을 높여주는 어떤 대안도 제시 못한 채 그저 소리나 지르며 그룹 안 주도권 다툼에만 열중했다. 국회는 항용 싸우고 날치기하는 데만 힘을 쓸 뿐이었다.
누가 정부여당을 이끌고 야당 구심점은 누구며 나라의 진정한 어른은 누구인지 헷갈리는 상황이 반복됐다. 사실 경제대란의 융단폭격을 맞고 있는 서민들에게 그건 하나도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제 주장이 옳은지 따져달라는 투표에 몇 백억원을 쓰면서도, 아이들 밥값을 대는 건 인기영합주의라고 강변하는 정치놀음 따위에 오직 분노만 차곡차곡 쌓아갈 따름이었다. '안철수 현상'은 바로 그런 배경에서 나왔다. 국민의 깊은 분노와 좌절이 바탕에 깔렸기에 정치권은 쓰나미처럼 쓸려날 수밖에 없었다.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민주당이 무너졌고 본 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이 침몰했다. 그리고 이제 "정치에 나선다"는 말은 단 한마디도 한 적 없는 안철수 교수를 2012년 대선의 가장 강력한 후보로 떠올려놓았다.
정치 놀음에 분노만 차곡차곡 쌓여
엄청난 변화가 몰려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희망이 생겼을 법한데, 한 장 남은 '12월' 달력을 가벼이 볼 법도 한데 여전히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나는 그걸 수구의 완강한 버팀 탓이라고 본다. 국민이 원한 건 진정 국민을 위한 정치로의 변화인데 지금 정치권이 추구하는 변화는 다시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쪽으로 진행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인 것이다.
12월을 뜨겁게 달굴 여권의 '쇄신'이나 야권의 '통합'에 주인인 국민 뜻이 담기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통합이고 쇄신이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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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11월' 캘린더를 뜯었다. 2011년 달력은 이제 달랑 한 장이 남았다. 당연히, 가벼워야 할 터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무겁다. 뜯겨나간 11장보다 남은 달력 한 장의 무게가 더 나갈 리는 절대로 없을 것이다. 이 무게는 도대체 무엇일까? 오로지 마음의 탓일까?
사실 올 한해는 정말 버거웠다. 삶의 중압(重壓)이 이처럼 서민어깨를 누른 적이 없었다. 온갖 대란이 시리즈물처럼 연속으로 달려와 사람들 가슴을 후비고 팠다. "20대에 이미 실업자가 돼 돈도 직장도 없으니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이태백' '삼포세대'론부터 젊은이를 울렸다.
돈 없는 가장은 전세난에 몸부림쳤다. 하룻밤 자고나면 전세 값이 오르더니 요즘은 아파트매매가의 60%를 넘겼다. "전세 대신 월세로 바꾸자"는 집주인 강요에 세입자는 눈물을 머금고 '월부 빚두루마기'가 되었다. 그런데도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뒷북치기'거나 현실과 엇나간 '말잔치'뿐이었다.
물가는 고공행진을 계속했다. 전기 가스 교통비 등 공공요금의 대폭 인상도 목전까지 차올랐다. 알량한 된장찌개 하나에 8천원이 넘은지 오래고 밥값 한 푼이나마 아끼려 점심을 거르는 사람도 늘었다. 버는 돈은 쥐꼬리지만 나갈 돈은 황소몸통처럼 불어 가슴이 황량해졌다.
실업대란에 전세대란, 그리고 물가대란까지 첩첩이 겹치며 가계 빚도 가구당 5000만원을 넘어섰다. 2030세대의 부채증가율이 특히 가팔랐다. 주거비 교육비 등 진짜 생계를 위해 빌린 돈이 늘면서 이자에 또 이자가 붙어나가니 이들 세대에게 남은 건 오로지 분노와 좌절뿐이 됐다.
실업대란 전세대란에 물가대란
상황이 이러면 당연히, 정치가 달라졌어야했다. "넘어져 우는 이를 챙기며 아프고 쓰린 데를 보듬고 어루만져줘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위로받고 싶어 하는 국민 기대는 밑동부터 외면당했다.
'소통', '친 서민' 등 말만 그럴싸하게 앞세우던 대통령은 '공정'에 '공생'까지 보기 좋은 단어를 연례행사 치르듯 나열했지만 오히려 더 믿음만 잃었다. 측근 비리는 연이어 터지고 대통령 자신도 사저를 물색하며 "부동산 재테크에 탈세를 한 것 아니냐"라는 의혹에 휩싸였다.
그러면서도 공직인사에 제 사람 챙기기는 여전하고 형과 고향동네 사람들의 뒷바라지 역시 도를 넘어 국민 분노를 자아냈다. 오죽하면 전직 국회의장이 "이렇게 부패한 정권은 처음 봤다.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고 일갈했겠는가.
정당과 국회 역시 국민 바람에 부응하지 못했다. 이른바 보수 정객들은 가난하고 없는 이들의 시름엔 '좌파'라는 꼬리표를 달고 '친북'이니 '종북'이란 색깔 씌우기에 골몰했다. 진보정치인이란 사람들도 서민 삶의 질을 높여주는 어떤 대안도 제시 못한 채 그저 소리나 지르며 그룹 안 주도권 다툼에만 열중했다. 국회는 항용 싸우고 날치기하는 데만 힘을 쓸 뿐이었다.
누가 정부여당을 이끌고 야당 구심점은 누구며 나라의 진정한 어른은 누구인지 헷갈리는 상황이 반복됐다. 사실 경제대란의 융단폭격을 맞고 있는 서민들에게 그건 하나도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제 주장이 옳은지 따져달라는 투표에 몇 백억원을 쓰면서도, 아이들 밥값을 대는 건 인기영합주의라고 강변하는 정치놀음 따위에 오직 분노만 차곡차곡 쌓아갈 따름이었다. '안철수 현상'은 바로 그런 배경에서 나왔다. 국민의 깊은 분노와 좌절이 바탕에 깔렸기에 정치권은 쓰나미처럼 쓸려날 수밖에 없었다.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민주당이 무너졌고 본 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이 침몰했다. 그리고 이제 "정치에 나선다"는 말은 단 한마디도 한 적 없는 안철수 교수를 2012년 대선의 가장 강력한 후보로 떠올려놓았다.
정치 놀음에 분노만 차곡차곡 쌓여
엄청난 변화가 몰려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희망이 생겼을 법한데, 한 장 남은 '12월' 달력을 가벼이 볼 법도 한데 여전히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나는 그걸 수구의 완강한 버팀 탓이라고 본다. 국민이 원한 건 진정 국민을 위한 정치로의 변화인데 지금 정치권이 추구하는 변화는 다시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쪽으로 진행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인 것이다.
12월을 뜨겁게 달굴 여권의 '쇄신'이나 야권의 '통합'에 주인인 국민 뜻이 담기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통합이고 쇄신이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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