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박사 최서형의 ‘배 아픈 이야기’-2탄]

차라리 위를 잘라버리고 싶어요!

지역내일 2011-10-04 (수정 2011-10-04 오후 6:21:36)

추석 명절을 지낸 이후로 두통, 어지러움, 위장장애, 허리통증, 어깨통증 등의 증상을 호소하는 주부들이 필자의 병원에 많이들 찾아온다. 명절증후군이 아닌, 차라리 위를 잘라버리고 싶을 정도로 배가 아프다고 호소하는 그녀들은 가족들의 꾀병 환자 취급이 더 괴롭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속은 아파죽겠는데 확실한 병명 없으니 “꾀병 부리지 말라”는 타박만 20년(중간제목)
몇 년 전 만성위장장애와 만성편두통, 가슴 답답함과 통증으로 필자를 찾아온 46세의 주부가 있었다. 형제가 없었던 집안의 맏며느리인 그녀는 설, 추석 등 큰 명절과 제사까지 집안 대소사를 도맡아 해내야 했고, 20여년을 아내로 엄마로 며느리로 몸 바쳐 살아오면서 얻은 거라곤 ‘꾀병환자’라는 별명뿐이라고 하소연을 시작했다.




그녀는 처녀 때부터 소화가 안 되고, 잦은 위경련과 속쓰림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예민한 성격이라 소화가 안 되면 두통도 나타나 움직일 수조차 없어 하던 일도 여러 번 관둘 정도로 힘들었다고. 결혼해 전업주부로 살면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결혼 이후에는 성격 급한 남편에게 맞춰 사느라 내 성질은 참고 삭혀야 했기에 그것이 스트레스가 되어 위장병은 더욱 심해져만 갔다고 했다.




“제가 배가 아프다고 하면 남편은 혼자 뭘 그렇게 많이 먹어서 늘 배가 아프냐고 그만 좀 먹으라고 타박하죠, 아이들은 돼지 엄마라고 놀려대죠, 시댁에서는 왜 명절이나 제사 때만 되면 아프냐고 눈치 주죠, 정말 위를 잘라버리고 싶을 정도였어요.”라고 배가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대한민국에서 맏며느리로 살아야하는 고통은 그 무엇에도 견줄 수 없다고 토로했다.   
 
특히 명절 때만 되면 장보기부터 연휴 내내 친척들 삼시세끼 챙기는 것만으로도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보니 명절 전후 한 달 동안은 내내 배가 아프고, 두통에 시달렸다고 한다. 오히려 아픈 거 알아주지 않는 가족들한테 짜증을 부리게 되니 완전히 꾀병으로 신경질 부리는 이상한 사람 취급만 받게 되었다고 한다.




“한번은 혹시 위암은 아닐까 생각까지 들었어요. 혼자 내과병원을 찾아가 정밀검사를 받는데 20년 맏며느리로 살아온 설움이 복받쳐 올라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거예요. 그때는 정말 위암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을 정도로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어요.”




정밀검사 결과는 신경성 위염. 약은 먹었지만 그 후로도 그녀는 숨만 쉬어도 아픈 명치끝 통증은 멈추지 않았다. 두통도 심해져서 진통제를 3알 먹기도 했고, 밥 한 숟가락도 먹지 못해 영양실조와 어지럼까지 나타나 그야말로 죽고만 싶었다고 한다.




수많은 약으로만 버텨왔던 위장병의 숨은 실체는 ‘담적병’!(중간제목)
냉장고에는 양약, 한약, 위장에 좋다는 각종 민간약들로 가득 찼고 약에 의존하지 않고는 한 순간도 살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녀의 친구가 필자를 소개해 병원으로 찾아 왔다. 그녀의 진단 결과는 명절증후군도 꾀병도 아닌 위장 외벽이 담(痰)이라는 음식 노폐물 독소로 딱딱하게 굳어진 담적병(痰積病)이었다. 필자에게 10주 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숨쉬기도 힘들만큼 아프던 명치와 배꼽주변의 통증과 딱딱하던 것이 없어지기 시작했고, 두통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두통, 어지러움, 가슴 답답함, 허리통증, 어깨통증 등은 담적병에 의한 증상이었고 담적병이 치료되니 다른 동반 증상들도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렇게 10주 동안 치료를 하면서 그녀의 진료 상담은 인생 상담이 되어 필자와 맏며느리의 20년 배 아픈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추석명절이 지난 며칠 후 필자에게 편지 한통이 도착했다. 추석 때 신경 쓸 일이 많아 다시 두통과 소화 장애가 왔지만 진통제와 소화제 없이 음식 조절만으로 가라앉게 되었다며, 이젠 마음마저 편안하고 집에서도 아내와 엄마, 맏며느리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라는 그녀의 편지였다. 필자는 과식하지 않고 오랫동안 천천히 씹어 먹으면 재발 안 되니 이대로만 식습관을 들여서 지금의 편안함이 계속되기를 바란다고 답장을 보내줬다.




대한민국 남편들이여, 이제 아내가 배가 아프다고 하면 ‘그만 좀 먹지?’, ‘소화제나 먹어!’ 라는 말 대신에 ‘아내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라고 말해 보자. 그리고 가족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아내의 건강부터 먼저 챙겨봐 주자. 아내의 위장이 편안해야 가정이 편안하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이다.

글. 최서형 박사 (위담한방병원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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