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서예전람회 특선 수상작가 서정진씨

''마부작침''의 마음으로 붓을 잡는다

지역내일 2011-09-05
 비는 그치지 않았다. 그는 난감했다. 높은 습도에 화선지가 눅눅해져서 글씨를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서실에 난로를 피웠다. 온 몸에 비지땀이 흘렀지만 종이는 알맞게 건조해졌다. 그는 속옷 차림으로 붓을 들었다. 먹물을 찍어 매월당 김시습의 ''독좌(獨坐)''를 단숨에 써내려갔다. 서초문화원 한문서예반 수강생인 석롱(昔農) 서정진씨가 한국서가협회가 주최한 대한민국서예전람회에서 한문 행초서 부문에 작품 ''독좌''를 출품해 특선을 받았다.
 
 힘 있는 필체에 꿋꿋한 기상 담아
 해질 무렵, 서초문화원에서 만난 서정진씨는 반듯한 인상이었다. 얼핏 그의 작품 ''독좌''의 주인공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독좌''는 매월당의 시로 남에게 굽히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선비정신을 읊었다. 평소 마음에 담아두었던 글귀라고 한다. 글씨는 행초서로 유려하면서도 힘이 넘쳤다. 그는 행초서의 서성(書聖)이라 불리는 왕휘지의 필법자전을 참고해서 썼다. 
 공모전에 도전하려면 승부욕과 집착력을 갖춰야 한다. 큰 상을 탄 작가들은 대부분 인고의 세월을 견디어냈다. 그는 공모전을 위해 3개월 동안 화선지 200여장을 썼다. 비 때문에 화선지가 눅눅해질 때는 서실에 난로를 피웠다. 공모전 작품을 쓰는 일은 묵향 풍기는 고즈넉한 서실에서 선현의 말씀을 음미하며 한 자 한 자 써보는 취미생활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흥청흥청 써서 될 일이 아닌 것이다. 그는 "후회하지 않는 작품을 남기겠다"는 마음으로 썼다고 한다.
 
 서당에서 입문, 교직 떠난 뒤 붓으로 살아
 초등학교 시절, 부농이었던 아버지는 마을 훈장에게 쌀을 내면서 그를 맡겼다. 그는 서당에서 천자문과 명심보감, 소학을 배웠다. 서예도 그 때 배웠다. 신문지에 써가며 연습을 했다. 중학생이 되면서 서예는 그만두었지만 그 덕분에 국어선생에게 "너 글씨 잘 쓴다, 누구한테 배웠냐"라는 칭찬을 들었다. 회의 때는 학급일지를 도맡아 썼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뒤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5년째 되던 해에 일이 터졌다. 수학여행 때 교무주임이 비용의 일부를 유용한 것이다. 학생들에게 알려져 학교가 시끄러웠다. 3학년 담임을 맡았던 그는 부끄럽고 참담했다. 아버지나 마찬가지인 담임으로서 아이들의 분노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는 공동책임을 지겠다며 사표를 냈다.
 젊은 혈기에 일을 저지르고 사회로 나와 보니 할 일이 없었다. 그를 기다리는 건 경제적인 고난뿐이었다. 그는 다시 붓을 들었다. 인사동의 관록 있는 서예가한테 배우고 싶었으나 수강료가 비쌌다. 서당 시절의 필력이 남아있었기에 책을 보며 혼자 공부를 했다. 그렇게 쌓은 실력으로 서예학원의 강사가 되었다. 점차 공모전에도 눈을 떴다. 
 "참 힘들게 살았어요. 남들은 왜 그만 뒀냐고 하데요. 하지만 성격이 그런 걸 어떡하겠어요." 그러나 그는 자신의 고지식함을 싫어하진 않는다. 호를 석롱(昔農)으로 지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소 몰고 쟁기 끌며 농사짓던 옛 시절의 순수함을 사랑한다. "농사짓는 아버지를 보면서 깨달았어요. 농사는 정직한 일이고, 땅은 정직한 대상이라는 것을. 저도 그렇게 살려고 해요."
 
 도끼를 갈아 바늘 만드는 정성으로 글씨 써
 그에게 서예는 분신이나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글씨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있다. 공모전 출품을 위해 5~600장을 연습했는데 입선도 안 됐을 때였다. 도록을 펴 보니 큰 선생 밑에 적을 둔 문하생들이 줄줄이 당선 되었다. ''난 적을 두지 않아서 안 되었나''하는 생각에 억울한 심정이 되어 붓을 내던져버렸다.
 서예 때문에 아내와 다툴 때도 많다. 그게 밥벌이로는 부족한 일이다보니 생기는 일이다. 그럴 때면 10년 째 운영하는 서실로 간다. 아무리 기분이 언짢을 때라도 벼루를 닦고 먹을 갈다보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화가 많이 날 때면 인사동에 가서 붓 한 자루를 산다. 그러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 붓은 어떤 맛이 날까 기대가 된다. 좋은 벼루라도 하나 얻게 되면 세상에 부러운 게 없다.
 좋은 글귀를 선물해 달라고 부탁하자 그는 ''마부작침(磨斧作針)''을 들었다.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누구든 그런 정성으로 노력을 한다면 언젠가는 뜻을 이루지 않겠는가. 그는 늘 ''마부작침''을 가슴에 새기며 산다. ''오늘 죽더라도 후회 없게 멋진 작품 하나 남기자''라는 마음으로 붓을 잡는다.
 수상작품전시회는 예술의 전당 서울서예박물관 2층에서 열린다. 전시일정은 1부, 2부로 나누어 진행한다. 1부는 9월 15일~18일 오후 3시, 2부는 9월 19일~22일 오후 3시, 전시장 개장은 오전 11시에서 오후 8시까지다.
 
 
  獨坐 홀로 앉아
 梅月堂 매월당 김시습
 
 獨坐愁無語 홀로 근심에 잠겨 말없이 앉아 있으니
 人稀寂靜時 사람도 드물고 적막하여 고요하구나!
 嶺雲過屋背 고갯마루 구름은 지붕 위를 지나고
 峯雪映杉枝 산봉우리 눈빛이 삼나무 가지를 비춘다.
 歲旱溪常? 시절이 가물어 시내는 항상 마르고
 冬寒竹亦衰 겨울이 추우니 대나무 또한 쇠약하도다.
 虛邪過宿臘 사심을 비우고 섣달을 보내고 나면
 宜復探春詩 마땅히 봄 시를 다시 찾겠지.
 
 신운영 리포터 suns169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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