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장애나 중한 병에 걸리면 대개 다음의 두 가지로 반응한다. 첫째는 자신의 병이나 장애에 대한 깊은 이해나 현실적 판단 없이 무조건 맞서 싸워 이기려고 한다. 병이나 장애를 적의 농간으로 파악하고 어떻게든 물리쳐 없애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문제는 병에 따라서 자신의 내부로부터 기인하고 때로는 자신의 한 부분일 수도 있어 칼로 도려내듯 제거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정반대로 어떤 사람은 자신이 무력하여 병이 생겼다고 믿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여긴다. 그런 경우 회복마저도 주위 사람들에게 모두 책임을 돌려 버린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짜증내고 화내는 것뿐이다. 회복을 비롯한 다른 모든 것은 남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완전히 유아적으로 퇴행하여 전적으로 의존하려고 한다.
회복을 위한 바람직한 행동은 이 양극단이 아니다. 지나친 책임감으로 무턱대고 싸울 일도 아니고, 모든 회복의 책임을 남에게 돌릴 일도 아니다. 과음의 문제를 앓는 사람들 중에는 이 양극단만 왔다 갔다 하는 수가 많다. 당연히 회복 과정에 굴절이 많고 더디다.
장애나 병에 맞닥뜨려 가장 좋은 행동은 ‘도움요청행동’이다. 이는 자신이 먼저 도와줄 타인에게 조력을 청하여 힘을 합쳐 병을 극복하는 것이다. 평상시 건강하고 자신만만할지라도 어느 날 위기에 부닥쳐 생존이 위협받으면 달리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병이다.
알코올의존을 비롯하여 정신과 질환의 치료와 회복이 어려운 점은 바로 이 도움요청이 어렵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고 병들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여 소위 병식(病識)이 없는데다, 알았다 해도 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아 도움을 요청하기가 어렵다. 자신의 문제를 인정했다 해도 여전히 도움 요청이 힘들다. 지난날 오랜 과음으로 많은 실수와 실패를 저지른지라 자존감이 너무 떨어진 때문이다. 조그마한 것이라도 남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너무나 못난 노릇이라고 여긴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능력이다. 옆 사람들이 먼저 묻고 헤아려 도와주는 것은 아직 미숙한 아동의 경우이다. 힘들면 떳떳하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어야 성숙한 것이다. 음성의 꽃동네를 설립한 최규동 할아버지의 말은 이런 뜻에서 매우 의미심장하다. ‘구걸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다.’ 최악의 상태에 이른 알코올의존 환자가 자존심 때문에 끝내 도움을 거부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신 정호 (연세 원주의대 정신과 교수, 강원알코올상담센터 소장)
무료 상담: 강원알코올상담센터 748-5119 ww.alja.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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