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구 여성능력개발센터는 경력개발상담실을 운영한다. 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곳이다. 이용자는 주로 전업주부인 40~50대 여성들이지만 60대도 30퍼센트나 된다. 간혹 70대도 찾아온다. "돈 적다고 외면 말고 작은 일이라도 일단 시작해보라. 일이 자긍심을 주고 건강을 준다." 내담자들에게 이렇게 권유하는 이는 센터의 최고령 상담사인 전종숙(63)씨다. 일주일에 세 번이라도 갈 곳이 있어 감사하다는 그를 만나봤다.
박사 학위자도 일자리 찾아
60대 후반의 여성이 찾아왔다. 최고학부를 나와 젊어서는 잘 나갔다.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그는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일자리를 원했다. 아무 거라도 하겠다며 소개시켜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막상 일자리를 권하자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의 눈높이에 맞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강남구엔 고학력자들이 많아요. 대졸은 물론이고 대학원졸업자나 박사 출신도 찾아와요. 그렇지만 학력에 맞는 일자리를 찾기는 힘들어요. 처음에는 욕심 부리지 말고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일단 한 발을 떼고 나면 제자리걸음할 때와는 다른 세상이 보이거든요."
전씨는 꼭 일을 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찾아와야지 그렇지 않으면 실망만 하고 돌아가게 된다고 말한다. 센터는 내담자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진로정보나 교육 정보 등을 제공하면서 새 출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눈높이 낮추고 일할 준비 필요
센터를 찾아온 20대 후반의 어느 여성은 취업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자신이 일자리 찾기엔 늦은 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전씨는 이제 시작인데 무슨 소리냐며 그녀를 야단쳤다. 우선 자격증을 따라고 조언했다. 직업상담사가 괜찮으니까 한 번 알아봐라, 회사마다 채용이 의무라 유망하다. 인터넷은 기본이니 활용능력을 갖춰라. 두 번째 상담에서 내담자는 직업상담사 과정을 공부하겠다고 말했다.
창업을 하겠다는 40대 주부 역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주먹밥이나 샌드위치와 커피를 파는 테이크아웃점을 하고 싶다기에 센터에서 운영하는 관련프로그램을 안내해줬다. 교육을 받으면서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끼리 정보를 교환하면 길이 보일 것이다, 그 다음에는 업소에 취업해 실전훈련을 하라고 했더니 펄쩍 뛰었다. 남의 가게에서 일하기는 싫단다. 전씨는 창업에 필수과정이라며 설득했다.
전씨는 상담 경력 3년차다. 그는 해가 갈수록 내담자 연령이 높아진다고 말한다. "작년만 해도 60대가 별로 없었는데 올해는 많아졌어요." 경제적인 이유로 취업하러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란다. 늦은 나이의 취업에 과거의 학력은 도움이 되지 못한다. 궂은일은 싫다, 보수는 이 정도 받고 싶다는 자신만의 기준은 버리는 것이 좋다. 그는 "보수를 따지기보다는 작은 일이라도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60세 넘어 더 즐거운 하루
전씨는 강남구 여성능력개발센터에서 경력개발상담사로, 강남구 건강가정지원센터와 노원구 홍파복지원에서는 웃음치료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자녀교육에서 해방되는 50세쯤에 사회 활동에 나서는 이들이 많은데 비해 그는 좀 늦은 나이에 시작했다.
전업주부로 사는 동안 시어머니와 시할머니의 병수발을 차례차례 들었다. 그의 나이 51세 때 10년 동안 치매를 앓던 시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비로소 친구들을 만나고 문화센터를 나가며 여유를 찾았다. 백화점에 쇼핑을 다니고 멀리 일산까지 맛 집을 찾아다니며 몇 년 동안 느긋이 살았다. 그러나 목적 없는 생활은 공허했다.
2008년 60세 되던 해 우연히 여성능력개발센터의 홍보물을 읽었다. 능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설명에 마음이 끌렸다. 이 나이에 무얼 할 수 있을까 주저하는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용기를 내어 상담을 신청했다. 취업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었다. 봉사라도 하게 된다면 감사할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상담을 해보니 나이가 많아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자원봉사도 배움이 필요했다.
몇 달 후에 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고용지원센터에 취업희망프로그램이 있으니 등록해서 들어봐라. 그게 시작이었다. 그 다음엔 생애상담사과정을 들었다. 이어서 성취프로그램을 듣고 책도 사서 공부했다. 재미를 붙여 상담관련 프로그램을 10가지 정도 이수했다. 일 년 뒤 그는 여성능력개발센터의 경력개발상담사로 위촉되었다. 전업주부이후 처음으로 바깥일을 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보수가 없는 봉사였지만 그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여겼다. 봉사시간을 마일리지로 적립하면 센터의 프로그램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것도 괜찮았다.
웃음치료사 과정은 서초구 여성인력개발센터를 이용했다. 교육이 끝난 후 한국웃음협회에 배치돼 노인정에 봉사를 나갔다. 여기선 적은 액수지만 월급이 나왔다. 약간의 돈이라도 받으니 자긍심이 커졌다. 가장 즐거운 건 사람들이 자신을 기다려줄 때다. 홍파사회복지관에 가면 시각장애인들이 그의 발자국소리를 알아듣고 반가워한다. 웃음치료가 끝나면 어르신들이 그의 손을 잡고 좋은 말해주어 감사하다고 인사한다. 상담 받고 나가면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는 인사를 들을 때면 마음이 뿌듯하다.
백화점 들르고 친구 만나는 일이나 아니면 아파서 병원신세를 지는 생활이 전부일 수 있는 나이에 단 몇 시간이라도 뜻 있는 일을 할 수가 있으니 얼마나 행복하냐며 그가 웃었다. 일이 있어 건강도 유지되는 것 같단다. 그는 오늘도 자료를 찾고 강의를 준비하면서 일이 시작되기 전의 긴장과 설렘을 즐긴다. ''목적 있는 외출''은 그에겐 더없이 소중한 일상이다.
사진 김태헌 작가(스튜디오 세가)
신운영 리포터 suns1693@naver.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