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9일, 강남구립 논골노인복지관은 어버이날 기념행사인 ''孝-dream 데이''를 개최 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2부 행사인 ''실버가요제'' 본선대회. 어르신들과 주민들이 한데 어울려 축제한마당을 연출했던 결선대회는 예선을 통과한 여덟 명의 경쟁자가 참석해 열띤 경합을 벌였다. 촉촉하게 봄비가 내리던 날, 가수 최성수씨의 노래 ''동행''으로 당당히 대상을 차지한 최용훈(68)씨를 만나기 위해 강남구치매지원센터를 찾았다.
예순 이후에 맞이한 내 인생의 전성기
어르신들의 편안한 휴식처인 강남구치매지원센터의 ''늘푸른 카페''에 들어서니 한쪽에 자그마한 네일아트 부스가 눈에 띈다. 어르신들의 기분전환을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교대로 근무하는 네일아트 공간이다. 또한 그곳에는 건강과 운동 등에 관한 도서 200여권이 비치돼 있고, 원두커피, 카페라떼, 카푸치노, 녹차, 메밀차 등 다양한 음료를 무료로 맛볼 수 있다.
녹음이 우거진 선정릉을 바라보며 향긋한 커피를 즐기고 있을 때, 환한 미소의 그가 다가온다. SBP(Smile Brain Project)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서둘러 왔다는 그는 "항상 같이 다녀 잉꼬부부로 소문이 자자하다"며 옆에 서있는 아내를 소개한다. 뇌건강클리닉의 하나인 ''나의 뇌를 웃게 하자(SBP)'' 과정은 강남구치매지원센터가 서울 삼성병원과 연계해 진행 중인 프로그램이다. 최용훈씨는 "이 근처에 살고 있어 아내와 함께 유익한 강좌도 듣고, 한 달에 한번 열리는 음악회에도 참석한다"며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살고 있다고 즐거워했다.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삶의 기쁨
그가 예순 살이 되었을 때, 이제는 일선에서 물러나 그동안 못했던 일들을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고 유럽여행을 계획했다. 그런데 아내의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아내는 지금까지도 허리 때문에 고생하고 있지만 차츰 좋아지고 있다"며 활기찬 노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꾸준히 함으로써 건강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실버가요제''에 나가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복지관 관계자가 대회의 활성화를 위해 합창단에서도 출전해야 한다고 권유해 별 생각 없이 신청했던 것. "30여명의 경쟁자들과 예선을 치르는데 노래를 잘 부르시는 분들이 많아 다소 긴장했었다"며 예선에서는 ''번지 없는 주막''을, 본선에서는 ''동행''을 불렀다고 한다.
"원래부터 노래를 좋아하고 잘 부르는 집안이었어요. 작은 누님은 꽤 유명한 성악가셨는데 지금은 저랑 같이 봉사활동에만 전념하고 계십니다." 집안 내력 때문인지 고등학교 시절에는 부산 MBC 노래자랑에 나가 큰상을 받기도 했단다. 부산 초량동에서 태어난 최용훈씨는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으로 피난 온 피난민들이 최씨 집 방마다 가득 찼고, 넓은 안마당에도 사람들로 북적였던 기억이 있다. 여러 사업체를 아우르며 그렇게 번창하던 아버지의 사업이 갑자기 기울면서 1970년도 말에는 온 가족이 부산에서 살기가 어려워 서울로 상경하는 등 아픈 시련을 겪기도 했다.
''논골 합창단''에서 음악의 꿈 실현
강남구의 유일한 남성 실버합창단인 ''논골합창단''에서 반장 겸 총무를 맡고 있는 최용훈씨는 한때는 가수가 꿈이었다고 고백한다. 순수 아마추어 남성4부 합창단인 ''논골합창단''의 단원은 제1테너 5명과 제2테너 10명, 바리톤 5명, 베이스 8명 등으로 구성돼 있다. 그는 한국가곡, 남성 오페라합창곡, 한국민요, 칸초네 등 다양한 형식의 노래를 접하면서 음악에 대한 못다 이룬 꿈을 실현하고 있다.
또한 그는 강남구자원봉사센터의 ''싱글벙글 자원봉사단''에서 단장으로 활동 중이다. 뮤지션으로 구성된 이 봉사단은 색소폰 연주자 3명, 아코디언 1명, 여자가수 2명, 남자가수 1명 등이다. 큰 딸은 결혼해서 경기도 분당에 살고, 부부는 직장에 다니는 두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노래를 통해 제2의 인생을 열었고, 젊음도 되찾았다"는 그는 노래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간다고 한다. 바로 재능 나눔과 베푸는 삶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그는 용산구에서 제법 규모 있는 약품회사를 운영한다. 세계적인 석학 아놀드 토인비는 "인간의 정신력은 무한해 집중하면 육체적인 한계 초월은 물론 시간과 공간도 초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을 모토로, 매순간마다 최선을 다한다는 최용훈씨는 아침이면 회사에 들러 회의를 주관하고 하루일과를 체크한다. "자신이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일을 늦게나마 시작하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행복한 노년을 위한 지름길"이라며 활짝 웃는 그의 미소가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사진 김태헌 작가(스튜디오 세가)
김선미 리포터 srakim20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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