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4일, 서초구민회관에서는 지역 어르신 및 주민 1,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대적인 어버이날 행사가 진행됐다. 그 중에서도 이날 행사의 백미였던 ''실버가요제''는 예선을 거쳐 선발된 15팀이 참가해 그동안 갈고닦은 끼와 노래실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대상을 차지한 우수동(66)씨를 만나 그의 노래에 얽힌 사연과 인생이야기를 들어봤다.
노인복지관에서 시작한 제2의 인생
"수상 이후로 갑자기 유명인사가 된 기분이에요. 요즘 지인들과 식사도 하고 술도 한잔 나누면서 축하받느라 여념이 없답니다." 방배노인종합복지관에서 만난 우수동씨는 만면에 함박웃음을 띤 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대상을 타게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는 그는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며 겸손해한다.
30년 동안 서울시청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했던 우수동씨는 2006년 6월에 정년퇴임을 했다. 그는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통해 삶의 보람과 가치를 느낄 수 있는데 막상 직장을 떠나니 갑자기 쓸모없는 인간으로 전락해버린 느낌이어서 한동안 많이 힘들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정년퇴직을 했을 때부터 노인이라고 불리는 나이까지 과연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니 암담하고 우울했다는 것. 그러던 중 새로 개관한 방배노인종합복지관에 시니어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장 평소 관심이 많았던 기타반과 가곡교실에 등록했다. 고등학교 때 처음 기타를 배웠다는 그는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 고향의 동네 노래자랑대회에서 두 번이나 큰 상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며 그 후 노래는 그의 가슴속에 오랫동안 묻어둔 막연한 꿈같은 것이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은 성격 탓에 성인이 되어서는 아예 그 꿈을 접고 살았다고 한다.
가수 오기택 노래 ''우중의 여인''으로 대상 수상
기타반에서 회원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어버이날 행사 중에 ''실버가요제'' 예선대회가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회원 중 한분이 저도 모르게 제 이름을 올려놓았던 거예요. 어느 날 행사 관계자가 참가곡명이 뭐냐고 물어 와서 저도 깜짝 놀랐답니다."
그는 얼떨결에 예선을 치렀고 15팀이 출전하는 본선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가 부른 노래는 가수 오기택씨가 부른 ''우중의 여인''이다. 노래방에서 가사를 보면서 불렀던 곡이었는데 우선 가사를 외워야하니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본선대회 때는 가사만 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큰상을 타게 돼 뜻밖이라며 연신 행복해한다. 노래말고도 운동도 좋아한다. 특히 탁구는 프로급이다.
시청에 근무할 때에는 서울시 직장대항 탁구대회에서 매번 좋은 성적으로 우승을 따냈고, 퇴임 후에는 서울시장배 실버탁구대회 등 일 년이면 서너 차례 열리는 각종 대회에 참가해 탁월한 기량을 과시했다. 현재 그는 서초구내 탁구장에도 매일 나가 시니어 수강생들에게 무료레슨을 해주고 있다. 충남 공주가 고향인 우수동씨는 건국대 농과대학을 졸업했다. 농업과 축산업을 하셨던 부모님을 보면서 당연히 가업을 이어 받아야겠다고 생각해 선택한 학과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힘든 농사일보다는 더 보람 있고 편안한 생활을 권유하셨다고 한다.
노래를 통한 아름다운 재능 기부
군 제대 후 공무원시험을 거쳐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서울시청의 특별감사반에서 오랫동안 일했어요. 조금이라도 부정이나 비리가 있어선 안 되는 자리였지요. 나름대로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았기 때문인지 10년이 넘게 근무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그는 융통성 없고 고지식한 자신의 성격 때문에 가족이나 주위사람들을 힘들게 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최근에야 하게 되었다며 미안해한다. 그와 아내는 방배노인종합복지관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잉꼬부부다. 취미가 비슷해 탁구나 가곡교실에도 함께 가고, 교회의 성가대에서도 같이 활동하기 때문이다.
"직업에서의 은퇴가 영원한 은퇴는 아닙니다. 활기찬 노년을 위해서는 그때마다 필요한 것을 배우려는 의지와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지요." 그는 배움에 대한 열정만 있다면 기회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에게는 마흔 넘어 얻은 늦둥이 외동딸이 있다. 이화여대 대학원에 다니는 딸아이 역시 아버지를 똑 닮았다. 뜻이 통하는 친구들과 대학로에 나가 공연을 펼치고 그런 가운데 행복감과 즐거움을 얻는다는 것이다. 랩을 수준급으로 부르는 딸아이와 가족음악회 형식으로 CD를 내고 싶다는 우수동씨는 어린이집이나 양로원 등을 방문해 노래를 통한 봉사활동을 펼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세상을 위해 나누어야 할 것이 어디 물질뿐이겠는가, 각자 지니고 있는 재능을 세상 곳곳에 나눠주는 것도 아름다운 기부의 한 방법이다"라며 활짝 웃는 그의 얼굴이 5월의 햇살 속에서 밝게 빛났다.
사진 김태헌 작가(스튜디오 세가)
김선미 리포터 srakim2002@hanmail.net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