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다니는 후배한테서 전화를 받았다. "선배님! 선배님 학교는 중간고사 언제 봐요?" "뜬금없이 시험은 왜?" "우리 애가 다니는 학교는 중간고사를 6일부터 11일까지 본다고 해서…" 달력을 보았다. 5일 어린이날 쉬는 날, 8일 어버이날 일요일, 10일 석가탄신일 쉬는 날…. "와! 아들이 다니는 학교 알만하네! 공부 많이 시키는 좋은 학교네!" "지금 염장 지르는 거 아시죠! 회사는 5일부터 10일까지 연휴라 아이 데리고 가까운 동남아라도 다녀올까 했는데…"
가정의 달, 중간고사, 그리고 학교
가정의 달 5월! 온 산야가 연두와 녹색으로 물들고 띄엄띄엄 쉬는 날이 있어 좋다. 올해는 많은 회사들이 5월 6일을 쉬는 날로 정해 5일부터 8일까지 4일을 연휴로 만들었다. 씀씀이가 큰 기업은 9일까지 쉬게 해 석가탄신일까지 장장 6일 연휴다. 4~6일의 황금연휴! 유럽 여행을 다녀오겠다는 젊은이의 인터뷰가 뉴스에 나오기도 했다.
시험 기간을 정하는 것은 학교 재량이다. 수업일수를 고려하여 4월 말에서 5월 초에 실시하는데, 대부분의 학교는 4월말에 중간고사를 편성한다. 그리고 5월 7일과 9일을 재량 휴일로 정하여 4일정도 단기 방학을 준다. 가정의 달에 부모님과 함께하는 봉사활동도 좋고, 아니면 체험학습을 떠나도 좋고, 고3 수험생이라면 뒤쳐지는 과목을 집중적으로 공부해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라는 뜻도 담겨 있다.
어떤 학교는 연휴기간에도 긴장을 늦추지 말고 더 독하게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학교는 다소 비인간적이긴 하지만 의도적으로 5월초 쉬는 날이 많을 때 중간고사를 보기도 한다. 한 문제 때문에 인생이 바뀌는 입시 현실을 생각한다면 학교가 앞장서서 학생을 독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990년대에는 학부모들이 앞장서서 연휴를 끼고 시험을 보자고 학교에 요청하기도 했다. 지금도 일부 최상위권 학생들은 그렇게 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한다. 중간고사 시험 기간만 봐도 어떤 교육철학을 가지고 있는 학교인지 눈에 빤히 보인다.
그런 학교들 속에 있는 학생들
몇 년 전에 전국 석차 10등 안에 드는 학생을 가르친 적이 있다. 그 학생은 모르는 것을 알아 가는 공부가 참 재미있다고 했다. 예습을 통하여 모르는 것을 모아 두었다가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라 하나하나 이해하고, 암기하면서 노트에 정리하다보면 한 시간이 어떻게 지나는지 모른다고 했다. 이렇게 수업시간에 정리까지 완전히 끝냈으니 문제집을 바로 풀 수도 있고,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준비도 일주일이면 충분하단다.
이러다보니 공부로 스트레스를 받은 적은 없지만 하고 싶은 음악을 못해서 불편하다고 했다. 수능에서 선택하지 않은 과목도 항상 1등을 했다. 학기 중에는 학교 공부 따라가기도 힘들다며 학원에 다니지 않았다. 그의 부모님도 아이한테 쿨한 편이었다.
고2 때는 아버지의 중국 출장길에 데려가서 한 달 동안 중국어 공부만 시켰단다. 그러다 막판 수능에서 몇 문제를 더 틀려 학교에서도 1등을 놓쳤다. 그러나 상담을 받는 그의 태도는 너무 담담했다. 실수를 인정한다면서 나군에서 서울대 의대를 포기하고 다른 대학 의대에 지원하겠다고 했다. 능력이나 실력이 너무 아까운 학생이라 재수도 고려해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지금 그 대학을 재미있게 잘 다니고 있다. 세상을 거스르지 않고 크게 욕심 내지 않으니 늘 주변에 친구가 모이는 학생이다.
또 다른 학생은 지는 것을 너무 싫어했다. 중학교 때 여학생이 수행 평가에서 자신을 누르자 화가 나서 교과 담당 선생님께 찾아가 내가 저 여학생보다 못한 게 뭐냐며 대들어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1등이나 2등이나 내신 성적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는데 2등 된 것에 불만이 컷던 모양이다. 과학경시 준비 때문에 수학여행도 불참할 정도였다.
내신 성적 관리를 위해 과학고를 포기하고 집 옆에 있는 일반고를 배정 받을 정도였다. 과고, 외고, 자사고로 알맹이가 빠진 일반고에서 전 과목 일등을 휩쓰는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이 정도 되는 학생들은 전국에 널려 있다. 수시 전형에서 서울대 의대에 불합격했고, 정시 모집에서도 재수생에게 밀려 낙방했다. 가군에서 붙은 의대에 두어 달 다니다가 재수를 시작했고, 그가 원하던 서울대 의대를 삼수 끝에 합격했다. 삼수를 하는 동안 Top 5안에 드는 의대 합격증을 모두 받았단다. 그 학생은 자존심이 대단한 학생이었고 공부도 잘하는 학생이었지만, 뒤에 있는 그림자가 너무 뚜렷하게 맺히는 학생이다.
그 속에 끼어 있는 선생님들
같은 하늘아래 같은 땅덩어리 위에서 살고 있는데, 어떤 지역은 다달이 수능 모의고사를 보면서 학생들을 달달 볶고 있고, 어떤 지역은 지금까지 수능 모의고사는 한 번도 안보고 중간고사로만 끝낸 곳도 있다.
중간고사도 일부러 공휴일을 끼워 빡빡하게 보는 학교도 있고, 4월 말에 후딱 끝내고 편하게 연휴를 즐기는 학교도 있다. 그 속에서 어떤 학생은 독한 공부로 자기 욕심을 꽉 채우며, 어떤 학생은 흐름을 거역하지 않고 여지를 남기며 공부한다. 이 소용돌이의 중심에 선생님들이 끼어 있다. 하루에도 수십 통씩 날라 오는 공문과 교내 네트워크에서 불러대는 각종 메시지를 온 몸으로 막아내고, 중간고사 후유증이 아직 덜 빠진 제자들 앞에서 목소리를 가다듬고 우리나라의 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이것이 옳고 저것은 그르다는 시대는 이제 한참 멀리 지나온 것 같다. 학교도 학생도 선생님도 그런 시대의 ''스승의 날''을 맞이하고 있다.
신동원(휘문고, 전국학부모지원단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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