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고의

지역내일 2011-04-07 (수정 2011-04-07 오후 12:07:49)

사람을 폭행하거나 상해를 가하는 경우에는 단순히 상해죄나 폭행치상죄가 성립한다. 사람을 죽이려는 생각으로 흉기를 휘둘렀으나 상처만 난 경우에는 살인미수죄가 된다. 살인의 고의가 있는지 여부에 따라 살인미수죄와 상해죄를 구별한다.
축산물 유통업체 종업원이 냉장고 사용 문제로 이웃 업체 사장과 다투다가 축산물 해체에 쓰는 작업용 도끼를 휘둘러 2주의 상해를 입힌 사건이 있었다. 검찰에서는 살인미수죄로 기소하였다. 살인미수로 기소한 이유는 도끼로 내리친 것은 치명적인 상처를 낼 수 있고 피해자가 공격을 피했기에 망정이지 죽을 뻔 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또 한 차례 도끼를 휘두른 뒤에도 도끼를 들고 수백 미터를 쫒아간 것을 보면 살의의 고의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국민참여재판에 의하여 심리되었다. 7명의 국민 배심원들이 신중히 증인들의 증언을 들었다. 배심원 전원은 피고인에게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배심원들은 가해자가 도끼날로 내리쳤는지 뒷부분으로 쳤는지 당시 상황을 놓고 목격자들의 진술이 엇갈리고, 20년 간 사용한 작업용 도끼를 살인 의도를 갖고 휘둘렀다면 가벼운 상처로 그치기 어려웠을 거라고 판단하여 살인의 고의는 없었다고 판단하였다.
검찰에서는 1심 판결에 대하여 항소하였다. 항소심에서는 배심원들의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하면서 결론을 바꾸었다. 살인미수로 인정한 이유는 검찰의 의견과 같았다.
이에 대하여 피고인이 다시 대법원에 상고하였다. 대법원은 국민배심원 전원이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고 판단하여 살인미수죄가 되지 않는다고 무죄 판단을 하였다면 항소심에서 새로운 증거 없이 이를 뒤집을 수 없다고 판결하였다.
사실인정이 올바른 것인지는 1, 2심의 전권사항이다. 대법원에서는 사실인정의 문제는 다루지 않는다. 그런데 국민참여재판에서 인정한 사실을 새로운 증거 조사 없이 뒤집은 항소심의 사실 판단은 잘못되었다고 판결한 것이다.
살인죄에는 계획적 살인과 우발적 살인이 있다. 살인의 의도에는 ‘죽어도 좋다. 죽을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포함된다. 도끼를 휘두르면서 혹시라도 머리에 치명적 상처가 나서 죽을 수도 있다. 죽어도 좋다는 생각을 했다면 살인의 고의가 있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는 배심원들은 가해자가 상대방을 죽이려고 하거나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까지 하지 않고 단순히 상대방에게 상해를 가할 의도가 있었을 뿐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이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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