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한 봄볕이 마음을 흔드는 3월, ''싫증나면 바꾸고 싶은 것이 남편과 가구다''라는 서양 속담처럼 갑자기 빛바랜 집안의 커튼이나 가구, 작은 소품 등이 지겹게 느껴질 때가 있다. 게다가 직장을 그만 둔 은퇴한 남편이 하루 종일 곁에 붙어 앉아 "밥 달라"고 조른다면 더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남들은 일선에서 물러나야 할 나이에 새로운 사업에 도전, 프랑스 가구 ''고띠에 한국 1호점'' 프랜차이즈 독점권을 따 낸 전기영(58) 대표를 만나 그의 인생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늦게 얻은 아들이 행복의 원천
프랑스 가구,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렌다. 이는 베르사유 궁전의 수 백 개 방에 비치된 금과 은으로 장식된 가구들, 왕관모양의 차양이 달린 의자, 붉은 빛깔의 벨벳 벽걸이, 대형 샹들리에, 프레스코화로 덮여 있는 천정 등이 자연스레 연상되기 때문일까.
그런데 서초구 방배동 ''고띠에'' 쇼룸에서 만난 전 대표의 첫인상은 그런 환상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이효리표'' 눈웃음을 날리며 소탈한 모습으로 사업에 대한 얘기를 풀어나가는 그와 마주하니 오래된 이웃을 대하듯 금세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말에 "제 아이가 지금 열 세 살이어서 그놈 눈높이에 맞추다보니 이렇게 되었지요"라며 호탕하게 웃는다.
결혼 16년 만에 천신만고 끝에 얻은 아들이라 생각만 해도 즐겁고 감사하다는 전 대표는 "아들 녀석과 놀아주고 시간 보내느라 그렇게 좋아하던 친구들과도 잠시 소원했던 적이 있었다"고 말한다. 제약회사에 다닐 때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5살 연하의 부인과는 첫눈에 반해 결혼하는 날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만났다고 한다. 하지만 결혼 후 아이가 생기지 않아 불임에 관한 시도는 안 해 본 것이 없을 정도라고. "저는 괜찮았는데 아내가 무척 힘들어 했어요. 형제라고는 형님하고 저 딱 둘뿐인데 형님한테도 딸이 하나여서 부모님께서 은근히 손자를 기다리셨거든요." 거의 포기하고 살았는데 기도의 힘이었는지 하나님께서 뒤늦게 선물을 주셨다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제약회사에서 이태리가구사업으로
그는 1953년생으로, 경기고등학교와 고려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그 후 미국 텍사스 주의 한 주립대학에서 MBA를 마치고 국내에 들어와 유명 제약회사에 입사했다. 5년 정도 근무하다가 외국계 구강약품 전문회사의 국내법인 대표로 자리를 옮겨 10여 년 동안 열심히 일했다.
어느 일요일 오후, 그는 한 골프연습장에서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만났다고 한다. "저는 고등학교 때 하라는 공부는 완전 뒷전이고, 못 된 짓만 골라했던 말썽꾸러기 학생이었어요. 요즘 청소년 문제가 심각하다지만 당시 저도 못지않았습니다". 그랬던 그가 그곳에서 담임선생님을 만났으니 몸 둘 바를 몰랐는데 선생님께서는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해 그것도 외국회사 사장이라니 너무 대견하다"면서 그의 손을 꼬옥 잡아주셨다고 한다.
2003년, 몸담고 있던 회사가 다국적 제약회사에 인수, 합병되면서 할 수 없이 직장을 떠나야 했다. 이어 논현동에 수입벽지를 비롯한 이태리 가구와 소품 등을 취급하는 수입가구점을 친구와 함께 열었다. 그런대로 잘 꾸려 나갔는데 동업자인 친구의 갑작스런 건강악화로 그 일도 접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프랑스 모던가구 ''고띠에''로 재도전
''고띠에''는 유럽, 미국 등 50여 개 국에 650여 매장을 갖고 있는 글로벌 브랜드로서, 프랑스 자체생산을 통한 품질관리와 제품의 최초설계 단계에서 마무리까지 엄격한 ''Eco-Design''을 적용해 친환경가구를 생산하는 프랑스 최대 종합가구 회사이다.
"2008년 밀라노 가구전시회에서 ''고띠에'' 가구를 처음 보았는데 그리 비싸지도 않으면서 공간 활용을 극대화할 수 있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그 당시에는 한국시장 진출 계획이 없다고 해 실망했어요."
그러다 지난해에 ''고띠에''가 동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시장에 진출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바로 프랑스로 날아간 그는 그동안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면서 얻은 노하우와 자신감으로 본사 관계자들을 만나 집요하게 설득했다. 그 결과 내로라하는 유명 가구업체들을 제치고 이 회사의 한국 프랜차이즈 독점권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전 대표는 "한국 가구시장의 현황이나 트렌드 등을 ''고띠에'' 관계자들에게 알리고, 수시로 그들의 안부를 묻는 등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던 것이 결정적 요인이 된 것 같다"고 전했다. 방배동에 오픈한 1호 매장은 200평의 초대형 매장으로, ''고띠에''만의 독특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경험할 수 있도록 프랑스 본사에서 직접 시공했다고 한다. 전 대표는 "다양한 공간비례를 현실적으로 가늠할 수 있게 디자인됐으며, 거기에 유럽풍 모던스타일의 밝고 생동감 있는 분위기를 가미했다"며 어른용 가구 외에도 주니어가구는 성장하는 아이들을 위해 확장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고 강조한다. 그의 지칠 줄 모르는 도전과 열정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사진 박경섭 작가 (스튜디어 ZIP)
김선미 리포터 srakim20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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