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시장 옆 시장기름집은 어릴 때부터 친정어머니를 따라 다니던 단골집. 고춧가루라도 빻는 날이면 재채기를 참지 못해 문밖을 서성거리고, 들기름을 짤 때면 아롱아롱 맺히는 기름이 신기해 눈을 떼지 못했다. 30년을 기름집과 함께 하던 노부부는 은퇴하고 지금은 새 주인인 정경삼씨(52)가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정 씨가 기름집을 하기까지 그의 인생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노점상을 하며 남부럽지 않게 모았던 재산은 잘못된 부동산 투자로 태반을 잃게 되고, 슈퍼마켓도 해보고 막노동도 하면서 재기를 꿈꾸었지만 삶은 번번이 그에게 좌절을 안겨주었다. “한 때는 삶의 끈을 놓아버리고 싶을 만큼 힘든 적도 있었어요. 이제는 기름집을 맡아 손님들과 사는 얘기도 나누고, 열심히 일한만큼 믿어주는 단골들 보며 기운을 냅니다.”
일은 힘들고 수입은 많지 않지만 정 씨의 바람은 한가지다. “기름을 짜던, 고춧가루를 빻던, 시장기름집은 믿을 수 있는 가게라는 소리 듣고 싶어요. 그게 부모 고생 덜어준다고 장학금 받으며 열심히 공부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여주는 떳떳한 모습이라 생각하거든요.”
깨를 부으며 한 알도 흘리지 않으려는 듯, 붓으로 꼼꼼하게 털어 넣는 정 씨의 모습은 정직해 보이는 인상 그대로다. 아주머니 한분이 꽤 무거워 보이는 자루를 들고 문을 열자, 얼른 일어나 마중 나가는 정 씨. 고추같이 매웠던 시련을 딛고 새롭게 꾸리는 그의 시작에 박수를 보낸다.
홍순한리포터 chahyang3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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