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 '대조동, 아시아를 품다'
한글 배운 여성들 자국 문화 가르쳐
"오늘 얼마나 열심히 했나 볼까? 공책에 스티커 붙여줄게. 어떤 게 좋아?"
13일 오후 5시. 서울 은평구 대조동 주민자치회관. 9년 전 한국에 온 필리핀 출신 데이지 마르코스 박(37)씨가 초등학생 여섯명과 함께 영어수업을 진행 중이다. 1월부터 시작한 '꿈나무 어린이 영어회화 교실'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오후 3시 30분부터 1시간 30분간 열린다.
◆필리핀 출신 주부가 영어 선생님 = "데이지 선생님은 필리핀 팡가시난대학에서 경제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현지에서도 영어를 가르쳤던 경력자예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지난 연말 주민자치월례회의에서 그 경력을 활용한 정규강좌를 만들기로 결정했어요."
김지영 대조동주민센터 주무관의 설명이다. 강좌 개설로 데이지씨는 매달 20만원 가량을 살림에 보탤 수 있게 됐고 지역 아이들은 단돈 1만원에 질 높은 회화 수업을 듣게 됐다.
데이지씨의 숨은 재주를 발굴한 건 대조동주민센터. 지난해 그가 대조동으로 이사온 뒤 다문화가정 지원사업인 '대조동, 아시아를 품다'에 참여한 게 계기가 됐다.
대조동 전체 1만3600세대 가운데 다문화가정은 1%가 채 안되는 105가구. '아시아를 품다'는 그 가정의 이주여성들이 한국사회에 빠르게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동시에 그들을 통해 아시아 각국 문화를 지역 주민들과 공유하는 프로그램.
출발은 지역 초등학생들에게 아시아 각국의 문화를 전하는 '함께 가는 아시아 여행'이었다. 동주민센터 작은도서관인 '어린이꿈나무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전명순(49·불광동)씨가 제안했다. 2007년 개설된 한국어교실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다.
"수업에 참여한 중국 여성들과 개인적으로 친해졌는데 얘기를 나누다보니 내가 알고 있는 중국에 대한 지식이 실제와 크게 차이가 있는 거예요. '이걸 우리 아이들한테 가르치면 좋겠다' 싶었죠."
전씨는 "단순한 한국어교실과는 다른 소통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방학특강으로 시범사업을 해봤다. 노래 부르기, 만두 만들기, 의상 체험 등 문화체험 중심으로 '중국을 배워요'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참가자를 모집했다. 하루가 지나지 않아 정원이 찼다.
주민자치위원회에 마을의제로 제안하고 이주여성들을 위한 모임도 건의했다. 그 덕에 몽골 대만 필리핀 등 아시아 각국 여성들이 주민자치회관에서 자국 문화와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가 됐다. 어린이꿈나무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한국인 주부들이 보조교사로 참여, 도움을 준다. 이제는 캄보디아 베트남에 러시아 인도네시아까지 9개국 문화강좌가 열린다.
◆문화적 포용력 키우는 계기 = 이주여성들은 대신 우리말 교육과 함께 문화 예술 요리 등 실내수업과 소풍 운동회 등 야회체험활동을 한다.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자는 의미에서 프로그램 이름도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라고 붙였다.
전명순씨는 "처음에는 수업참여도 자원봉사자들이 챙겨야 했는데 이제는 한국인 봉사자를 이끌어가면서 강의를 진행하는 여성들도 생겼다"고 평했다. 인근 갈현동이나 역촌동에서도 이 과정에 참여하기 위해 대조동을 찾는다.
남우현 대조동장은 "결혼이주 여성들에게는 수혜자가 아닌 서비스 제공자로서 긍지를, 지역 주민들에게는 문화적 포용력을 키우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한국어교실 학생에서 영어회화 강사로 변신한 데이지 박씨는 "내게는 너무나 소중한 기회"라며 "아이들에게 다문화를 제대로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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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배운 여성들 자국 문화 가르쳐
"오늘 얼마나 열심히 했나 볼까? 공책에 스티커 붙여줄게. 어떤 게 좋아?"
13일 오후 5시. 서울 은평구 대조동 주민자치회관. 9년 전 한국에 온 필리핀 출신 데이지 마르코스 박(37)씨가 초등학생 여섯명과 함께 영어수업을 진행 중이다. 1월부터 시작한 '꿈나무 어린이 영어회화 교실'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오후 3시 30분부터 1시간 30분간 열린다.
◆필리핀 출신 주부가 영어 선생님 = "데이지 선생님은 필리핀 팡가시난대학에서 경제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현지에서도 영어를 가르쳤던 경력자예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지난 연말 주민자치월례회의에서 그 경력을 활용한 정규강좌를 만들기로 결정했어요."
김지영 대조동주민센터 주무관의 설명이다. 강좌 개설로 데이지씨는 매달 20만원 가량을 살림에 보탤 수 있게 됐고 지역 아이들은 단돈 1만원에 질 높은 회화 수업을 듣게 됐다.
데이지씨의 숨은 재주를 발굴한 건 대조동주민센터. 지난해 그가 대조동으로 이사온 뒤 다문화가정 지원사업인 '대조동, 아시아를 품다'에 참여한 게 계기가 됐다.
대조동 전체 1만3600세대 가운데 다문화가정은 1%가 채 안되는 105가구. '아시아를 품다'는 그 가정의 이주여성들이 한국사회에 빠르게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동시에 그들을 통해 아시아 각국 문화를 지역 주민들과 공유하는 프로그램.
출발은 지역 초등학생들에게 아시아 각국의 문화를 전하는 '함께 가는 아시아 여행'이었다. 동주민센터 작은도서관인 '어린이꿈나무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전명순(49·불광동)씨가 제안했다. 2007년 개설된 한국어교실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다.
"수업에 참여한 중국 여성들과 개인적으로 친해졌는데 얘기를 나누다보니 내가 알고 있는 중국에 대한 지식이 실제와 크게 차이가 있는 거예요. '이걸 우리 아이들한테 가르치면 좋겠다' 싶었죠."
전씨는 "단순한 한국어교실과는 다른 소통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방학특강으로 시범사업을 해봤다. 노래 부르기, 만두 만들기, 의상 체험 등 문화체험 중심으로 '중국을 배워요'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참가자를 모집했다. 하루가 지나지 않아 정원이 찼다.
주민자치위원회에 마을의제로 제안하고 이주여성들을 위한 모임도 건의했다. 그 덕에 몽골 대만 필리핀 등 아시아 각국 여성들이 주민자치회관에서 자국 문화와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가 됐다. 어린이꿈나무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한국인 주부들이 보조교사로 참여, 도움을 준다. 이제는 캄보디아 베트남에 러시아 인도네시아까지 9개국 문화강좌가 열린다.
◆문화적 포용력 키우는 계기 = 이주여성들은 대신 우리말 교육과 함께 문화 예술 요리 등 실내수업과 소풍 운동회 등 야회체험활동을 한다.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자는 의미에서 프로그램 이름도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라고 붙였다.
전명순씨는 "처음에는 수업참여도 자원봉사자들이 챙겨야 했는데 이제는 한국인 봉사자를 이끌어가면서 강의를 진행하는 여성들도 생겼다"고 평했다. 인근 갈현동이나 역촌동에서도 이 과정에 참여하기 위해 대조동을 찾는다.
남우현 대조동장은 "결혼이주 여성들에게는 수혜자가 아닌 서비스 제공자로서 긍지를, 지역 주민들에게는 문화적 포용력을 키우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한국어교실 학생에서 영어회화 강사로 변신한 데이지 박씨는 "내게는 너무나 소중한 기회"라며 "아이들에게 다문화를 제대로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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