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했던 뮤지컬 ‘러브’는 노인들의 사랑이야기를 아름답게 그린 작품이다. ‘명성황후’의 연출가 윤호진씨가 제작과 연출을 맡았고 김진태, 전양자, 황범식 등 내로라하는 중견 탤런트들이 출연했다. 이 뮤지컬은 노인이 직접 출연했으며 출연한 배우들의 평균연령이 60.6세, 최고령 배우는 76세였다. 바로 이런 사실이?관객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애초에 일반 배우들을 선발할 때 55세 이상으로 참가자격을 두고 오디션을 실시해 최종 23명이 합격한 것이다.
합격자 중에 권영국(70)씨와 윤이남(65)씨는 실제 부부로 부부가 나란히 무대에 올라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현재 이들은 양재노인종합복지관이 운영하는 S_엔터테인먼트 소속 실버 모델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두 사람은 60세 이후에 뮤지컬 배우와 실버모델까지 하면서 젊은 시절에도 경험하지 못했던 또 다른 인생을 펼쳐나가고 있다. 또한 건강하고 할 일이 많아 늘 바쁘고, 도전하고 싶은 것도 많아 하루가 금방 간다. 무엇보다 이들은 언제나 부부가 모든 것을 함께 할 수 있어 참 행복하다.
은퇴 후에는 무슨 일이든 함께해
권영국씨와 윤이남씨는 27세와 22세에 중매로 만나 3개월 만에 결혼을 했고 2남 1녀를 연년생으로 줄줄이 낳아 열심히 키웠다.
권씨는 직장일로 늘 바빴지만 틈틈이 가족과 여행을 하기도 하고, 회사일로 좋은 식당에 가면 아내와 아이들이 생각나 다음에 꼭 가족과 함께 다시 찾는 가정적인 아버지였다. 그럼에도 가정에서는 모든 일에 스스로 악역을 자처하며 중심을 지켰다. 그 덕분에 아내인 윤씨는 평생 다정한 어머니, 사랑스런 며느리로 지낼 수 있었다. 그래서 아내는 평생 백점짜리 남편과 살았다고 말한다.
리더쉽이 강하며 성격이 급한 남편이 화가 났을 때 내성적이며 조용한 아내는 늘 한발 뒤로 물러서서 참고 받아주면서 문제를 해결하곤 했다. 남편은 언제나 그런 아내가 고마웠다고 말한다.
아내보다 직장생활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살던 권씨는 50세가 되던 해에 앞으로 모든 것을 아내와 함께 하며 살겠다고 결심하고 실천에 옮겼다. 은퇴 후에는 둘이서 봉사와 운동을 함께 다니고 것은 물론이고 스포츠 댄스, 가야금, 창, 사진 찍기 등 모든 것을 함께 배웠다. 같이 다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서로가 더 이해하고 한층 가까워졌다. 연애하는 사람들처럼 언제나 손을 꼭 잡고 다니는 이들은 할 이야기가 많아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
새로운 인생의 서막
예전엔 지금처럼 노래방 기계가 없이 실제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던 시절에도 권씨는 팝송이나 일본 노래를 사람들 앞에서 척척 부를 만큼 노래 실력이 뛰어났었다. 하지만 윤씨는 집안에서 살림만 했던 전형적인 가정주부로 남 앞에 나서본 기억이 별로 없었다.
이런 두 사람이 연기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2007년 4월, 충무아트홀과 어린이문화예술학교에서 60대 이상 노인들을 위해 마련한 ‘뮤지컬 실버파워’ 2기에 참여서 부터다. 그해 11월, 뮤지컬을 배운 수강생들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마이웨이’를 충무아트홀에서 공연했다. 그때 뮤지컬 ‘러브’ 관계자가 이 공연을 관람했고 수강생들에게 러브 오디션에 참여할 것을 권유했다. 그렇게 오디션을 거쳐 러브에 정식으로 출연하는 배우가 되었다.
러브에서 권씨는 특별한 배역이 없이 춤과 노래를 연기했고, 윤씨는 치매 걸린 아돌프 부인 역을 맡았다. 남편은 “아내는 연기력이 아주 좋습니다. 관객들이 정말 치매에 걸린 것으로 알았다니까요”라고 자랑하면서 “이렇게 연기에 소질이 있는 것을 진작 알았다면 젊었을 때 연기 공부를 시켜보는 건데 아쉬워요”라고 말한다. 윤씨 역시 “무대에 서면 떨리지도 않고 저절로 몰입이 됩니다. 저도 제가 그런 끼가 있는지 몰랐어요”라고 말하며 수줍게 웃는다.
두 사람은 러브에 출연하기위해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처음 섰을 때 정말로 감회가 새로웠다. 1967년 12월, 그들은 지금 세종문화 회관 자리에 있던 시민회관에서 결혼식을 올렸었고 결혼 40주년이 되던 해에 결혼식을 했던 바로 그 자리에서 뮤지컬 배우로 다시 섰기 때문이다.
권씨는 현재 중구 구립예술단 단원으로 매일 매일 연습하고 또 무대에 선다. 윤씨는 광고 모델로서 라이너 생명, 롯데 과자 쌀로별 등 광고를 많이 찍었다. 또한 ‘사랑의 힘’이란 주제로 배우들이 원불교 교무, 천주교 수녀님 역할로 등장하는 공익광고에도 참여했다. 광고주들은 윤씨가 배역을 잘 소화하고 연기를 잘해 소비자의 반응이 좋다고 평을 한다.
노년은 아름다워
요즘도 윤씨는 유치원에서 어린이 구연동화를 하고, 권씨는 독거노인을 찾아 밑반찬도 전하고 말벗도 되어준다. 또 윤씨는 플루트를, 권씨는 색소폰을 연습해 봉사하는 곳에서 노인 생신 잔치가 있으면 연주를 하기도 한다. 최근엔 두 사람이 함께 복지회관에서 ‘노후의 삶이 행복한가’라는 주제로 강연도 하고 있다.
이 부부는 노년을 바쁘게 지내면서 자신감 있게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말한다. “노년에는 욕심과 아집을 버리고 결승점에서 다시 출발하는 마음으로 살아야합니다. 그리고 부부가 마음을 합쳐 즐겁게 살아야지요”라고 말하며 두 사람은 두 손을 꼭 잡는다.
사진 스튜디오ZIP 박찬웅 작가
이희수 리포터naheesoo@drema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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