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념과 짜증의 상관관계

지역내일 2011-01-10

김은기 원장
<한의사 엄마의 공부체질 이야기 저자>
문의 (02)535-1588


공부하는 학생 자녀를 둔 엄마들에게 물어보았다. 가장 없어지길 희망하는 자녀의 증상이 무엇인지. 1번이 졸음이고 2번이 짜증이었다. 짜증을 1번으로 꼽는 엄마들도 많았지만 졸음이 수적으로 우세하였다. 내 학창시절의 기억으로는 학습에 가장 장애가 되는 증상은 단연 잡념이었다. 그러나 잡념을 1번으로 꼽아주는 학부모는 한명도 없었다.
책상에 앉아 졸지 않는다고 공부를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잠을 못자면 오히려 짜증과 잡념이 생긴다. 게다가 하루 종일 전혀 공부하지 않고 보내는 날도 생긴다는 걸 너무 모르는 건지,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는 게 싫은 건지 모르겠다. 
‘졸음을 없애는 가장 좋은 약은 푹 자는 것’이라고 말하면 여태껏 한명도 빼놓지 않고 모두 기함을 하며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라고 했다.
졸음도 같은 졸음이 아니다. 졸음이 오며 잠도 잘 잔다면 나는 ‘단순졸음’ 또는 ‘기울형졸음’이라 명명하였다. 치료가 쉬운 경우가 대부분이고 잡념도 별로 없다. 잡념이 많고 졸리지만 잠을 잘 수 없는 졸음은 대체로 ‘음허형졸음’(내가 개인적으로 명명한 것임)이 많은데 이는 심각한 증상으로 치료도 간단하지 않아 ‘복잡한졸음’(개인적으로 명명한 것임)이라 말하기도 한다. 어린 학생이 이런 증상을 호소한다면 생활에도 문제가 있을 가능상이 많아 엄마와 길게 상담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잠을 참고 억지로 공부하면 머지않아 곧 잡념이 생기고 수면부족으로 인하여 짜증을 내는 것이 당연한 순서다. 근데 여기에 보너스로 지속적인 졸음까지 주어지는 것이다.
엄마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적게 자고 깨어있는 동안 계속 집중해서 공부하고 짜증도 안내며 방긋방긋 웃어주는 것이다. 이건 많이 먹으며 살 빼고, 공부안하고 일등 하겠다는 말과 같다.
바람직한 수면시간은 하루 몇 시간일까? 이는 각자 개인차가 있다. 나폴레옹 이승만 초대대통령 같은 몇몇 사람들은 잠을 매우 조금 자고 계속 일을 했다고 한다. 그런 사람을 모델로 삼아 자꾸 잠을 줄여달라고 요청하는 부모도 있는데 참으로 난감하다. 원래 잠이 적은 체질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잠이 적은 체질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불면증에 시달릴 가능성이 많은 체질도 바로 이 체질이다. 나폴레옹이 불면증만 없었어도 전쟁에서 패하지 않았고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하지 않는가.
지헌이(가명)는 아주 짜증이 많고 잠이 많으며 계속 낮에도 꾸벅꾸벅 조는데다가 성적도 점점 떨어져서 한의원에 내원하였다. 지헌이를 진찰해본 결과 엄마의 짐작과는 반대로 불면증이었다.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하니 낮에 졸수밖에 없고 잠을 못자니 짜증이 나는 것은 당연하다. 공부하는 절대시간이 부족해서 성적이 떨어질 것이란 예상도 할 수 있겠지만 지헌이는 잡념이 너무 심하여 거의 공부를 하지 못해 책상에 앉아 졸지 않더라도 공부 양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석차는 거의 곤두박질쳐서 최상위권 성적은 딱 중간에서 조금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지헌이는 불면증에 시달린 지 1년 가까이 되었으며 잠을 깊이 자지 못하다보니 누워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이를 본 엄마는 잠을 그렇게 많이 자고도 또 잠이 오냐며 다그치니 불면증을 호소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또 잡념에 대해서도 정신력 부족이라며 야단맞는 것이 싫어 입 밖에도 내지 않았다. 
가장 이상적이며 빠른 치료는 잠을 실컷 잘 수 있도록 한약으로 불면증을 치료하고 잡념과 짜증이 저절로 없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데, 너무 고학년이어서 수면시간을 늘리기가 불가능하였다. 내신도 중요하다보니 시험 전후와 방학 중의 처방을 각기 다르게 하면서 수면시간을 줄이고, 동시에 잡념을 없애는 좀 복잡한 치료법을 채택하였다. 이런 방법은 투약기간이 길어지지만 기존의 공부스케줄을 거의 소화할 수 있어 지헌이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성적도 조금씩 향상되었고 내신도 상당히 회복되어 7개월이 지나자 한약을 중단해도 좋을 만큼 수면시간 졸음 잡념 모두 현저히 줄어들었다. 불면증과 잡념에 시달리는 동안 못한 공부를 회복하느라 무리할 만큼 열심히 공부한 덕에 성적도 상위권으로 올랐다. 그래도 시험 때나 방학에 심하게 공부를 한 다음에는 불면증과 잡념의 전조증상이 고개를 들었고, 한 번의 경험으로 초기에 한약을 투약 받아 증상의 진행을 막았다. 이렇게 열심히 한 결과 이번 수능에서는 고1때는 생각할 수 없었던 대학에 수시로 진학하였다.
공부 잘하는 자녀를 두고 싶다면 잡념을 없애야 한다. 잡념을 없애려면 2가지 방법을 동시에 사용한다. 하나는 적정수면시간을 유지한다. 아무리 실컷 잔다고 해도 고등학생은 방학이어도 하루 8시간을 넘기는 것은 엄마들이 받아들이기 곤란하다. 물론 낮에 조금씩 자는 시간을 모두 포함해서 말이다. 또 다른 하나는 한약을 사용하여 허열(虛熱)을 내려주는 것이다. 잡념은 정신력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신체의 한 증상이기 때문에 실제로 한약을 사용하여 음기(陰氣)를 보해주면 잡념이 잘 사라진다. 이런 약들은 보약의 일종이어서 체력에도 도움이 되고 장기간 복용하여도 아무 문제가 없다.
지헌이의 예에서 보았다시피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공부의 핵심은 잡념 없는 맑은 정신으로 집중력 있게 공부하는 것이다. 여기에 잠도 적으면 금상첨화겠지만 적정수면시간은 절대 건드려서는 안되는 불가침 영역이다. 이 영역을 건드리면 지헌이처럼 불면증에 빠지게 되는 것이고 결과는 참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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