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오이디푸스>

한치 앞도 모르는 운명 앞에 우리는 모두 장님

비범한 영웅이 아닌 평범한 인간 오이디푸스

지역내일 2011-01-09
<"이 대통령,="" 독선="" 버리고="" 말수="" 줄였으면="" 좋겠다"="">

의장 직권상정은 날치기 · 폭력국회 출발
어렵더라도 국민들 똘똘 뭉쳐 나라 지켜야
국민 갈가리 찢겨 … ''소통의 정치'' 했으면

내일신문은 창간 17주년(일간 10주년)을 맞이해 <한국정치의 내일을="" 말하다="">라는 기획인터뷰를 진행한다. 대한민국 정치발전에 주도적 역할을 하는 여야의 대선주자를 비롯한 유력 정치인, 대표적인 지식인 등을 독자들과 함께 인터뷰해 정치 발전의 사회적 공론과 비전을 국민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과의 신년 인터뷰는 지난달 28일 오후 내일신문 사장실에서 진행됐다. 편집자-


한국정치의 대표적 원로이신데 최근 근황을 소개해주세요.

은퇴한 원로지만 그래도 자나 깨나 나라 걱정을 안할 수 없지요. 나라가어려울 때면 내가 나라 위해서 바른 소리를 합니다. 그러니까 매스컴에서 원로지만 현역원로다, 유일한 원로다 해서 인터뷰 요청을 많이 해옵니다. 몸 아끼지 않고 TV나 신문, 라디오에 꼭 나가서 나름대로 나라 위해 쓴 소리, 바른 소리를 해주고 있어요. 이게 내 생활의 전부이지요.

당당하게 살다가 웃으면서 간다, 그것이 내 희망입니다.



두 차례 국회의장 재임기간중 보람 있었던 일, 정치적 성과를 소개해 주세요. 안타까웠던 점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14대와 16대 국회 두 번에 걸쳐 의장을 했지요. 처음 의장 될 때 국민에게 나는 절대 날치기를 없애겠다고 약속했어요. 14대 의장 때도 그렇고 16대 때도 그렇고 끝까지 날치기하지 않았어요. 날치기를 위한 직권상정도 물론 안했지요. 직권상정과 날치기 안한 의장은 나 혼자일겁니다. 그 과정에서 청와대가 조금 무리한 요구를 할 때 난 끝까지 뿌리쳤어요.

그래서 때론 대통령과 인간적으로 소원한 관계도 생겼지만 전혀 후회하지 않아요. 그리고 헌법을 보면 제3장에 입법부, 제4장에 행정부가 들어가 있어요. 3권 분립이지만, 입법부가 행정부 상위 개념이고 대통령과 의장은 동격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의장은 절대로 청와대 눈치를 보면 안돼요. 국회 권위를 지켜야 해요. 14대 땐 예산안과 안기부법, 통신비밀보호법, 정당법을 묶어서 12월2일 안에 무리가 가더라도 (청와대가) 통과시켜 달라는 걸 끝까지 거부했지요. 날짜가 조금 지났지만 법률안은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고, 예산안은 표결로 통과시켰어요. 의장이 청와대 눈치를 봐선 안된다고 생각해요.

대한민국 국회는 국민의 국회이지, 여당의 국회도 야당의 국회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의사봉을 세 번 치는 의미를 남다르게 해석한 걸로 유명하시지요.

의장하면서 사회봉을 세 번 치잖아요. ''한번은 여당보고 치고, 한번은 야당, 마지막 한번은 방청석 보면서 국민들에게 양심의 사회봉을 친다'' 라고 속으로 되뇌이면서 쳤어요. 그 후에 보니까 전부 그런 생각 없이 오직 당리당략 뿐 이더군요.(책상 수차례 내리치면서 목소리를 높여) 국회의장도 청와대가 바라는 그대로 밀고나가고, 그러니 문제가 복잡해지는 겁니다.

내가 16대 의장 때는 날치기 없애야겠다 싶어서 국회의장 또는 상임위원장이 안건 상정해서 통과시킬 때는 반드시 의장석에서 하도록 국회법을 고쳤어요. 또 의장은 임기 동안은 당적 이탈하도록, 포기하도록 했지요. 의장 임기 동안은 무소속으로 하라 이겁니다. 당적 이탈해도 진심으로 마음으로 이탈해야지 형식적으로만 이탈해서 여당 편을 들고 하니까 문제가 되는 겁니다.

국회 폐단을 고치려면 국회의장이 절대로 청와대 눈치 보지 말 것, 그리고 여야 의원들은 항상 국민의 국회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해요.



앞서 하신 말씀은 지난 연말 박희태 의장의 예산안 직권상정에 대한 나름의 평가가 되겠는데요

그렇습니다. 직권상정 하면 안됩니다. 직권상정은 날치기 또는 폭력국회의 출발입니다. 직권상정 한다고 하면 야당이 날치기 하는 줄 알고 폭력으로 막지요. 그러면 여당은 밀어붙이고 그러니까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내가 할 땐 한번도 직권상정 안했어요. 야당의원들에게 "아! 저 의장은 절대로 날치기하는 의장이 아니다"라는 믿음을 줘야합니다. 그러면 의장 말 잘 듣습니다.

의장이 절충안을 내놓고 얼마든지 여야 간에 절충 할 수 있는 겁니다. 만약 최악의 경우 절충이 안 되면 표결이라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거지요.



입법부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선 의장이 원칙을 지키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말씀인데요

국회가 권위를 지킬 줄 알아야 해요. 의장이면 의원으로서 최고의 영광인데 뭘 더 바라겠습니까. 청와대나 여당의 기분 맞춰서 다음에 또 뭘 하려고 하나요.

나는 대권 생각 안하고 오직 국회를 바로 지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영원한 의회인이다, 그렇게 생각해서 한 것이지요. 두 대통령과 인간적 관계에선 손해였지요.

14대 땐 김영삼, 16대 땐 김대중 대통령이었는데 그 분들은 이만섭 의장은 소신이 너무 세서 전혀 말을 들을 것 같지 않고 하니까…. 결과적으로 내가 정치적으론 대권에 나설 기회가 없어졌지요. 하지만 상관하지 않았어요.



이명박 정부의 리더십에 대해 어떻게 평가 하시나요

이 대통령이 이제 (임기) 후반기에 들어섰는데요. 부탁하고 싶은 것은 첫째 모든 일을 나 혼자 하겠다는 독선적 생각을 버리고 장관들이 소신 갖고 일할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해요. 지금 보면 대통령이 혼자 다하죠. 그러니 (국민은) 장관이 누군지 알지도 못해요.

둘째는 말수를 줄였으면 좋겠어요. 대통령이 말이 너무 많으니까 정치에 혼선이 오고 국민도 헷갈려요. 정책의 일관성이 없게 됩니다. 영어 격언에도 ''스피치 이즈 실버, 사일런스 이즈 골드(speech is silver, silence is gold)''란 말이 있잖아요. 정치는 오케스트라와 같아요. 지휘자는 손 끝으로 지휘합니다. 본인이 지휘하다가 내려가서 클라리넷 불고, 북 치고, 피아노 치고 이런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4년차인데 임기 동안에 많은 업적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절대 갖지 말아야 해요. 업적에 대한 욕심을 버리라는 얘깁니다. 물가, 민생 등 하고 있는 일만 조용히 마무리 지으면 좋겠어요.

한가지 더 추가하면 실제로 소통의 정치, 화합의 정치를 했으면 정말 좋겠어요. 지금 우리나라의 가장 큰 폐단이 소통의 정치, 화합의 정치가 안되는 것입니다. 국민이 갈가리 찢어져있어요. 소통의 정치를 해줬으면 좋겠어요.

가장 중요한 건 안보문제인데 철통같은 안보태세 강화로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켜야 해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고도의 외교능력으로 중국, 러시아와 협력관계를 유지하도록 해야 해요.

협력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사전에 북의 남침을, 기습을 막아야 해요. 우리 정부의 대 중국, 대 러시아 외교가 그동안 서툴렀어요.



2012년 대선 앞두고 주자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압도적 우세를 보이는데요. 정치적 행보를 어떻게 평가 하십니까.

어느 당이든 대권을 꿈꾸는 사람들은 대권 욕심내기 전에 나라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올해와 내년, 국가운명이 좌우될 중요한 시기예요.

그러므로 대권에 앞서 나라가 건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너무 ''대권, 대권'' 그러지 말라는 거지요. 대권 때문에 눈이 어두워지면 나라 전체를 보지 못해요. 그리고 박근혜 전 대표도 큰 꿈이 있다면 좀 더 폭을 넓혀서 그야말로 국민이 뭘 생각하는가 민심을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어요.

나라가 어려울 때는 개인의 인기나 포퓰리즘이 아니라 진심으로 나라 걱정하는 이야기를 청와대와 여당 지도부에 해주는 게 옳아요.

미묘한 문제, 중요한 문제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으면 몸 사린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지요.

2012년 대선 전망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정권이 재창출될지 아니면 야당으로 교체될지.

1963년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내가 대선에 직접 개입하거나 지켜봤지만 정권교체 여부는 오직 당에 내분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달라져요.

한나라당에 내분이 있으면 정권이 넘어 가는 거고 야당이 단합 안 되고 지금처럼 분열 상태로 있으면 정권 재창출이 됩니다.

그건 오직 당에 달려있지요. 당에 내분 있느냐 없느냐. 후보자의 포용력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대선결과는) 결정돼요.



최근 정치권에선 개헌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개헌 논의의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인가요.

한마디로 청와대나 여당 지도부에서 개헌 논의를 안했으면 좋겠다 이겁니다. 되지도 않을 개헌을, 뻔히 알면서 심심하면 한번씩 청와대나 여당 지도부가 입에 올리는 건 국민을 속이는 것이예요. 국정 혼란만 가져오고 국력 낭비만 가져와요.

개헌 얘기는 안하는 게 좋겠어요. 개헌 되려면 우선 국회 만장일치로 통과돼야하고, 그래야만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지요. 지금 현실적으로 여든 야든 당론도 정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개헌한다는 말인가요. 거기다 대선에 나갈 후보들도 다 생각이 다른데 뻔히 알면서 왜 개헌 얘기를 하는가요.

권력누수를 막기 위한 저의가 있어서 가끔 얘기하는지 몰라도 일절 안하는 게 좋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헌법에 손볼 부분이 있지 않느냐는 지적이 있는데요.

현행 헌법이 87년에 만들어졌으니 24년이 됐군요. 24년이 지났기 때문에 새로운 문제점이 생긴 것도 사실이예요.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권력이 집중돼있고 권력이 집중되어 대통령이 독선과 아집으로 흐르는 것도 많아요.

이것을 고치려면 결국 내각책임제나 이원집정부제로 권력구조를 변경해야할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국회가 국정의 중심이 돼요. 국회에서 총리가 나오고 의원이 장관을 맡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국민이 지금 국회, 저 싸움하는 국회, 폭력배 국회에게 이 나라 국정을 맡기자는데 동의할까요. 그러니 중대선거구제 해서 의원 질 높이는 동시에 지역은 지역(지방의회)의원들에게 맡기고 국회의원은 오직 국정에 전념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게 선결 과제예요.

중대선거구제로 의원들의 질을 높여야 권력구조 개편도 얘기가 됩니다. 지금 개헌 꺼내봤자 국민 관심도 없는데 뭐가 되겠어요.



당청 관계의 바람직한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청와대와 여당 모두 이익이 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요.

내가 한평생 정치했지만 당청이라는 용어가 나온 게 노무현 정권부터입니다. 청와대는 여당의 청와대 아닌가요. 여당과 청와대는 같은 겁니다. 당청 따로 있고 당청 갈등이 있는 게 말이 되나요.

이건 대통령 리더십 문제고, 여당 지도부 리더십 문제예요. 노무현 정부 이전에 당청갈등 이런 게 있었나요. 반성해야 해요. 청와대는 여당 청와대입니다. 무슨 갈등입니까. 소통하는 정치를 해야죠 .

예를 들어 대통령이 결심해서 세종시 수정안을 낸다, 이걸 (임명한지) 며칠 안된 총리시켜서 불쑥 낸다고 말할게 뭐 있나요.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가 조용히 비공개로 만나 서로 의논해서 묵시적인 합의라도 이뤄낸 뒤 내던지. 소통해야할 것 아닌가요. 대통령이 총리 시켜 불쑥 (수정안을) 내놓아버리면 지난번 선거 때 충청도 가서 "원안대로 합니다. 대통령도 한다고 했으니 원안대로 합니다"하고 다닌 박 전 대표는 뭐가 됩니까. 대통령이 결심해서 내놓은 수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았다면 대통령이 크게 반성해야 돼요.

근데 모두들 그런 걸 부끄러운지도 몰라요. 청와대와 여당이 수시로 만나서 얘기해야 해요. 예전에 나도 당 총재 두 번 해보고 했지만 대통령이 바쁘고 하면 청와대 비서실장하고 당 대표라도, 수시로 비공개로 만나야 해요. 그런 걸 전혀 못하더군요. 답답합니다.



한국정치가 국민에게 도움을 주고 생산적이기 위해서 정치권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한다고 보시나요.

모든 국회의원들은 내가 속해있는 정당보다 나라와 국민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어야 합니다. 헌법도 "의원은 양심에 따라 의정활동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지요. 나라는 망하든지 말든지 당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헌법 정신 지켜서 양심 따라 나라 위해 올바른 의정활동 해야 해요.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지난번 한창 안보가 심각할 때 내가 주장한 게 ''나라가 있어야 여당 있고 야당이 있고, 보수와 진보가 있다'' 는 겁니다. 나라 망하면 여야가 어딨고 진보 보수가 어딨나요.

나라 구하는데 힘을 합쳐야 해요. 한마디만 더하면, 우리나라 폐단이 이념 갈등과 지역 갈등, 계층 갈등, 이런 것입니다. 지역 갈등은 앞으로 중대선거구제를 통해 해결하도록 노력해야하고요. 이념의 갈등은, 지금 모든 언론은 진보와 보수 그렇게 나눠서 애기합니다. 진보는 이렇고 보수는 저렇다. 언론이 이런 태도를 고쳐야 해요. 열린 보수와 건전한 진보는 같은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골통보수 빼놓고 열린보수, 친북을 뺀 건전한 진보는 같은 거에요.

진보와 보수 양분법 말고 어느 정책이 나라 를 위한 것이냐, 국민을 위한 정책이냐 따져야 합니다. 2011년과 2012년 중요한 때는 국민 모두가 국가를 생각해야지요.
 
국민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국제원자재 값이 올라서 물가가 오르니 서민생활이 점점 어려워져요. 생활이 어렵습니다. 정치인들은 싸움만하고 믿을 곳이 없어요. 용기 가지고 믿을 사람 없으면 국민이라도 똘똘 뭉쳐서 이 나라 지키겠다는 생각을 가져주길 바랍니다.
 이 나라는 우리만 살다가 갈 나라가 아니고 우리 후손이 영원히 살아가야할 대한민국입니다. 국민이 어려움이 많더라도 내일을 위해서 용기와 희망을 가져줄 것을 선배로서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대담 김종필 정치팀장 jpkim@naeil.com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1932년 대구 출생. 대구 대륜중(6년제),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했고 연세대 명예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주미·주일 특파원으로 일했고, 제 6,7,10,11,12,14,15,16대 국회의원을 지낸 후 한국국민당 총재, 국민신당 총재, 새정치국민회의 총재 권한대행을 역임했다. 제 14대, 16대 국회의장을 지낸 후 2004년 정치 일선에서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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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사정으로 미 게재된 내용을 포함한 인터뷰 기사전문은 내일신문 홈페이지(www.naeil.com)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윤여준, 정동영, 인명진, 정세균, 김문수, 박지원, 이만섭 포함 이후 게재분)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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