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인터뷰 - 동화구연 봉사자 김흥제씨

“이야기로 아이들에게 할머니의 정(情) 전해요”

30년 교직생활 후 이야기 할머니로 아이들 다시 만나

지역내일 2011-01-02

김흥제씨(62)는 강남구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마련한 어르신 동화구연가 양성과정인 ‘책 읽는 황금마차’ 1기(2009년) 수료생이다. 서초어린이도서관에서 매주 화요일 5세~7세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그림책을 읽어주고 있으며, 올 한해 대진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2주에 한 번씩 ‘이야기 할머니’ 역할을 맡는 등 활발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아이들 앞에 서면 어려운 일도 다 잊게 되고 절로 힘이 난다.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을 찾은 것 같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김흥제씨의 표정이 유난히 밝아 보였다.


내가 가진 것 베풀고 싶어 동화구연 시작
초등학교 교사로 30년간 아이들을 지도하다가 1999년에 퇴직한 김흥제씨는 자신을 위한 일을 하고 싶어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5년간 그림 그리기를 계속해온 김흥제씨는 자신만을 위한 일보다 뭔가 남에게 베풀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차에 2006년도에 서울시에서 마련한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프로그램을 알게 돼 6개월간 교육을 받았다. 

교육이 끝난 후 집 근처에 있는 서초어린이도서관에서 이야기 봉사를 처음으로 시작했고 지금까지 계속해오고 있다. 엄마와 함께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이 화요일이면 이야기 할머니 앞에 앉아 재미있는 그림책 이야기에 빠져든다. 처음에는 별다른 반응 없이 무덤덤하던 아이들도 이야기를 들으면서 점점 표정이 밝아지고 도서관을 찾을 때마다 그 시간을 기다려 준다는 것이 큰 보람이다.

지난해에는 한 신문에서 우연히 ‘책 읽는 황금마차’ 프로그램에 대한 기사를 읽고 자신을 보다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겨 참가하게 되었다. “서울시 프로그램은 옛이야기를 외워서 들려주는 방식이었고 건강가정지원센터 교육 내용은 책을 보여주면서 아이들 수준에 맞춰 목소리 톤을 조절해서 구연하는 것이었다. 요즘에는 두 가지 방법을 적절하게 활용한 나만의 방법을 개발해 아이들에게 더 재미있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올해 4월부터는 대진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을 위해 동화구연 봉사를 시작했으며 길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이야기 할머니’라며 반갑게 인사를 할 정도다. 교훈이 담긴 옛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창작동화를 화면으로 보여주기도 하는 등 1학년 세 반을 돌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동시도 내용에 맞는 동작을 넣어가면서 쉽게 외우게 해준다.


아이들과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큰 행복
흥제씨는 주변 친구들에게도 동화구연 프로그램 수강을 권하고 있다. 같은 책이라도 제대로 읽는 방법을 배워 손자, 손녀에게 재미있게 읽어주면서 서로 교감하고 정을 나누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처음에는 힘들게 왜 그런 일을 하느냐며 염려했던 친구들이 하나둘씩 동화구연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자신이 이야기 할머니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손녀가 집에 오면 배운 그대로 동시나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었다. 우스운 이야기가 나오면 함께 웃고 무서운 이야기는 같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해주다보니 어느새 손녀가 할머니를 만나는 날을 기다리게 됐다고 한다.

아이들을 위해 일하지만 자신이 얻는 즐거움도 크다. “교사로서 공부를 가르치던 때와는 달리 아이들과 서로 부담 없이 만날 수 있어 또 다른 보람이다. 할 일이 있다는 것이 행복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돼 건강 유지에도 도움이 되며, 아이들을 만나다보니 머리 손질에도 신경을 쓰고 옷도 밝은 색으로 입게 돼 훨씬 더 젊게 사는 느낌이다.”

요즘은 할머니와 함께 사는 아이들이 많지 않아서 예전과는 달리 할머니의 정(情)을 충분히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흥제씨는 동화구연 봉사를 하면서 바로 그런 정(情)을 아이들에게 나누어주고 할머니로부터 받을 수 있는 인성교육까지 이야기를 통해 전해주고 있다. 교직생활 경험이 아이들을 자연스럽게 대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새해에는 유치원 아이들 위해 봉사하고 싶어
최근 동화구연지도사 자격시험에 응시해 합격한 김흥제씨는 2011년 새해에는 유치원에서도 이야기 봉사를 하고 싶다고 한다. 동화에는 판타지적인 요소가 많다보니 초등학생들보다 유치원생들에게 더 잘 흡수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더 많은 이야기 할머니를 양성해 유치원마다 배정함으로써 어린 아이들에게 부모가 해주지 못하는 부분을 채워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다른 아이들을 위해서 정기적으로 이야기 봉사를 하고 있지만 정작 2살, 6살인 외손녀들에게는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새해에는 오후에 봉사를 하고 오전에는 시간을 내서 외손녀들에게 이야기 할머니 역할을 수시로 해줄 계획이다. 아이들 친구도 같이 오라고 해서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편하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장은진 리포터 jkumeu@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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